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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심가연 Apr 12. 2024

계속 쓰면서 생긴 질문에 답하다




긴 하루가 가고 나면 책상에 앉아서 하루를 돌아본다. 그날의 사진들은 인스타에 올리거나, 블로그에 기억할 것들을 기록한다. 바쁘게 지나간 하루들은 사진 속에 차곡차곡 쌓여서 터져나갈 듯하다. 무엇을 찍었는지.. 무엇을 봤는지.. 심지어 무엇을 샀는지조차 가물가물하다.


그렇게 지나가는 시간 속에서 정말로 내가 생각하고 있는 것이 무엇인지, 내가 하려던 일이 뭐였는지 그 자체를 기억해 내려고 애써본다.


그 애씀의 첫 번째로 보통 나는 노트나 핸드폰을 켜고 키보드를 두들겨 천천히 지금의 기분을 적어 내려간다. 한 개의 문장은 그다음 문장으로 이어지며 물이 졸졸 흐르듯이 말이 새어 나온다. 그렇게 쓰면서 문득 나를 알아챈다.


그 말이 그 말이 아니고, 그 뜻이 아니었구나. 고르고 골라 … 생각의 끝에 도달한 하나의 문장을 만난다.

툭툭. 그렇게 감정을 털어낸다. 잘 세탁된 옷처럼 탁탁 접어 서랍에 넣듯이 일기장에 적고 덮는다.


휴우. 한 시름 덜었다.

아주 오랫동안 이런 글쓰기 행위가 이어졌다.

내게 브런치는 잘 말린 양말 서랍장이었다.

내 일상을 정리해 둔 언어의 세계.


헌데 점점 그 세계가 갑갑하게 느껴졌다.

그 세계에 나 혼자 떠드는 느낌이 든다.

이제는 누군가 초대하고 싶다.


작년에 ‘뜨개에서 보낸 한 철’이라는 뜨개와 저장강박을 주제로 에세이집을 묶었다. 그렇게 전시를 위해 책을 묶은 후 느꼈다. 이것은 판매용이 아니라는 것을.


읽는 사람들에게 나는 질문을 던지지도 않았고, 듣고 싶은 대답도 없었다. 이렇게 허망할 수가. 책을 엮고 만들어보니 이제야 조금씩 보인다. 책의 목차가 어떻게 구성되고 넘어가야 하는지, 책의 기획은 얼마나 더 날카로워야 하는지.


#독자를 초대하려면? 유혹하려면? 읽게 하려면?

이 첫 단추를 잘 꿰어야 한다.


읽으면서 이거 정말 재미있는데라고 느꼈던 에세이는 정보를 한 번에 말하지 않고 초반에는 궁금하게 만들고, 천천히 이야기를 나눠서 후반에 가장 중요한 비밀을 알려주었다. 에세이집에도 장편과 같은 기승전결 구조가 있고, 단편처럼 한편씩 쓰인 형태가 있다.


이번에는 장편의 구조로 목차를 구성해서 에세이를 써보고 싶다. 왜냐면 그렇게 정보를 배분해서 밀당을 해야지만 책을 끝까지 읽을 수 있는 동력을 독자가 가질 수 있고, 이야기에 에너지가 생긴다.


작가는 계속 말한다. 궁금하지?


 기승전결이 착착 넘어가고, 작가의 캐릭터가 살아있어 함께 노는 듯한 생생한 이야기를 써보고 싶다. 구체적으로 내가 읽고 자극을 받았던 에세이를 언급하자면,  태재 작가의 ‘책방이 싫어질 때‘와 홍장미 작가의 ’ 결혼탈출‘이 있다. 신랄한 문장과 기승전결의 코너링을 함께 따라가며 느낀 시원하고 능숙한 말맛에… 읽고 나면 그 작가에게 완전히 입덕해 버린다. 책방이 싫어질 때는 기승전결 자체가 강한 작품은 아니었지만 특유의 말맛과 문체가 압도적이었다.


잘 쓴 작가들의 작품을 떠올리다 보니 문득 작가교육원에서 만난 드라마 작가의 조언이 떠오른다.

 이견이 없는 작품을 쓰면 된다.

 작가가 되는 방법은 아주 간단하다.

공모전에 당선이 되면 된다.

맞는 말이다. 그게 어려워서 그렇지.


잘 쓰는 건 도무지 한 번에 되는 일은 아닌 것 같다. 그렇다면 질은 모르겠고 그러면 양으로 승부를 다시 해볼까.


하지만 나는 한 번씩 글을 쓰다가 멈추는 시기가 있다. 아무 말도 하고 싶지 않을 때… 아무 글도 쓰지 않는다. 떠오르는 스토리나 소재만 메모한다. 그럴 때는 되도록 몸을 움직이며 집안 정리와 청소를 하고, 아이들과 신나게 놀고 맛있는 걸 먹고 일찍 잔다. 죽고 사는 일도 아닌데 쓰기 싫다면 쓸 수 없는 게 글이다.


머리에서 나오는 말이 없을 때는 그저, 읽는다. 천천히. 그러다 보면 어느 순간 끼깔난 작가의 작품을 보며 가슴에 불이 번쩍 붙으며 일어나 진다.


나도 이렇게 쓰고 싶다. 이렇게 쓸 수 있을 것 같은데 말이지. 아직 열심히 안 해서 그렇지.. 이렇게 핑계도 대본다.


한편으로는 글을 쓰는 일이 지금 시대에 맞을까? 필요할까? 사람들에게 필요한 글을 무얼까? 꼬리에 꼬리를 물고 질문이 쏟아진다. 왜냐하면 글을 쓰는 일은 다소 개인적이고, 이기적인 일이기도 하다. 혼자서 떠드는 것 아닌가? 다소 자기만족적인 부분이 강하다. 그것을 타파하려면 내 글을 누구에게 전하고 싶은지 보다 구체적으로 생각해 보거나, 사회적으로 의미가 있는 말을 해보는 방법도 있다.


글을 쓴다는 것. 말은 한다는 것은 그 이기적인 행위 속에서 나는 어떤 의미를 찾고 싶은 걸까? 단지 나를 이해해 달라고는 수준이라면 가치가 없을지도 모르겠다. 좀 더 사람들에게 내가 하고 싶은 이야기를 들을 만한 수준으로 자료와 정보를 모아서 알차게 전하고 싶다.


물론 내가 쓰는 글은 정치적인 글이 아니다. 정보전달의 목적보다는 어떤 문학적 성향을 가진 희곡, 동화, 대본의 형태로 된 픽션이다. 게다가 내가 브런치에 하고 있는 에세이는 작가의 일상을 다루며 자기 성찰의 도구로 역할을 하기도 한다.


그런 브이로그 같은 일상을 통해 무엇을 왜 전하고 싶나?


나는 내 안의 욕망과 결함을 발견하고 싶다.

내 안에 해결되지 않은 불안을 사람들과 이야기하고 내가 해답을 찾아가는 과정을 공유하고 싶다. 내가 어린 시절에 슬펐던 사건들이 현재까지 내 행동과 연관되어 미치는 일들을 이야기하고 싶고, 해결하고 싶다.


나의 결함을 고백하려면 어쩌면 용기가 필요할지도 모르겠다. 더 깊게 나의 심리적 문제라 행동장애로 나타나는 저장장애 이야기를 알아보기 위해 예술인 지원으로 심리상담을 시작하기로 했다.


어떤 답을 찾을 수 있을까? 아니면 어떤 질문을 얻을 수 있을까? 무엇이든 그 여정을 다시 시작해보려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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