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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펭귄들의우상 Feb 10. 2024

인턴 입사 3주 전

입사를 할 수 있을지는 모르겠습니다

#1


전문의를 취득하지 않고 일하는 의사를 의사들은 GP(General Practioner)라고 부른다. 흔히들 수련 받기 싫을 때 농담처럼 '야 GP나 할래 그냥?', 부당한 대우를 받을 때는 '이럴거면 내가 GP나 했지'라고 던진다. 대부분의 의대생들은 졸업할 즈음엔 스스로의 역량이 한 사람의 의사로 기능하기에는 부족하다 생각하여 받기 싫어도 수련을 받기 위해 준비한다. 하지만 군복무 의무가 없는 사람들이나 여학생들은 꼭 GP에 대해 한번쯤 깊게 고민하게 되는데, 그게 피크를 찍는게 딱 지금 시점이다.


지난 일요일 오후, 이런 고민을 하는 일반의들을 위한 진로 세미나에 다녀왔다. 140여명 정도의 의대를 갓 졸업한 의사들이 모여서, 피부미용, 탈모, 통증, 비만, 요양병원 등의 주제에 대해 강연을 들었다. 강연의 내용은 비공개라 여기서 밝힐 수는 없지만, 일반의를 할 생각이 조금도 없던 나에게도 매력적인 선택지로 느껴질 만큼 설득력 있었다. 거기 있는 대부분의 의사들은 이미 인턴 지원을 포기한 사람들이었고, 나처럼 인턴을 붙고 온 사람은 소수였다. '튀지 않는다'가 제 1원칙인 의대에서 이미 튀는 선택을 해버린 사람들이 그렇게 많이 모여 있는게 생소했다. 그리고 한편으론 그런 선택과 결정을 할 수 있다는 신념이 멋져보였다.


전문의 비율이 압도적으로 높은 한국에서 수련을 포기할 때는, 짧으면 4년 길면 5년의 기간동안 남은 인생에서 GP로 사는 상대적 어려움을 상쇄할 만한 가치를 창출해내야한다. 그 가치는 보통 돈이고, 그렇기 때문에 어지간히 셈이 빠르지 않은 이상 생각하기가 어렵다. 지금 시기가 아니면 수련을 받을 수 없겠다는 압박감과, 의사라고 하면 다들 '무슨 과에요?'라는 질문이 나오는 사회 분위기와, 지금까지 지원해주신 부모님의 기대, 점점 더 의학적인 마인드가 갖춰지는 동기들 등 많은 부분을 견뎌야한다.


사회는, 어쩌면 같은 의사들도 이런 GP들을 돈독 오른 의사 취급하지만, 어쩌면 자본이라는 가치를 추구하는 입장에서, 어쩌면 현명한 판단이라 본다. 의사로서의 자아는 옅어지겠지만, 어차피 돌고 돌아 개원해야하는 세상에서 그저 사업가의 마인드가 강한 것이 아닐까.


#2


강연을 다녀온 시기는 정부가 필수의료패키지를 발표한지 얼마 지나지 않아서였다. 강연자에게 하는 질문의 대부분은 이번에 적용되는 필수의료패키지에 대한 방책이었고, 강연자들의 대답은 '우리도 모른다' 였다. 이제 필수의료패키지의 세부 내용들이 속속 발표되는 지금, 사실 많이 혼란스럽다.


대주제가 맞지 않아 필수의료패키지의 내용들에 대해서 자세히 다루지는 않겠지만, 의도가 상당히 노골적으로 드러나 있는 정책이다. 2천명의 의사 증원과, 급여 비급여 혼합 진료의 금지 등 대부분의 의사의 평균 소득을 줄이겠다는 생각이다. 의사 공급을 늘리고, 혼합진료를 막아서 평균 소득을 줄이고, 건보 재정 소모가 가속화되면 결국 의료보험 체계를 바꿀 생각이다. 지금과 같은 행위별 수가제에서는 행위에 대해 급여나 비급여로 의 형태로 진료비를 받는다. 원가 보전도 안되는 저수가의 한국이라도, 지금처럼 팽창된 의료시장과, 앞으로 쏟아질 많은 의사들, 그에 따라 더 증가될 의료 행위를 감당할 여력은 없기에, 결국 보험 체계가 행위별 수가제에서 총액 계약제 등으로 점차 이전될 것이다. 이미 그런 경향을 필수의료패키지에 드러내기도 했고.


