드라마 삼총사랑 우리집 삼총사
비가 오는 날이면 떠오르는 일이 하나 있습니다. 몇 달 전인가 재하가 배탈이 나서 어린이집을 못 간 적이 있었습니다. 전날에 딸기 우유 네 팩을 먹었기 때문이죠. 키즈카페를 다녀와서 목이 마르다며 달리더군요. 가공유 네 개면 제가 먹어도 울렁거릴 텐데 그 작은 몸으로 그만큼 마셔댔으니 멀쩡할 리가요. 토하고 난리를 쳤습니다. 구토를 그치고 우울해하는 것 같아 마트에 가서 물총을 사줬습니다. 괜찮은 것 같아서 갔던 건데 다 나은 건 아니었나 봅니다. 돌아오는 길에 카시트에 앉은 채로 다시 게워냈습니다. 비는 쏟아지고 길에 차는 많았고 애는 뒤에서 토하고 딸의 옷은 젖어가고 그랬습니다. 혼잣말을 했습니다. 「내 인생이 이렇게 끝나는구나」. 저는 그날 지구 종말이 올 줄 알았는데 딱히 또 그렇지는 않더라고요. 그래도 애 보면서 힘들 때마다 그때를 떠올리며 ‘오늘이 그날보다는 낫다’며 스스로 위로합니다.
재하도 그때가 강렬한 경험이었는지 비만 오면 자기 어린이집 안 간다고 했습니다. 그간 가뭄이어서 재하가 비를 핑계 삼아 등원을 거부했던 적은 별로 없었지만 이슬이 조금만 날려도 비 온다고 자기 아야 하다는 거였습니다. 그래도 몇 달간 또 컸는지 아님 어린이집에 마음에 드는 남자아기라도 있는지 이번 주에는 비가 내내 오는데도 별말 없이 등원했습니다. 다만 재하는 분홍 꽃신을 신고 갔습니다. 친구들은 비옷을 입고 장화를 신고 왔고요. 그건 다른 원아들은 빗물을 가르며 걸어왔다는 뜻이겠고 재하는 물이 발에 닿지도 않았다는 뜻이었겠지요. 안겨갔으니까요. 한 손에는 34개월 한 손에는 골프 우산이라니. 미안하다 허리야 팔아.
집에 와서 아픈 몸과 마음을 달래려 컴퓨터를 켰습니다. 제가 요새 알렉상드로 뒤마의 「삼총사」를 열심히 보고 있는데 너무 재미있는 거였습니다. 혹자가 평하기를 독자들이 선택한 고전이라는데 그 말이 맞는 것 같습니다. 제 생각에 50년 후면 세계문학전집에 「다빈치코드」가 들어있을 것 같은데 「삼총사」 정도면 무난하지요. 검색해보니 BBC에서 「삼총사」로 드라마를 만든 게 있다고 하더라구요. 그래서 기대를 하며 찾아보았습니다. wavve라는 ott에서 서비스하고 있었습니다. 한 달 100원 이벤트를 하고 있길래(광고 아닙니다...) 바로 두근거리며 결제를 했지요.
굉장히 건전했습니다. 그간 제가 알았던 영드는 피 튀기는 것과 옷 벗는 것에 관대했는데 이건 야릇해질 만하면 화면이 휙휙 돌아가더라고요. 그럴 리가 없었습니다. 영국 드라마잖아요. 찾아보니 예전에 「삼총사」를 KBS에서 보여준 적이 있었습니다. 그랬구나, 방송공사 높으신 분들이 잘라 버린 걸 웨이브에서 주워왔구나 싶었습니다. 우리나라는 이래서 안 된다며 다시 구글에서 검색을 했습니다. 전 원래 무삭제판을 좋아하거든요. 왕비가 부하랑 바람을 피우는 등 드라마 설정은 막장이었는데 탈의는커녕 화면에 아무것도 안 나오는 건 이치에 맞지 않았습니다. 제가 남자군인 넷만 계속 보려고 이걸 보는 게 아닌데 말입니다. 띄엄띄엄이나마 유튜브나 다른 영상 제공 사이트에 올라와 있었습니다. 흐뭇하게 웃으며 클릭했건만 결과는 똑같았습니다. 그냥 청소년용 「삼총사」를 만든것이더라구요. ‘아니 이럴 거면 어린이용으로 만들어 온 가족이 볼 수 있게 만들어 놓지 뭐하는 짓이야’라고 비판적 사고를 하며 정주행 했습니다. 제 결론은 그렇습니다. 책이 더 재미있다 흥.
때가 되어서 하는 것이겠지만 지난번 재하가 말이 늦다는 글을 올린 후 곧바로 입이 좀 풀렸는지 딸이 말을 곧잘 하기 시작했습니다. 다음에는 날 잡아서 응가에 대한 글을 올려야겠습니다. 아무튼 재하를 어린이집에서 데리고 왔더니 저에게 물어보더라구요.
「아빠, 쟤 얼집가. 아빠 뭐했오오?」
순간 당황했습니다.
「아빠 삼총사 봤어」
「삼통사가 모오오야?」
「삼총사? 세 명이란 거야. 하나 둘 셋. 음... 엄마 아빠 재하. 이렇게 셋인 거야」
「삼통사! 엄마 아빠 재하? 으하하하」
생각해보니 저희 집도 삼총사가 된 이후로 무척이나 건전해졌습니다. BBC 뭐라 그럴 일이 아니었네요. 셋은 원래 그런가 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