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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이상우 Mar 19. 2019

서른 살, 군대에서 변기 뚫다

이등병 퀘스트

오늘은 이등병 퀘스트 중 하나인 변기 뚫기를 했다. 난이도는 꽤 높지만 은근히 자주 발생하는 이 퀘스트를 자대에서는 여지껏 해보지 않아서 좋아하고 있었는데 오늘 드디어 발생했다. 

1층 화장실을 담당하던 같은 분대 선임이 말년 휴가를 나가서 청소를 우리가 하게 됐는데 변기 뚫기는 당연히 걔 중 레벨이 가장 낮은 나에게 돌아왔다.  


어떻게든 되겠지란 마음으로 뚫어뻥을 짚었는데 이제는 연륜이 묻어나는 찢어지고 헤어진 뚫어뻥이어서 자신감은 떨어졌다. 두근거리는 마음으로 시작했다.  

하나를 뚫었다. 와우...! 

두 개는 꽤 어렵게 뚫었다. 나름 재능있는데? 세 개째는 안 뚫린다. 주여... 정말 안 뚫렸다.  


얼마나 안뚫리던지 여호수아 마냥 일곱번씩 일곱번 뚫어뻥 질을 하면 뚫릴까 했는데... 역시 안 뚫렸다. 

검은색 물이 넘쳤다. 주여...  

그러는 와중에 간신히 뚫어놓은 옆 칸에 사람들이 들어차기 시작했다. 노래가 절로 나왔다. 

막힌 변기 하나가 두개가 되고 세개가 되고 네개가 되고~  


신께서 도우셨는지 손에서 입질이 왔다. 뚫어뻥질 속도를 올렸다. 제발...제발... 마침내 성공했다. 투명한 물이 나오기 시작했다. 주여!!!  

기분 좋은 마음에 세면대에서 손을 빡빡 씻고 있는데 어느새 들어온 포대장님이나를 보며 말했다. "너 뭣하다 이제 씻냐" "변기 뚫었습니다" 웃으면서 내게 말했다. "불쌍한 놈..."  

뭐 나도 그렇게 생각한다.


유격훈련 한참 받을 때의 오묘한 표정


p.s : 군대 이등병 시절에 혼자 울면서 썼던 글입니다. 지금 봐도 울컥하네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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