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직 면허도 안나왔습니다
대학생활은 언제 끝날까? 난 대체 언제 사회로 진출할까? 언제까지 부모님 지원을 받으며 살아야할까?
6년 간의 긴 대학생활이 끝났다. 입학 때부터 졸업 전까지 학교 앞에 나와 살아서인지, 유독 학교에 있는 시간이 길었다. 지겨웠고, 힘들기도 했지만 지루하진 않았다. 끝도 없이 다음을 기다리는 시험을 하나 하나 해치우다보니, 어느새 졸업이다.
분명히 힘들지 않았던 시험은 없었는데, 의대 생활 6년을 되돌아보면 막상 또 별 생각이 없어진다. 기억력이 떨어진건지, 기억하고 싶지 않은건진 모르지만.
졸업을 약 3주 앞두고, 모교 대학병원 인턴에 합격했다. 크게 긴장하고 준비하지는 않았지만, 의대 생활 6년간 유급 없이 진급하고, 의사로서의 첫 발인 인턴이 되는 과정에 문제가 없다는 점은 기쁘다. 그리고 입사 전 마지막 휴식이 주어졌다. 하루가 바쁘게 놀고, 자고, 먹고 하는 요즘 몸은 행복한데 마음이 그리 즐겁지만은 않다. 입사 전 준비할 서류는 산더미고, 4주는 더 쉴 수 있을 줄 알았더니 연수가 2주더라. 첫 줄의 저 세가지 질문을 계속 하던 나였는데, 막상 사회로 나갈 준비를 하니 가슴이 답답하다.
누가 들으면 미친 소리라 할 수 있지만, 학생 실습은 나름 즐거웠다. 배웠던 지식이 병원에서 어떻게 환자에게 적용되는지를 보고 배우며, 내가 살아있는 지식을 배우고 있다는 사실이 신기하고 뿌듯했다. 교수님의 지도 하에 환자들에게 여러 술기를 수행해보며, 내가 마치 병원 놀이를 하고 있다는 착각에 빠졌고, 그저 그런 기회가 즐거웠다.
이제는 모든 말 하나하나, 모든 행동 하나하나가 다 나의 책임으로 돌아온다. 예전처럼 동맥혈 채혈에 실패했을 때, 괜찮다고 침착하게 어떻게 하라고 뒤에서 지도해주시는 교수님은 이제 없고, 3월 1일이 되면 그냥 온전히 내 몫 내 책임이다. 바늘을 다시 넣을지, 어디까지 빼고 다시 찌를지, 다른 혈관을 잡을지, 지혈은 얼마나 할지 등등 전부 스스로 결정하고 책임져야한다. 의사로서 할 말은 아니지만 3월의 대학병원에 오지 말라는 말이 새삼 와닿기도 하고, 무섭다.
몇 년 전부터 동기들과 만나면 항상 나오는 얘기다. 우리가 의사가 되는게 맞을까? 이렇게 아는 것도 없고, 술기는 해본 경험도 거의 없고, 병원이 어떻게 돌아가는지도 제대로 모르는 우리가. 졸업할 때가 되면 괜찮겠지 싶었지만, 막상 국가고시를 합격하고, 면허 발급 신청을 하는 요즘, 그리 달라지지 않았음을 느낀다. 분명 6년간 최선을 다해 공부하고 최선을 다해서 실습을 했음에도, 면허 말고 나한테 남아있는게 뭔가 싶다.
그래도 믿는다. 우리의 선배가 그랬고, 우리의 교수님들이 그랬던 것처럼, 구르고 혼나고 이를 꽉 깨물다 보면 나아지지 않을까. 청춘의국에 나온 우리 선배들처럼, 년차가 쌓일수록 더욱 의사'같은' 사람이 될 수 있지 않을까. 분명 최고의 의사가 되겠다는 마음은 버린지 오래면서도, 그렇다고 남들보다 못한 의사가 되고 싶지는 않다.
다음 주에는 이미 신청한 마약 검사 등의 결과지를 가지고 면허 교부 신청을 하러 간다. 아마 연수 전 실질적으로 마지막 휴식이 될 것 같은데, 후회없는 한 주 보내고 오련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