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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화이트커피 May 08. 2024

해가 지는 한담해변에서,

노을, 애월바다

늘 보아도 새로운 애월 바닷가의 해지는 모습,

바삐 살았던 지난날을 되새김질이라도 하듯,

오래도록 걸었습니다.


제주에서의 하루하루들은 평범했지만,

결코 평범하지 않았던 시간들이었습니다.

하루가 끝날 때 언제고 올려다보면 서편하늘에서 볼 수 있었던 해지는 노을,

한담해변에서, 또 수월봉에서 늘 보아온 일몰입니다.

자연이 아름다울 수 있는 것은

스스로의 일을 변함없이 그 자리에서 해 내고 있기 때문인가 봅니다.

숙소에서 가까웠던 한담해변은 해가 지는 시간이면

마법처럼 그렇게 나의 발걸음을 재촉하였습니다.


에메랄드빛 애월 바다는 늘 편안히 기다려주고 감싸주는 엄마의 마음 같았습니다.

바다는 나의 좁은 마음을 덮어 주었습니다.

때로 휘몰아치는 마음을 편안하게 잠재워 주기도 하네요.


파도에 수없이 깎이고 쓸리며 둥글어진 해변가의

돌들과 조개들을 내려다봅니다.

파도에 맞서 내 뜻만 고집하며 살아온 지난 시간들이 부끄럽게 밀려옵니다.


애월 바다는 때로는 침묵하는 바다입니다.


바다에 몸을 맡기듯 내 삶에 힘을 빼고 제주에서 쉼을 가지면서 편안해지고 부드러움이 남았습니다.

거칠고 뾰족함이 내 것이 아니라

바다의 모래알처럼 그렇게 조용히 머물수 있기를 바라봅니다.

고집을 내려놓고 순수한 열정으로 나의 몫을 충실히 살 수 있기를 말입니다.

인생 2막을 위한 쉼을 위해 머문 이곳에서의 일상을

더욱 풍요롭게 해 준 것은 아름답고 소박한 풍경들이었고

최선을 다해 살아가는 이웃들의 모습이었습니다.


그 모습을 보면서 인생이란 것이,

특별한 것을 이루어내고, 목표를 향해 달리는 것만이 최고가 아니라,

순간순간 누리는 행복을 주변사람들과 나눌 수 있는 넉넉한 마음이

최선임을 느낍니다.


제주에서 별 기대 없이 들렀다가 리엘루에서 먹은 짬뽕국물과 짜장면은 천상계의 맛이었고,

오래 기다리다 먹은 화순한가네에서의 밥상은

어린 시절 엄마가 한 상 차려주던 정성스러운 그리움이었습니다.

이런 먹거리에서 친정엄마를 기억하고, 또 사랑하는 아이들이 생각났고,

저의 제주생활이 더욱 의미가 있었네요.


어딜 가도 지척에 가까운 바다가 있어 먹을 수 있었던

싱싱한 회, 특히 제주시에서 처음 먹어본 삼치회는 그 도톰한 살점을 잊을 수가 없습니다.

직접 텃밭에서 키우셨다는 상추에,

이 쌈장이 비법이라며 레시피는 비밀이지만

자꾸 빈접시를 채워주시던 사장님의 넉넉한 인심에 마음이 푸근해졌습니다.

서귀포 바닷가 루마카의 화덕에서 구운 피자와 해물파스타로 비 오는 날 점심을 하고는

이탈리아 나폴리 해변에서 먹은 점심 부럽지 않았던 기억도 납니다.


이렇게 도민들이 간다는 찐 맛집을 누릴 수 있었던 것은

사실 남편의 특별한 지도 덕분입니다.

쉼을 위해 떠나 떠나왔는데,

굳이 흑기사를 자처하며 남편이 와서 함께 보낸 시간들,

육지에서는 가족을 위해 사느라 남편의 어깨도 무거웠었겠지요.

제주에서의 우리는 제법 사이좋게 세월에 예쁘게 물들어가는 중년부부가 되어가고 있었습니다.

남편이 언제 찾았는지, 예쁘다는 제주의 카페들, 그리고 도민 맛집들을 분류해서 찾아

지도로 만들어 두었네요.

영자언니의 전국 맛집지도가 한 때 유명했다는데,

오직 아내만을 위한 제주맛집지도를 색깔별로 분류해서 만들었어요.

다 가보진 못할 듯 하지만 남편이 공들인 시간 때문인지 지금까지 실패한 곳은 없네요.

남편이 만든 맛집지도

제주살이를 시작할 때 남편의 첫 등장은 적색경보였는데,

제 옆자리를 늘 지켜주는 이 사람은 제 인생의 청색경보가 맞네요.


해가 지는 한담해변에서 함께 노을을 바라봅니다.

하늘을 물들이며 지는 해가 다시 뜨겁습니다.

애월바다의 노을


수월봉의 바다
서귀포 씨에스호텔에서의 노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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