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야근

by 태태 Mar 23. 2025

첫 글에서 살짝 언급했던 인턴 이야기를 하고자 한다. 올해 1월부터 6월까지 총 6개월 동안 PM 직무로 인턴 생활을 하고 있다.

작년 겨울 인턴이 붙었을 때는 너무 기뻤다. 학생회장 임기가 끝남에 동시에 인턴 기회가 주어졌으니, 인생이 순탄대로라고 생각했다.


그 순탄대로의 희망은 입사 첫날 깨졌다. 들어도 알 수 없는 온보딩 교육이었고, 상당히 수평적인 구조를 가진 회사였다. 여기서 말하는 수평적인 회사는 정말 포장이 잘 된 표현이다. '수평적이다'라는 건 개인주의이고, 성과 중심의 회사라는 의미이기 때문이다. 나한테 인사는커녕 거들떠도 보지 않는 부서 사람들이었다. 그럼에도 매주 평균 8시간의 회의를 진행한다니, 내가 여기서 살아남을 수 있을지 확신이 서지 않아 두려웠다. 첫날 회의했을 때 팀장님께서는 참관의 느낌으로 분위기만 보라고 하셨다. 그 분위기는 나에게 너무 절망적이었다. 알 수 없는 표현들이 난무했고, 이 회의에 나의 역할은 무엇이 될지 전혀 감을 잡을 수 없었다. 그날은 퇴근하고 집에 가서 혼자 소주를 마시며 남몰래 울다 잠들었다.


사람은 적응의 동물이라고 하던데, 나는 입사한 지 3개월이 지났음에도 아직 적응하지 못했다. 지옥의 출퇴근길은 적응했지만 회사 프로세스는 아직이다. 사수는 나에게 제대로 된 업무 프로세스를 알려주지 않는다.

"일단 해보시겠어요?"라고 하면 일단 한다. 누가 봐도 형편없는 보고서를 사수에게 공유한다.

"태태님, 잠시 시간 괜찮으실까요?"

그럼 나는 도살장 끌려가는 소처럼 사수에게 간다.

약간의 짜증이 섞인 말투로 사수는 "왜 이렇게 하셨어요?" 하며 묻는다.

난 대답하지 못한다. 누가 봐도 납득할 만한 근거가 아니었기 때문이다.

사수에게 피드백을 받고 나면 작성한 보고서를 수정하기 시작한다. 그렇게 세네 번의 피드백과 수정을 거치면 보고서가 완성이 된다.


모든 업무에서 피드백이 이뤄지니 시간은 지체될 수밖에 없다. 그럼에도 기획 일정에 맞추어 진행해야 하기에 난 야근을 선택했다. 당연하게도 야근 수당은 없었다.

2월에는 총 두 번의 야근을 했다. '그래도 한 달에 두 번 정도 야근은 버틸 만하다.' 라며 혼자 자위를 하곤 했다.


3월, 변수가 발생했다. 당장 이번 주가 기획 마무리 일정인데 다 갈아엎어야 하는 상황이 발생했다. 야근을 피할 수 없었고, 일주일 내내 야근을 하게 되었다. 하루는 자정에 가까운 시간에 퇴근하기도 했다. 야근할 때 가장 크게 든 생각은 '퇴사'였다. 이렇게까지 힘들게 일을 할 거면 퇴사를 하는 게 맞겠다고 생각했다. 정말 절실히 퇴사를 생각하며 어떻게 팀장님께 말씀드릴까 고민하던 중 십년지기 친구가 나에게 "어딜 가도 힘들 텐데 3개월만 마인드를 바꿔서 버티는 건 어때?"라고 조언을 해줬다. 그래서 까짓 거 앞으로 진짜 사회생활을 하면 더 힘들 텐데 버텨보자고 생각했다.


결국 퇴사는 하지 않았다. 남은 기간 동안 버텨보자라는 마인드로 일을 하고 있다. 6월 말까지 버티고 난 뒤, 기뻐하며 퇴사하는 그 순간만 기다리고 있다. 6개월의 인턴도 겨우 하루하루 살아가는 나의 무능함을 느끼게 되는 경험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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