사실 이게 나쁘다고만 생각하지 않는다. 분명히 옳은 정책도 있고, 현실성 없는 정책도 있고, 너무 예고된 부작용을 낳는 정책도 있다. 정부 입장에서 (의도를 가지고)생각을 많이 하고 낸 정책이라는 생각이 들고, 저수가로 시작된 건강보험의 어쩔 수 없는 말로라는 생각도 든다. 의사 빼고 신경쓸게 없는 정책이지만, 내가 의사라는게 문제라면 문제다. 물론 시간이 지나면 모두의 문제가 되겠지만.


아마 설이 지나면, 본격적으로 파업이 시작될 것이다. 개인적으로, 정말 개인적으로 파업을 지지하지 않는다. 어차피 파업이라 해봤자, 개인병원들 며칠 문 닫고, 대학병원 급에서는 거기서 일하는 사람들이 애초에 환자를 절대 포기할 수 있는 사람들이 아니기에, 며칠 당직 순환근무 돌리다가 포기할 것이다. 그동안 뉴스에서는 응급실에 갔는데 진료를 못받았니, 수술이 다 밀려서 사람이 죽었니, 파업하는 의사 명단 공개, 파업하는 의사 중 과거 이력이 좋지 않았던 사람 공개 등 파업 전과 바뀐게 없더라도 의사가 얼마나 나쁜 사람인지를 알려줄 것이고, 여론은 또 박살난 채 지고 끝날 것이다. 이럴 바에야 그냥 순응하고 싶다. 총선만 돌아오면 필수 의료를 해결해야한다고 공공의대를 짓자! 의사 2천명 늘리자! 하고 있는데, 지친다. 솔직하게는 정이 좀 떨어졌다.


동기들이, 선후배들이, 교수님들이 너는 무슨 과 하고 싶냐 물어보면, 내 대답은 한결같았다. 순환기 내과 의사. 요즘은 거의 아무도 가지 않는 그 길이, 그렇게 멋져 보였다. 부정맥을 앓고 있어서 그런지, 심장이 재밌었고, 심장 질환을 치료하는것도 재밌어 보였다. 당직 근무도 많고, 온콜(병원 외 대기)도 많지만, 어차피 의사로 사는거, 다 힘들텐데 재밌어 보이는거나 하자 하면서, 농담처럼 내 삶을 의학에 매진할거다 이딴 소리를 해댔다.


그런데 정이 떨어진다. 현장에서 일하고 싶지가 않다. 전이나 지금이나 몇년 후나 의료 행위는 같은 방법으로 진행될텐데, 세상이 나를 평가하는 내용은 점점 나빠지고 있다. 세상이 반도체 연구원을 욕하지 않는 것처럼, 그냥 아무도 나한테 관심 갖지 않았으면 좋겠는데, 의료의 특성 때문인지 제도의 문제인지 자꾸 언론에 오르내린다. 특정성이 성립될 수 있을 때 사람들은 그래도 분별있게 말하지만, 의사라는 집단을 욕할 때는 그런 필터도 없다. 기사를 보고 어느순간부터 댓글을 보는게 무서워졌다. 내가 한건 공부하고 실습하고 시험친거 밖에 없는데 언젠가부터 그냥 돈에 미친 사람이 되어있다.


그래서 마음을 정했다. 일단 지금밖에 못하는 수련을 받고 떠나기로. 뭐 이래놓고, 또 나중에 그냥 평범한 의사로 살 확률이 아직은 더 높겠지만, 현장에서 평생을 있으면, 이런 시류에 평생을 시달릴 것 같다. 이젠 진짜 떠날 준비를 할 때가 된 것 같다. 여러가지로 알아보고 다녀보고 있는데, 나름 또 재밌을 것 같기도 하다.


아는 선배가 소아과를 가려다가 다른 소아과 선생님이 뜯어 말려서 다른 과를 선택했다. 학생 때부터 소아과를 밀던 사람이 어떤 벽에 부딪혔길래 마음을 바꿨는지 궁금했지만, 더 이상 궁금해하지 않기로 했다. 별로 알고 싶지 않아졌다.


참 어렵다. 그냥 생각없이 눈 앞의 것을 공부하고, 익히고, 힘들지만 배우는 것에 최선을 다하면 그에 상응하는 가치가 돌아오는게 당연할 거라 생각했는데 너무 어린 생각이었나보다. 내가 스트레스에 너무 취약한걸까.


3월 1일에 근무를 시작할 수 있을까. 당장 다음주부터 연수가 시작된다. 분위기가 어떨까 궁금하다. 어차피 4년할거 그냥 빨리 시작해서 빨리 끝내고 싶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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