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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김진주 Jun 17. 2024

악!(樂)소리 나는 육아

6.아이의 걸음에 맞추어 걷는 법을 배우다

느린 아이 육아의 핵심은 인내다.

사실 빠르고 영리한 아이 육아도 마찬가지다.

하지만 영유아기 시절, 또래에 비해 발달이 느린 아이를 키우는 엄마에게, 다른 아이와 우리 아이를 비교하게 되는 상황을 맞닥뜨리는 일은 어찌보면 필연이다.

그렇기에, 그럴때마다, 마음 속으로 외쳐야 한다.

우리 아이에게는 우리 아이만의 시간표가 있어!

아이를 세상의 평균에 끼워 넣으려 하지 말고, 아이의 시간표에 내가 순응해야 한다.

그래야 모두가 평안하다.


1년에 한번 찾아오는 영유아 검진은 내게 극도의 스트레스였다.

검진 마감 기한을 끝까지 채울대로 채우고 마지막에 마지막까지 미루다가 겨우 가서 끝냈다.

내 아이가 이것도 안되고 저것도 안되고, 또래 아이들이라면 응당 가능해야 할 발달 과정에 못 미친다는 사실을 문서로 확인하고 의사의 말로 한번 더 확인 받고 와야 하는 과정이 무척이나 어렵게 다가왔다.


사시에 안경을 쓰고, 한 두달에 한번 대학병원에 가서 시력검사를 할 때마다, 이정도 개월 수면 그림판을 보고 시력검사가 가능해야 할텐데 샘이는 묵묵부답이었다.

40개월이 다 되어서까지도 샘이는 그보다 더 어린 아기들이 하는 방법으로 시력검사를 대체했다.

우리 아이들은 기저귀도 늦게 벗어났다.

특히 샘이는 다섯살이 되었을 때 소변은 변기에서 처리할 수 있게 되었지만 대변만은 기저귀를 고집했다,

대변이 마려우면 기저귀를 다시 입고 꼭 정해진 장소에 혼자 숨어서 볼일을 보았다.

여섯 살 3월, 이제 어린이집이 아닌 유치원에 가야 하는데 이건 정말 아니었다.

이제 어느정도 말이 통하는 아이를 붙들고 변기에 응아하면 제일 좋아하는 장난감을 사주겠노라고 약속하며 눈물 콧물 쏟아내는 아이를 변기에 억지로 앉혀놓고 못 일어나게 손으로 눌렀다.

변기에서 응아하는 것이 너무 생소했던 아이는 훌쩍훌쩍 울다가 그 위에서 꾸벅꾸벅 잠이 들었고, 그 과정을 거치던 어느 날 갑자기 변기에서 응아가 나오는 경험을 한번 하더니, 그날로 대변 기저귀를 벗어났다.

이 일을 겪으며 다시 한번 깨달았다.

조금 느릴 뿐, 결국에는 다 하는구나.


샘이의 성장은 늘 그랬다.

조금 느릴 뿐, 결국에는 다 해냈다.

이런 성장의 경험은 아이에게도 쌓이지만, 엄마에게도 고스란히 적립된다.

힘들지만, 아이를 믿어주고 도와줬더니, 자신의 때에 자신이 해야 할 몫을 해내는 것이다,

느린 아이 샘이를 통해 나는 천천히 걷는 법을 배웠다.

높은 산을 느릿느릿 올라가다 산 꼭대기를 쳐다본다.

아직 까마득히 먼 저 높은 곳을 바라보며 마음이 아득해지고 몸은 지쳐간다.

그럴 때는 발 밑으로 시선을 돌린다.

그리고 함께 걷는 이의 발걸음에 템포를 맞춘다.

걷다 보면 시원한 바람이 불어와 땀을 식혀주기도 하고, 이름 모를 꽃들이 지친 발걸음을 응원해 주기도 한다.

등산로는 정상을 향해 곧장 오르막길만을 안내하지 않는다.

구불구불 능선을 따라 때론 돌아가게 하고, 쉬엄쉬엄 가라고 평지가 나오기도 한다.

가다가 어느 나무 아래 평평한 곳에서 지친 몸을 쉬며 물도 한 모금 마시고, 힘을 얻어 천천히 올라가다 보면 까맣게 잊고 있었던 정상이 내 눈앞에 보이기 시작한다.

그렇게 올라간 정상에서 내가 올라온 그 길을 가만히 내려다본다.

힘겨웠지만, 한걸음 한걸음 정성을 다했다. 후회는 없다. 오직 보람만 있을 뿐이다.

정상의 희열은 찰나이지만, 마음에 진심으로 남는 것은 구불구불 돌아 올라온 그 길의 배려, 거기서 스쳐간 바람의 향기, 꽃들의 인사말이다.

내가 참 좋아하는 오르막길이라는 노래에 이런 가사가 있다.


한걸음 이제 한걸음일 뿐, 아득한 저 끝은 보지마,

평온했던 길처럼 계속 나를 바라봐줘 그러면 견디겠어

사랑해 이 길 함께 가는 그대

굳이 고된 나를 택한 그대여

가끔 바람이 불 때만 저 먼 풍경을 바라봐

올라온 만큼 아름다운 우리 길


느린 아이 샘이에게 엄마가 전하고픈 이야기가 고스란히 담겨있다.

