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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이상우 Aug 05. 2022

덤벼라 괴물아

나는 네가 보인다

요새 우리 딸은 모두가 자기를 보고 있다고 생각한다. 자아가 생기고 있는 과정인 것 같다. 함께 길을 가다 보면 늘 하는 소리가 이거다.

「아빠, 저 아저씨 or 아줌마 or 언니 or 오빠 가 재하 쫓아와. 쟤 집 와」

조그만 목소리로 말하면 괜찮은데 엄청 큰 소리로 얘기한다. 아주 민망하다. 사람도 가려가면서 하는데 가끔 잘생겨 보이는 남자 꼬맹이가 있으면 힐끗 보고 별 말 안 한다.

「재하야, 저 오빠는 재하 집에 와도 돼?」

「쬬아!!」     



생명체를 지칭하면서 얘기하면 그나마 낫다. 이제는 초자연적인 존재도 등장한다. 괴물이 보인다는 것이다. 아무래도 귀신을 지칭하는 것 같지만 아직 귀신이란 단어는 모르니까 콩순이에서 봤던 괴물이라는 단어를 쓰는 모양이다. 난감하기 그지없다. 「그렇구나, 괴물이 보이는구나」 이렇게 공감해주기도 그렇고, 「공자님이 괴력난신은 멀리하라고 하셨어」라고 하기도 그렇다. 핸드폰 카메라가 나온 이후엔 괴물 같은 건 사라졌다고 하니 왜 재하 말 안 듣냐고 엉엉 울었다. 그래서 그냥 「괴물 어딨어? 저리 가!! 아빠가 쫓아냈어」만 반복하고 있다.        



괴물이라는 말은 재하가 아는 최고의 비난이기도 하다. 딸은 자신을 「경찰 언니」로 불러달라고 한다. 한동안 ‘언니’로 불러달라고 하더니 경찰이 좋아 보이는지 ‘경찰’이라는 수식어도 붙었다. 아무튼 자기가 원하는 호칭과 다르게 부르면 상당히 역정을 내시곤 한다. 길가다 어르신들이 ‘아가’라고 부르면 씩씩거리다 좀 멀어진 후에 ‘괴물, 이 괴물!!’ 하면서 나름의 욕을 한다.        



괴물이 뒤에 있니?



물론 애들이 귀신 얘기 좋아하는 거 잘 알고 있다. 나도 그랬으니까. 어릴 적 책을 꽤 많이 읽어서 엄마의 기대가 좀 컸다. 그러던 그 아들이 어느 날 꼭 사고 싶다는 책이 있다고 엄마에게 서점에 가자고 했었다. 당신은 아마 「수학의 정석」 같은 걸 사고 싶어 하나 싶어 뿌듯하게 갔을 것이다. 나는 그날 「오싹오싹 공포체험」을 골랐고 그걸 보던 엄마의 황당한 표정은 30년이 지났어도 잊을 수 없다.      



오늘도 주방에서 딸내미 저녁 준비를 하고 있는데 재하가 달려오면서 외쳤다.

「아빠 괴물!! 괴물!! 괴물 옷걸이에 있어」

「그래 가보자!!」

이러기를 네다섯 차례 하자 짜증이 좀 났다. 또 가자고 하길래 가서 말했다.

「재하야 괴물한테 돈 줄까? 돈 주고 가라고 하자」

「안돼애!! 돈은 재하 꺼야 엉엉엉」


어흥 괴물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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