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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펭귄들의우상 Mar 02. 2024

인턴 입사(사직) 2일차

입사도 못해보고 퇴사하는 나

언제부터 난 의사가 하고 싶었던걸까.


모든것이 내 꿈이 될 수 있던 유년기를 지나, 당장 눈 앞의 성적표가 내 길을 정해주던 언젠가부터, 내 꿈은 의사였다. 아니 정확히는 의대를 가고 싶었다. 한창 특목고 입시가 한창이던 중학교 3학년, 전국형 자율형 사립고를 쓰느냐, 아니면 안정권이었던 외고를 쓰느냐의 기로에 서있었다. 의대를 가고 싶었던 나는 떨어지더라도 전자를 쓰고자 했고, 넌 의대를 갈 머리가 안된다며 로스쿨을 가서 변호사가 되라는 부모님은 후자를 밀었다. 아직까지 부모님을 설득할 힘도, 의지도 부족했던 나는 외고에 가서 이과로 졸업하겠다는 망상을 하며 후자를 지원했고, 보기 좋게 떨어졌다. 겉으로는 우울한 척 했지만(사실 나만 특목고를 못 갔다는 생각에 우울하기도 했다), 내심 이과를 갈 수 있게 돼서 좋았고, 이어서 진학한 고등학교에서는 의대를 갈 수 있는 성적을 만들기 위해 최선을 다했다.


그렇게 고등학교 3학년이 되고, 3년 간 전교 1등을 하며 서울대학교 지역균형 선발 추천서를 받게 된다. 3년 간의 노력이 보답받았다는 생각에 서울대 의대를 쓰려던 찰나, 화학2가 발목을 잡았다. 우리 고등학교로는 지균으로 서울대 의대를 붙기 힘들다는 이사장님과 교장 선생님의 권유 아닌 권유와, 넌 정시로 의대를 가면 된다는 주변 친구들과 선생님들의 이야기에 지균 추천서는 2등 친구에게 넘겨주게 됐다. 그냥 지균으로 서울대 컴공을 가라는 부모님과 몇날 며칠을 치고받고 싸우며 이번에는 내가 이겼다. 그리고 보기좋게 수능을 망쳤다.


재수를 하는 1년 간, 서울대를 버렸으니 이제는 무조건 의대를 가야한다는 보상심리가 컸다. 죽어라고 했고, 광기 넘치게 공부했다. 그렇게 친 수능에서 4개를 틀렸지만, 수도권 의대를 가기엔 부족했다. 20년 서울 태생으로 지방을 갈바에 그냥 연대 컴공을 가자는 마음으로, 수석을 넘볼 수 있는 점수를 아쉬워하던 중, 생각지도 않은 수시가 붙었다. 그렇게 지금의 학교로 오게 됐다.


입학하고 나서 예과 2년 간은 행복했다. 하지만 동시에 빨리 본과에 들어가고 싶었다. 의대생이지만 의학적 지식이 아무 것도 없는게 뭔가 부끄러웠고, 나도 빨리 해부하고 의학적으로 똑똑해지고 싶었다.


그렇게 들어간 본과는 다시 떠올리고 싶지 않다. 말도 안되는 분량의 범위가 매주 주어졌고, 주말은 쉬는 날이 아니라 수업이 없어서 빨리 밀린 진도를 복구해야하는 날들이었다. 격주 금요일마다 보는 1년짜리 유급이 달린 시험을 치고 또 치면서, 시험 끝난 주말이 오기만을 바랐다. 목요일 자정이 지나면 업로드되는 AI 닥터(네이버 웹툰)을 보면서, 주인공은 이렇게 똑똑한데 나는 왜 이리도 멍청한가 자책하며 밤을 새웠고, 시험이 오는게 두려웠다. 그래도 한편으로는 재밌었다. 처음 배우는 들어보지도 못한 수많은 질병들과, 그 질병들의 증상, 치료, 예후, 위험인자 등등 쏟아지는 시험 속에서도 배워가는게 있다는 것이 즐거웠고, 의사가 되어가는 아주 중요한 기초 공사라고 생각했다.


2년을 그렇게 보내고, 남은 2년은 병원에서 보냈다. 유독 실습에 진심인 학교에서, 초반엔 밤을 새는게 너무 당연한 일과였다. 환자 케이스가 왜 이렇게 진단됐는지, 왜 이런 치료를 했는지, 교과서에도 없고 강의록에도 없고, 아무도 알려주지 않는 그것을 머리를 쥐어뜯으며 밤을 새서 고민하고, 교수님 앞에서 발표하며 혼나기도, 칭찬받기도 했다. 해석도 제대로 못하겠는 심전도를 밤새 들여다보며, ST segment가 올라가 있는건지 아닌건지, 이게 J point가 맞는건지 아닌건지 연신 커피를 들이키며 조원들과 토론하기도 했다. 몸은 본1,2에 비교도 안되게 힘들었지만, 그때와는 비교도 안되게 즐거웠다. 매일 수많은 교수님과 하루 종일 함께 있으면서, 쏟아지는 질문과 평가들, 매주 최소 2개씩 진행되는 발표와 각 발표에 대해 길면 1시간까지 진행되는 개인 피드백은, 다 때려치우고 그만두고 싶은 욕구를 팽창시켰지만, 동기들과 함께였기에 버틸 수 있었다. 견딜 수록 내 실력이 늘어가는게 느껴졌고, 본3 처음 들어왔을 때와 본4 마지막 실습 때 숙련도의 차이를 여실히 느낄 수 있었다.


