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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Mori Jan 01. 2022

할머니들이 온다

칼바리 시장에서 만난 폴란드 할머니

어느 나라를 가든 가장 먼저 눈에 들어오는 건 할머니들이다.

'엄마가 생각나서인가?’

리투아니아 할머니들도 역시 나의 시선을 사로잡는다.

동네나 버스에서 만나게 되는 리투아니아 할머니들은 대부분 머리에 화백을 연상시키는 빵모자나 스카프를 두르셨다. 손에는 우리나라 어머니들이 장 보러 갈 때 사용하시는 바퀴가 달린 장바구니를 들고 계시고 무엇보다 눈빛이 초롱초롱하고 결연하시다. 그런데 몹시 귀여우시다. 손뜨개로 자신의 코트 색깔인 짙은 푸른색으로 가방을 짜서 깔맞춤으로 어여쁘게 들고 신호등에 서 계신 할머니들의 모습을 보면 하루 종일 기분이 좋다.  

무엇보다 놀라운 건 버스정류장에 있는 버스 시간표를 대부분의 할머니들이 돋보기 없이 잘 들여다보신다는 거다.

“아니, 저게 가능해?”

“분명 이들의 눈이 이렇게 좋은 건 블루베리를 많이 먹어서일 거야”

시장에 지천으로 깔린 블루베리와 기타 베리류가 생각나서 나름의 애거사 크리스티 같은 추리를 해 보지만 물어보지 않았으니 정확하진 않다.     



얼마 전 재래시장인 칼바리 시장(kavariju turgus)에서 있었던 일이다.

크리스마스 전이라 시장 상인들도 문을 많이 닫았고 눈은 마구 쏟아지고 괜히 왔나 싶어 발길을 돌리는데 버섯을 팔고 계신 할머니가 눈에 들어왔다. 리투아니아는 나무가 많아선지 재래시장에 호두, 도토리, 말린 버섯, 말린 사과 등 산에서 채집했을 법한 열매들을 쌓아놓고 판다. 버섯은 이곳에서도 꽤 비싼 편이라 말린 버섯 한 뭉치를 발견하고 반가운 마음에 얼마냐고 물었다.

할머니는 6유로라고 역사가 느껴지는 장갑 낀 손가락을 펼쳐 답하신다.

내가   알아듣는다고 생각하는지 숫자를 손가락으로 세어서 말씀하시는데 리투아니아어도 아니고 폴란드어 같기도 하고 러시아어 같기도 하다. 리투아니아에는 실제로 국경 국인 폴란드인들과 러시아인들이 인구의 7% 정도 거주한다고 한다.  

의사소통은 안 되지만 물건을 사는 데는 아무런 문제가 없다. 할머니에게 6유로를 동전으로 건네고  

‘Happy Christmas!’ 인사를 했다.

그런데 매대 위에 걸어둔 이상한 나무 뭉치가 궁금해 저건 뭐에 쓰는 거냐고 물었다.

차를 마시는 손짓을 하며 찻잎이냐고 묻자

할머니는 ‘Nie Nie sauna, sauna’

하고 나뭇잎몸에 탁탁 치며 소녀처럼 배시시 웃으신다.

사우나할 때 들고 들어가는 향이 나는 나뭇잎인 거 같다.

리투아니아어를 모른 채 리투아니아에서 살고 계신 할머니의 이야기가 궁금해 몇가지 상상을 해 본다.여튼 눈 오는 칼바리 시장에서 만난 할머니는 여전히 씩씩하고 생계를 스스로 이어가며 살고계신다. 여느 나라의 어머니들이 그렇듯 말이다. 그런데 이상하게 할머니들의 태도의 힘이 느껴지는 나라가 있다. 결연히 품위를 잃지 않고 살아온 삶은 고스란히 눈빛에 담긴다. 리투아니아에서의 살아가면서 느끼는 안정감의 10의 1할 정도는 이 나라 할머니들의 덕분이 아닌가 싶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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