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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이상우 Aug 16. 2022

너라도 괜찮아 다행이다

세 식구 코로나 걸린 이야기

저희 세 식구도 코로나에 걸렸습니다. 그동안 은둔생활을 하며 없는 듯이 살았는데 역병을 끝까지 피할 수는 없었습니다. 조용히 살던 우리 가족에게 코로나 같은 최신 문물을 전해준 문익점은 저희 딸입니다. 역시 제일 신세대라 유행에도 민감하더라고요. 컨디션이 좋지 않은 것 같아 며칠 어린이집을 안 보냈었는데 어느 날 밤 열이 확 올랐고 다음날에 병원에서 코로나 확진을 받았습니다. 어디서 걸렸는지는 모르겠습니다. 사실 별 의미도 없잖아요.     



한 번에 다 걸린 건 아니고 재하- 재하엄마- 저 이 순서로 진행됐습니다. 딸의 확진은 수요일이었는데 아내는 목요일 저는 토요일이었습니다. 며칠이 지나도 제가 멀쩡하길래 혹시 슈퍼 면역자가 아닌가 하며 남몰래 뿌듯해하기도 했습니다. 역시 특별한 게 하나쯤 있을 줄 알았어하면서 말이지요. 그냥 바이러스 확산이 느렸나 봅니다. 증식이 느렸던 만큼 감소도 천천히 되고 숙주 성격 따라 뒤끝도 길지 않을까 걱정이 됩니다. 그래도 재하가 먼저 걸려 다행이긴 했습니다. 제가 먼저 걸렸었더라면... 식은땀이 나네요. 아마 책임추궁에 몸보다 마음이 더 아팠을 것 같습니다. 제 친구 A는 남편이 바이러스에 걸려오자 평소 행실을 볼 때 니가 코로나 데리고 들어올 줄 알았다며 그냥 같이 나가라고 했다더군요.     



코로나는 생각보다 더 아팠습니다. 요새 유행하는 종은 예전에 비해서 많이 약해진 거라는데 이 정도면 지금 걸린 게 다행이었습니다. 까짓 거 한 번 걸리면 걸리는 거지라고 만만하게 여긴 제가 바보 같았습니다. 먼저 걸린 아내가 끙끙 앓으며 「아직 늦지 않았으니 어디에라도 피해라」라고 말해줬는데 「죽어도 같이 죽고 살아도 같이 산다」라고 호기롭게 대꾸하고는 나중에 침대에 누워서 많이 후회했습니다. 전 빨리 걸리는 게 낫겠다 싶어 재하가 남긴 걸 주워 먹고 다녔거든요. 나라도 살았어야 했다는 것을 기침을 해대며 깨달았습니다. 밤새 목이 아파 침을 삼킬 때마다 「으아악...」을 소리쳤습니다. 한잠 자면 나을 것도 같은데 잠도 못 자겠더라고요. 지난날을 회개하는 기도가 절로 나왔습니다. 저는 몇 년 되지 않은 천주교 신자라 성모님께 전구하는 것이 어색해 잘 안 했는데 정작 아프니 뵈는 게 없더라구요. 하느님도 찾고 예수님도 찾고 성모님도 찾고 그랬습니다.

「이제와 저희 죽을 때에 저희 죄인을 위하여 빌어주소서...(침 삼키고) 으헉!!」

밤새 반복했습니다.     


도원결의


막상 재하는 이틀 만에 훌훌 털고 일어났습니다. 그나마 나았습니다. 제가 코로나로 아파보니 자식이 이처럼 힘들어했으면 제가 더 괴로웠을 거였으니까요. 앓기는 했던 모양인지 얼굴은 좀 홀쭉해지긴 했습니다. 그래도 어린이집 가지 않고 엄마 아빠랑 내내 같이 있으니 기분이 상쇄되어 더 좋은지 기운도 더 나는 것 같았습니다. 얼굴은 퉁퉁 붓고 병든 닭 같이 누워 있던 우리 부부가 상대할 수 있는 급이 아니었습니다. 이때 죽으라는 법은 없는지 우리 앞에 현실 성모님이 나타나셨습니다. 바로 저희 큰 처형이셨습니다. 큰 처형은 재하가 확진되기 전날 폭우 때문에 저희 집에서 주무셨는데요, 몇 달 전에 한 번 코로나 앓으셔서 그런지 검사해도 계속 음성으로 뜨시더라고요. 그럼에도 함께 격리하며 재하 돌봐주시겠다며 연휴에 오셨습니다. 덤으로 매끼 맛있는 것도 사주 시구요. 재하가 책상에 엎드려 「심심해, 재하는 이제 혼자야」이러는 모습이 눈에 밟히셨었대요. 잘했다 딸아. 큰 처형이 안 계셨다면 옛이야기 마냥 세 식구가 역병에 걸렸는데 아기가 먼저 떠나고 아내가 가고 무덤 곁에 남편이 쓰러져 있으니 마을 사람들이 불쌍히 여겨 함께 묻어줬다는 결말이 나올 수도 있었을 겁니다. 이 자리를 빌려 감사드려요 큰 처형 헤헤.     



며칠이 지나자 돌아오지 않을 것 같던 목소리도 약간 돌아왔습니다. 가래 끓는 느낌은 여전했지만요. 그간 애비 노릇 못한 것 같아 재하에게 쇳소리로 다정히 말했습니다.

「째! 이제 아빠랑 놀까?」

「아빠 목소리 이상해애. 쟤 싫어」

「지지배야, 니가 옮겨 온 거잖아!!」     



P.S: 큰 처형이 댁으로 돌아가시자 재하는 엄마에게 들러붙었습니다. 움직이지 못한 아내가 자기 가방에서 이어폰을 가져다 달라고 했습니다. 원치 않게 아내의 가방을 다시 열었습니다. 변한 게 없더군요. 혹시 여기가 진원지 일 수도 있겠다는 합리적 의심이 들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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