믿음의 증거

by 심가연



"엄마, 나는 예전에는 누가 무슨 말을 하면 그대로 믿었다. 근데 이제는 왜 그렇게 말하는지 생각하게 돼."


삼십대에 접어든 어느 날, 나는 엄마에게 이렇게 말했다.

엄마는 나를 보며 당연하다는 듯 대답했다.


"그래 너도 이제 어른이 되었구나."


살면서 가장 어려웠던 순간 나를 도와준 사람들은, 그저 나를 믿어주며 내가 하고자 하는 일을 응원했던 사람이었다. 그 중 한 명인 남편은 결혼 하였고, 한 명인 친구는 평생의 은인으로 생각하고 있다. 그 말들은 어둠 속의 빛처럼 나를 이곳으로 이끌었다.


"너에게는 뭔가 있어. "


"또라이짓도 계속 하면 인정하게 되어있어."


그런 작은 말들이 무거웠던 첫 발을 딛는데 큰 힘이 되었다. 반대로 내가 일을 구하는 과정에서 만나며 데였던 사람들 중에는 '의구심'이 들게 하는 어법을 가진 이들이 있었다. 그들은, 정확한 댓가보다는 모호한 '가능성'을 강조하며 나의 노력과 시간을 거머리처럼 빨아먹으려고 했다.


'네가 잘하면 이 작품을 올려줄 수도 있어.'

'이게 잘 팔리면 몇부를 찍어서 돌려줄 수도 있어.'

'열심히 하는 게 아니라, 잘 해야지.'

'결혼하면 글 못 써.'


이들의 말에는 다른 저의가 담겨 있었다. 그들의 마음에 들어야만 내가 정당한 댓가를 받을 수 있다는 위협이었다. 후려치기 어법을 통해 나는 어떠한 댓가도 받지 않고 내가 선망한 일을 해볼 수 있고, 사다리를 타고 올라갈 지도 모르겠다는 가능성으로 희망고문을 한 적도 있었다. 그것은 20대 후반 내가 일을 찾으며 겪었던 일이었다. 일을 하고도 돈을 못 받은 적은 없었다. 그런 모호한 사람들이 건넨 사다리를 나는 올라가지 않았으니까. 그런 멋 없는 어른들이 건넨 일은 대체로 정해진 게 없고 배울 것도 없었다. 그의 회사들에는 그만 없으면 하나같이 그를 조롱하는 직원들로 가득했다.

"저 사람과 술을 마실 때는 꼭 여자 직원 한 명을 데려가야해."

라고 조언해주기도 했다.


내가 가장 좋아하는 말이 있다. 김미경 강사님의 '사람을 통해 배우라'는 말이다. 나는 이 뜻을 작가교육원에서 실감했는데, 한 작가를 만난다는 것은 그 작가가 가진 세계를 만나는 일이다. 때론 내 역량이 부족해 좋은 평가를 받지 못한 선생님도 있었지만 나는 그 선생님이 긴 시간 자신의 이야기를 세상에 팔았던 힘을 느낄 수 있었다. 그 안에는 선생님의 세계의 멋과 낭만, 매력이 있었다.


또 한 번 가장 힘들었던 순간은 두 아이를 낳았을 때였다. 그때도 은인들을 만났는데... 그 사람들은 '엄마'라는 이름으로 모인 글쓰는 엄마 스터디였다. 이 분들이 나의 글을 읽고 하나씩 참고 대본 권해주었고, 따뜻한 조언들을 해주었다. 그 말들은 내게 작은 빛이 되었다.


그렇게 어둠은 빛을 볼 수 있게 해준다. 시절인연은 때론 그 시절만 만나고 떠나는 사람처럼 느껴지는 말이기도 하지만, 거꾸로 그 시절을 보낼 수 있게 해준 은인을 지칭하는 말은 아닐까.


삼십대 중후반이 넘어가고 있다. 믿을 수 있는 사람들을 만났고 믿을 수 없는 사람도 만났다. 사람을 볼 때 그 믿음의 증거는 무의식적으로 하는 말과 반복되는 행동을 통해 드러난다. 그런 신호는 잘 변하지 않는다.


나는 얼마 전 한 계약을 취소했다. 믿음의 증거는 보인다. 우리가 외면하려고 하지 않는다면. 삼십대 내가 사람들에게 뒤통수를 맞으며 잃어버린 것은 맹목적인 믿음이었다. 그리고 얻은 것은 믿을 수 있는 사람의 행동패턴을 발견하게 되었다.


첫째, 돈 이야기를 하지 않은 채 약속할 수 없는 '기회'를 준다고 한다.

둘째, 나와의 아주 사소한 약속도 지키지 않는다.

셋째, 나의 이야기를 귀기울여 듣지 않고 자신의 말만을 한다.

넷째, 본인이 나에게 한 이야기를 기억하지 못하고, 다시 반복한다.

다섯째, 그의 주변에서 함께 일하는 사람들도 그와 일하기를 말린다.


내가 일을 하거나 사회생활을 하며 만난 사람들을 거르는 기준은 이 패턴의 증상이 나오면 레드불이 켜진다. 친목이 아니라 '일'로 엮인 사이에서 유독 '갑'이 이런 경우가 많은데, 그럴 경우 믿고 걸러준다. 작가를 지망하는 사람들은 자신의 꿈을 쫓기 위해 시간과 돈을 투자하며 자신의 전 생애를 바친다. 타인의 시간을 공짜로 생각하는 이들을 구분하지 않는다면, 그들은 나의 시간과 저작권도 꿈까지도 앗아갈 수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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