시작이 반이라지만, 이제는 끝내고 싶다.

by 심가연

어릴 때부터 이십 대 내내 아버지에게 들었던 말은 얘는 뭔가 열심히 하긴 하는 것 같은데, 끝이 흐리다는 것이었다. 그 말에 반박할 수 없었던 것이... 실제로 나는 충분히 할 만큼 해봤다는 생각이 들고 호기심이 내려가면 하던 일을 내려놓기 일수였다. 어째서 나는 끝이 없지, 그것이 늘 목에 걸렸다.


이십 대에는 그동안 부모님 눈치 보느라 마음대로 해보지 못했던 것들, 그야말로 꽂힌 것들을 모조리 즐기고 누리기 위해 최선을 다했다. 가고 싶었던 문학 아카데미를 수강해보기도 하고, 중학교 졸업 이후에 그리고 싶었던 그림을 그리려고 시각디자인을 부전공하고, 우쿨렐레를 사서 혼자 독학으로 공부하며 쳐보기도 했다. 이런저런 일을 할 때마다 부모님은 어설프다. 혼자 독학으로 배우지 말고 제대로 자격증이라도 따라고 권했다. 나는 그냥 재미있어서 시작했고, 그 재미가 생각보다 없어서 멈췄을 뿐이다. 생계를 꾸리며 살아온 부모님에게 이십 대 후반이 되도록 놀이를 하고 있는 나는 얼마나 철없어 보였을까.


그 당시 나의 신념은, 나의 놀이를 돈으로 만들어 보리라. 즐겁게 돈을 버는 날이 오게 만들고 싶었다.

그러나, 끝내 부모님이 바라시는 그 끝에는 가지 못했다.


사무치는 그 끝에 대해서 늘 생각한다. 나의 꿈이 '돈'으로 이어지는 것은 어떻게 보면 허상과 같았다. 돈이 되는 일은 허무할 정도로 단순하고 반복되는 어떤 수요에서 발생한다. 예를 들어 나에게 어떤 수업을 받고 싶어 하는 사람이 있다면, 그것은 내가 좋아하고 흥미 있어하는 주제의 공부가 아니라, 나를 고용한 사람의 흥미와 수준이 맞는 것인 경우가 많다. 그걸 맞추기란 불가능에 가까운 것이다.


결국은 두 가지의 일을 오가면서 개인 작업은 틈틈이, 생계를 그러쥐며 줄타기를 해야 한다. 나는 아직도 생계를 온전히 책임지지는 못하는 상태다. 천천히 그 좋아하는 작업을 돈으로 만들기를 위해 한 계단 한 계단씩 오르고, 내리 고를 반복할 뿐이다.


삼십 대가 되고 나서야 깨달았던 것은 이십 대의 나에게는 뭔가가 부족했다. 시작이 호기심이었다면, 돈이라는 끝을 내기 위해서는 절박함과 치열한 인내가 필요했다. 힘들고 치사하고 더러워도 이 돈을 벌기 위한 어떤 인내의 동기가 필요했는데... 나에게는 전혀 그 이유가 없었다. 첫째로 돈 욕심이 없었다. 둘째로 이십 대의 나에게는 언제든 삼시 세 끼를 차려주는 다정한 외할머니가 있었고, 셋째로 매일 열심히 나가서 일을 하는 아빠 엄마가 있었다. 나 역시 아르바이트라도 쉰 적은 없었지만. 내가 가장으로... 이 집의 생활을 책임져야 한다는 어떤 절박감이나 생활력에 대한 의지는 전혀 없었던 것 같다.


돈에 대한 낮은 관심이 지금의 나를 만들었다. 이것이 과연 단점이기만 하지는 않다. 돈에 관심이 없기 때문에 좋아하고 관심 있어하는 일을 거꾸로 선택할 수 있었다. 모든 기질에는 장단점이 있어서, 달리지 못하기 때문에 볼 수 있는 그림이 있고, 눈이 없기 때문에 들을 수 있는 소리가 있다.


나는 돈 모르는 낭만주의자였다. 이런 사람의 결과는 어떻게 보면 뻔했다. 반대로 남편의 경우는 20대부터 '일정한 돈'을 벌기 위한 인생이었다. 그것만을 위해 매진했다. 일정 수준의 연봉이 자신의 목표이자 꿈이었다. 어떻게 그게 꿈일 수가 있어?라고 물었지만 그는 호불호가 아니라 자신의 전공으로 갈 수 있는 직장과 효율성을 대비 돈을 많이 주는 곳으로 계속 이직하며 몸값을 불려 '좋은 아버지', '부끄럽지 않은 남자'가 되고 싶어 했다.


나는 이 사람을 이해할 수 없었지만, 그가 성실했고 그가 자신이 가진 가치를 지키기 위해 눈물을 흘리며 나아가는 모습이 멋있다고 생각했다. '많은 '시작'을 했지만 끝을 내지 못한 나에게 그는 단 하나의 칼을 쥐고 계속 조금씩 끝을 내며 다음 회사로, 그다음 회사로 이직을 하며 나아갔다. 남편과 살면서 나는 부모님이 말하는 '끝'이 단순히 돈만이 아닌 어떤 꿈과 직업의 연결고리를 말한다는 것을 이제야 느끼게 되었다.


왜 부모님은 나의 이상을 알아주지 못할까에 대한 한탄은, 나약하고 절박하지 못했던 과거 나의 목소리였다. 두 아이의 엄마가 된 나는 이제는 뭔가 달라졌다. 아주 확실한 목표가 있다. 정확한 액수가 있고, 아이들의 학원비를 벌고 싶고 남부럽지 않게 해주고 싶다는 마음의 목소리가 쉴 새 없이 흘러나온다. 지금 내가 바라는 끝은 이렇다. 드디어 부모님이 말하시던 끝을 알게 되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