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빠는 혼자 남아 애를 보다가
재하엄마가 우리를 두고 친구들과 양평으로 1박 2일 떠났다. 간다고 했을 때 농담인 줄 알았는데 남편과 딸을 굉장히 고평가 하는지 진짜 갔다. 남겨진 재하는 당연히 어린이집을 가지 않았다. 갑자기 목도 아프고 콧물도 난다고 했다. 점심으로 해 준 카레에서 당근이 나오자 다 골라내라 했다. 분명히 밥하기 전에 「재하 채소 정말 좋아해」란 말을 해서 넣었는데 소시지만 먹겠다고 성질을 냈다. 잘게 잘라 찾기 힘들었다. 배가 불러 기분이 좋아진 것 같아 눈치를 보며 말했다.
「째! 오늘 엄마 안 오는 거 알지? 아빠랑 잘 수 있지?」
「엄마 왜 안 와? 어디 갔어?」
「.... 엄마 일하러 갔어(사실은 일당들 하고 우리 버리고 놀러 갔어)」
「안 돼. 싫어. 재하는 엄마 제일 사랑해」
하며 당당히 TV 앞으로 갔다.
저녁때 (나의) 엄마가 육아를 도와주러 왔다. 재하는 할머니를 보고 공주놀이를 하자했다. 한복을 꺼냈다. 할머니는 마녀였고 나는 재하의 말이 되었다. 한참 놀다 씻고 셋이 누웠다. 재하 할머니가 실없는 소리를 했다. 어느 할머니가 더 좋냐고 했다. 재하는 바로 대답했다.
「분당 할머니가 제일 예쁘지」
신이 난 재하 할머니가 다시 물었다.
「우리 재하는 누구 닮아서 이렇게 예뻐?」
「엄마아ㅃ.... 할머니 닮았지!」
얘는 부모 없어도 굶어 죽지는 않겠다란 생각이 들었다. 재하 할머니는 손녀가 잠들자 매트리스가 불편하다며 우리를 버리고 침대방으로 가서 푹 잤다. 나는 재하 옆에 누워있었는데 가끔 재하가 내 가슴을 만졌다. 자기가 원하던 감촉이 아니어서 기분이 나빴는지 그때마다 발길질을 했다.
다음날 아침 재하는 엄마와 영상 통화를 했다.
「재하 잘 잤어?」
「네! 엄마 어디야?」
「엄마 친구들하고 놀러 왔어」
순간 재하 눈가가 움찔했다. 아빠가 말했던 거랑 다르다는 뉘앙스였다. 평생 노력이란 걸 하기 싫어 눈치만 보고 살아왔던 나는 바로 알 수 있었다. 얘가 눈치를 챘다는 것을. 미리 입을 좀 맞춰놨어야 하는데 꼬마를 우습게 봤다.
유아 무야 넘어가긴 했는데 재하 엄마는 두물머리에서 살기로 했는지 소식이 끊겼다. 몇 년 전 옥천허브에서 돌아오지 않던 택배들이 생각났다. 다행히 혼자 애 본 지 30시간이 넘어가자 관성에 몸을 맡길 수 있었다. 내가 재하였고 재하가 나였다. 해가 져서야 아내가 돌아왔다. 딸은 바로 엄마에게 달려갔다. 재회의 기쁨을 나누나 했는데 재하가 바로 서늘하게 물었다.
「엄마 회사 안 가고 어디 갔었어?」