마지막 관문으로 국가고시를 준비하면서, 이 짓을 두번은 못하겠다는 생각이 강하게 들었다. 매일 아침 8시에 동기들과 모여서, 오후 5시까지 모의 진료를 보고, 수 시간 동안 술기 연습을 하고, 끝나고도 동기들과 모의 진료 피드백을 하고, 개인 공부를 하고 나면 다시 다음 날 아침이었다. 추석 때도 하루도 빠짐없이 나와서 연습했고, 실기 합격 발표날에는 너무 불안하고 떨려서 동기들과 피시방에서 밤을 새고나서야 겨우 잠에 들 수 있었다.


그렇게 우여곡절 많은 6년, 어쩌면 이를 준비하기 위한 기간까지 10년 넘는 시간이 지나고, 지난 주 졸업을 하고, 면허를 받고 의사가 됐다. 인턴 기간이 얼마나 힘든지를 듣기도 많이 듣고, 보기도 많이 봤던지라, 마지막으로 주어진 1달 반이라는 시간을 정말 최선을 다해서 즐겼다. 집에서 그저 쉬어보기도 하고, 약속을 하루 세개를 잡기도 해보고, 여행도 다녀왔다.


그리고 어제가 내 첫 출근일이었다. 아니, 그랬어야했다.


마음의 준비는 되어있었다. 아무리 힘들고 그래도, 동기들이 있고, 누군가 이 길을 이미 걸었기에 나도 할 수 있을거라 생각했다.


하지만 2주 넘게 지속되는 이런 사태는 견딜 준비가 되어있지 않았다. 난 그냥 10년 넘게 열심히 공부했던 20대 중반의 일개 학생일 뿐이었고, 내가 왜 이리 죽일놈이 된건지 이해가 되지 않았다. 계약포기 금지 명령이라는 말같지도 않은 이야기를 덧붙이고, 다음 주에 나를 고발할 목적으로 병원에 조사를 나온다는게, 내가 감당할 수 없는 무언가를 봐버린 기분이다.


비참하다. 환자를 위해 내 영혼까지 바칠 생각은 해본 적 없지만, 내가 그간 배운 모든 지식과 기술은 전부 환자를 위한 것이었다. 정부는 이제 무슨 생각인지 모르겠다. 의대생을 2천명 증원하는 것도 웃기고, 교육의 질이 문제가 되니까 이제는 또 2년 안에 교수를 1천명 증원하겠다고 얘기하는 것도 웃기고, 가만히 알아서 삼박자를 맞추고 있던 의료계를 사회주의자에게 선동당해 손수 부순게 우습다.


두렵다. 남들 주 40시간 일할 때, 주 88시간을, 전임의때는 그것보다 훨씬 더 많이 일해야하는 것을 알고 있었음에도, 별 불만은 없었다. 내가 갈려야 의료계가 유지되고, 그러면 30대 후반에 그에 대한 보상이 올거라고 믿었다. 그럴 각오로 공부하고 준비했던 내가, 갑자기 밥그릇에 미치고, 내 욕심에 미쳐버린 사람이 됐다. 유튜브를 보는것도, 네이버를 여는 것도 무섭다. 오늘도 듣도보도 못한 재계약포기금지라는 협박에, 일을 포기할 권리도 자유도 없고, 다른 직업을 선택할 자유도 없는 사람이 됐다.


끝이다. 이젠 이 사태가 마무리되고 내가 병원으로 돌아가도 떳떳하게 의사로 일 할 자신이 없다. 우리의 주장이 힘을 얻든 그렇지 못하든, 우리는 그저 밥그릇을 위해 환자를 내팽개친 사람들이 됐고, 이제 의사는 더이상 존경받지 못하는 직업이 되어버렸다.


누군가 왜 의사를 하고 싶으냐 물었던 때가 있다. 뭔가 화려한 말로 표현했지만, 사실 심플하게 멋진 직업을 하고 싶었다. 가장 근원적인 생명을 다루며, 나의 고행이 사회적으로 높은 가치로 인정받는 직업이라 생각했다. 이제 의사는 더이상 멋지지 않다. 나는 어쩌면 매우 높은 확률로 병원으로 돌아가지 않을 것 같다. 패기넘치게 순환기 내과 의사를 하겠다고 면접을 봤던 1월 어느 날, 그리고 지금까지의 고작 한 달 사이에, 너무 많은 것들이 무너졌다.


참 우습다. 인턴을 하면서, 힘들어도 나에게 남은 가르침들을 쓰고 싶어서 이 글 연재를 시작했다. 다시 인턴으로 돌아온다해도, 이젠 그런 글을 쓰고 싶은 마음이 들지 않는다.


동기들과 무직 백수가 된 것을 기념하여 술을 마셨다. 맥주 잔을 반 잔도 비우지 못했는데, 울고 싶었다. 그저 선거 전에 표몰이 한번 해보겠다고 수십년간 버텨온 의료의 근간을 무너뜨리는 누군가에게 내 미래를, 현재를, 과거를 빼앗긴 기분이다.


피지도 못하고 져버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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