봄이 샘이는 이제 일곱살이 되었다.

이사를 하고 처음 단설 유치원에 입학하던 여섯 살, 엄마의 마음에는 근심이 가득 자리했다.

어린이집만 다니던 아이가 유치원에 가서 과연 잘 할 수 있을까

아이 기초조사서에 샘이에 대한 기본 정보를 포스트잇까지 붙여가며 빼곡히 적어 보냈고, 3월 개학 첫 날 저녁, 샘이를 처음 만난 담임 선생님은 전화를 걸어오셨다.


통화는 한시간 가량 이어졌다

“어머니, 오늘 하루 걱정 많으셨죠? 아이가 정말 밝고 사랑스러워요

그런데 어머님이 미리 말씀해 주신대로, 유치원의 여러 규칙과 규범을 습득하고 단체 생활에 적응해 나가려면 앞으로 많은 훈련이 필요할 거 같아요”

선생님은 말씀을 이어나가셨다


“그런데 어머니, 저는 아이에게 욕심이 생겨요

저도 오랜 교사 생활 하면서 처음 보는 케이스의 아이이지만, 아이의 눈을 보면 알아요. 이 아이는 가르치면 변화할 아이라는 사실요. 저는 샘이를 다른 친구들과 다르게 보지 않을 거에요. 열외에 두지 않을 생각이에요. 물론 스무명의 친구들과 한 반에서 생활하려면 친구들의 배려가 필요하겠지만, 이 아이를 욕심껏 최선을 다해서 가르쳐 볼 생각입니다. 그러니 너무 걱정하지 마세요 어머니”

전화를 끊고 한참을 울었다.


나의 정성과는 별개로 샘이의 인생에 너무나도 좋은 분들을 만나 샘이의 성장을 도와주고 격려해 주시는구나… 세상 모든 것에 감사했다.

아이를 향한 특별한 사랑을 품으신 선생님의 한결같은 지도 덕에 1년동안 유치원에서 샘이는 놀라운 성장을 보였다.

자기만의 세계로부터 벗어나, 친구들을 인지했고, 즐겁게 수업에 참여했고, 자기에게는 꽤나 어렵고 불편한 규칙과 규범을 지키는 일에도 익숙해졌다.


6세반이 끝날 무렵 선생님은 말씀하셨다

“어머니, 이제 7세 반에 가서도 아무 문제 없이 잘 적응할테니 걱정하지 마세요”

생명의 은인을 만난 것만 같았다.

내가 한 일이라고는 아이를 믿어주고 사랑해주는 일, 일주일에 한번 꼬박꼬박 센터에 데려다주고, 단체 생활에 힘들었을 아이가 집에 돌아오면 위로해주고 격려해준 일. 그게 전부였다.

여전히 샘이는 또래에 비해 언어가 미숙하고, 소근육이 약하며 호불호가 강하다.

하지만 처음 센터에 갔던 4살의 샘이와 지금을 비교하자면, 정말이지 엄청난 성장을 이루었다.


느린 아이 샘이를 키우며 그런 생각이 들었다.

다른 아이와의 비교를 당장 멈추자,

대신 한 달 전의 샘이, 6개월 전의 샘이, 1년 전의 샘이와 비교해보자.

아이의 성장이 보였고, 내 마음에 평안이 찾아왔다.

오랜 난임 기간 끝에 찾아온 축복, 봄이와 샘이.

나는 단순히 아기가 좋아서, 어서 엄마가 되고 싶어서 그토록 임신을 원했었다.

다른 사람들은 쉽게 이루는 일들이 나에게는 유독 어려운 것만 같아 세상이 원망스러웠다.

그렇게 찾아온 나의 아기들을 정작 어떻게 키워야 하는지에 대한 스킬이나 매뉴얼은 전무했다. 아니 나는 애초에 그런 것들에 관심이 없었다.


그저 사랑받기 위해 태어난 존재들을 향해 무한한 사랑을 쏟아부어 줄 것을 결심하고 사랑과 기도로 아이들을 맞이했다.

육아의 항해는 도무지 종잡을 수 없어서, 크고 작은 파도가 몰려올 때마다 나는 쉽게 휘청이고 방황했다.

지옥 같은 상황과 좌절의 쓴 맛을 경험하며 내가 놓지 않은 한 가지는 결국, 내가 흔들리지 말아야 한다는 다짐과, 다른 무엇이 아닌 내 아이를 믿어줘야 한다는 결심이었다.


느린 아이 모두가 우리 샘이와 같을 순 없다.

하지만, 병리적으로 어떤 문제를 가지고 있든, 단순히 발달이 지연되는 경우이든, 어려운 가운에 엄마가 붙잡을 것은 단 하나. 내 아이에게만 집중하는 사랑과 믿음의 시선이다.


우리의 여정은 아직 끝나지 않았다.

나는 우리의 인복이 우리를 끝까지 안전한 곳으로 데려다 줄 거라 믿는다.

무엇보다 사랑을 가득 머금은 우리의 아이들이 어느 곳을 가든 자신의 방법대로 자신의 할 일을 훌륭하게 해내 보일 것을 믿는다.오지 않은 미래를 걱정하기 보다는, 우리가 함께 올라가는 이 오르막길에서 만나는 작은 바람과 고마운 꽃향기를 한껏 누려보리라 다짐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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