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runch

You can make anything
by writing

C.S.Lewis

by 펭귄들의우상 Feb 17. 2024

인턴 입사 2주 전

그저 기다리는중

#1


나름 긴 연휴가 끝나고, 연수가 시작됐다. 원래라면 6년 만에 맞이하는 다른 학교 출신 선생님들을 만나는 것에 설레고 있겠지만, 지금은 그 짧은 기간 동안 파업의 불씨가 어떻게 번질지를 기다리고 있는 처지다.


10대 시절 수련회를 가듯이 버스에 타서 연수원까지 가는 길, 머리는 복잡하기만 했다. 버스에 타기 직전 계약서가 배부되었고, 완성된 계약서를 서명까지 한 채 품에 안고 있었다. 지난 글에 적은 것처럼 솔직히 파업이 내키지 않았다. 이길 수 있을 거라는 생각도 하지 않았고, 4년 전보다도 오히려 구심점도 없는 형태였다. 4년 전 파업을 끝으로 학생 대표는 더이상 선출되지 않았고, 전공의 대표는 유명무실한 상태로 사실상 의협을 제외하면 가장 주가 되는 전공의와 학생 단체가 제대로 돌아가지 않고 있었다. 있지도 않은 사건을 사실인 양 보도해서 국민 감정을 흔드는 언론이란 것을 알고 있음에도, 투표조차 한 적 없지만, 우리가 벌써 위험한 행동을 꾸미고 있다는 보도에 나도 흔들리기도 했다.


글쎄, 자세한건 어차피 일이 진행됨에 따라 세상에 차차 알려지겠지만, 그리고 어차피 자세히 쓸 수도, 쓸 얘기도 없지만, 그냥 답답하다.


연수는 나름 즐거웠다. 1박 2일동안 교육이라기보다는 교양 강좌에 가까운 수업을 들었고, 그냥 술만 마시다가 왔다. 처음보는 절반의 다른 학교 출신 선생님들은 그저 새롭고 흥미로웠지만, 정신차려보니 6년간 부대끼던 친구들 옆에 가서 놀고 있었다. 편안함을 이기는 새로움은 없더라.


#2


연수가 끝나고 쉴 시간도 없이 모 제약회사에서 진행하는 채용설명회에 다녀왔다. 자세한 내용에 대해 밝히기는 어렵지만, 좋은 기회라는 생각이 들었다. 비록 제약에 흥미는 없어서 그쪽으로의 가능성은 낮지만, 일이 이렇게 된 이상 바깥으로 눈을 계속 향하고 있어야한다는 마음만큼은 분명하다.


스트레스는 분명히 받는데, 다 내려놓으니 마음은 편하다. 젊은 일본 남성들이 성공에 대한 욕구가 거세된 상태로 살아가는 것에 대한 다큐를 본 적 있다. 그때는 왜저러나 싶었는데, 포기가 얼마나 매력적인 선택지인지 새삼 알게되는 요즘이다.


두 가지를 들고 있었는데, 둘 다 꽉 쥐려다 놓쳐버린 기분이다. 떠내려가기 전, 하나라도 주워보려고 애를 쓰는 모습이 우습기도 하고, 비참해서 그냥 멍하니 보고만 있다. 지금은 그저 지켜본다. 하나라도 건져야지, 건져야지, 하는데 몸이 움직이지 않는다. 지친다.


이제 입사가 2주 남았다. 입사를 하게 될지, 군인이 될 지, 미용의사가 될지 잔잔했던 인생이 세 갈래로 나뉘었다. 그저 미리 현명하지 못했던 스스로가 원망스럽다.


다음주의 나는 무엇이 되어 있을까.

이전 02화 인턴 입사 3주 전
brunch book
$magazine.title

현재 글은 이 브런치북에
소속되어 있습니다.

작품 선택

키워드 선택 0 / 3 0

댓글여부

afliean
브런치는 최신 브라우저에 최적화 되어있습니다. IE chrome safari