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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이상우 Oct 25. 2019

번개조의 기억

군대이야기

내가 근무하던 부대에서는 ‘번개조’라는 특별 편성 기동타격대가 있었다. 저렇게 말하면 거창한 것 같지만 그건 아니었다. 각 분대가 순차적으로 돌아가며 하면서 2개 분대 인력을 엮은 조직이었다. 위병소나 탄약고에 수상한 사람이 나타나 총을 내놓으라는 등의 행패를 부릴 때 쫓아나가 초병을 지원하는 역할이었다. 보병부대에서의 5분 대기조와 비슷했다. 하지만 우리는 포병이었기에 영외로 나가지는 않았고 영내에서의 돌발 상황만 처리하면 되었다. 내가 번개조 일 때의 인원은 십여 명, 구성은 나를 포함한 본부분대와 앞 생활관의 측지분대, 장비는 색 바래고 가시 돋쳐 들 때마다 손에 상처가 나는 곤봉과 보푸라기 반 곰팡이 반이라 삼손이 아니라도 누구나 손쉽게 끊을 수 있는 포승줄로 무장하고 있었다.       


아직도 이 시대를 벗어나지 못했다....


원래 번개조의 이름은 긴급조치조, 비상대기조로 그냥저냥 무난했다. 그런데 어느 날 대대장이 어디서 뭘 듣고 왔는지 번개조라는 이름으로 바꾸라고 했다. 원래 군대는 토테미즘 시대를 벗어나지 못해 곰, 호랑이, 사자, 전갈, 독사 등을 부대 명칭으로 많이 사용했다. 이제는 이 조직에 애니미즘까지 침투해 번개도 어엿한 전우가 되어버린 것이다. 사실 군대의 높으신 분들은 명칭에 많이 집착하셔서 가끔 이 말이 진지한 건지 웃기려고 하는 건지 헷갈릴 때가 많았다. 우리는 그때 사단장 특별 지시에 따라 병 상호 간 ‘용사님’으로 부르고 있었기 때문이기도 했다. 예를 들면 불침번이 근무자를 깨울 때 상급자에게는 “용사님 눈을 뜨실 시간입니다”, 하급자에게는 “용사여 눈을 떠라” 하고 있었다.         



번개조는 가상의 경우를 가정해 매일 출동 훈련을 했다. 물론 주로 서류상이었다. 다른 부대는 모르겠지만 우리 부대는 거의 기록 속에서 성실히 훈련을 했다. 전산에 입력할 때는 ‘총검술’을 연마하며 ‘공산군 박멸!’을 외쳤다고 한다면, 실제로는 뒷산에서 잡초랑 사투나 벌이고 있는 식이었다. 단지 훈련 순서를 ‘병기본 – 총검술 – 수류탄 – 사격’ 이렇게 계속 ‘cntl+c, cntl+v’ 하며 복사 붙여 넣으면 감사 때 걸릴 수 있었다. 그래서 순서와 횟수를 적절히 바꿔야 하는 게 곤욕이었는데, 번개조 출동은 매일 같은 말을 써도 되었기 때문에 상대적으로 편했다. 가끔 FM이거나 심심한 당직사령이 걸리면 갑자기 번개조를 출동시키곤 했는데, 우리는 그럴 때마다 ‘시발시발’ 거리며 슬리퍼 차림으로 부지깽이와 넝마줄을 들고뛰어내려 가야 했다.    


     

그렇게 군 생활을 하며 전역이 한 석 달 정도 남았던 6월의 주말이었다. 갑자기 당직사령이 행정반 방송이 아닌 지휘통제실의 막사 전역 방송으로 급하게 ‘번개조 출동, 번개조 출동’ 하며 악을 썼다. 나는 침상에 엎드려 어떻게 하면 남은 군 생활을 대충 하면서도 무사히 넘어갈 것인가를 심각하게 사색하고 있었는데, 당직사령의 악다구니에 놀라 순간 밖을 내다보았다. 한 번도 본적 없었던 검은색 무리들이 잔뜩 부대로 들어오려고 하는 것이었다. 아무 상황도 듣지 못한 나는 나지막이 읊조렸다.

“시발. 좆 됐다.”     



첫 문단에서 언급했지만 나는 본부분대였다. 본부는 행정병들과 px 병, 보일러 병 등으로 이루어져 있었다. 함께 뛰쳐나가야 하는 측지 분대는 원래 땅을 측량한다는 뜻이었지만 실제로는 별의별 노가다와 두발 정리와 같은 잡무를 담당하고 있었다. 한마디로 주말이어도 생활관에 모여 있지만은 않을 가능성이 높았다. 각종 서무는 후임에게 넘겨주고 교육훈련 조작이나 하고 있던 내가 제일 한가했다. 덕분에 ‘번개조 출동’이라는 소리를 듣자마자 운동화도 신고 행정반으로 뛰어갈 수 있었다. 평소에 봐둔 가장 상태가 양호한 방망이와 밧줄을 들고 소리를 치며 뛰어나갔다.

“번개조 출동!!”

위에선 부끄러워서 차마 언급하지 않았지만 긴급조치조가 출동할 때는 ‘번개조가 나가신다. 길을 비켜라’와 같은 “번개조 출동”을 줄곧 외쳐야 했다. 이것도 타 부대와 차별성을 두려는 대대장의 지시였다. 우리는 해야 했고 대대장은 보시기에 좋았을 것이다. 그나마 긍정적으로 생각해보자면 거동수상자를 멀리서부터 큰 소리로 위협해 물리적 충돌 없이 쫓아내려는 의미가 아니었을까 싶다.       


     

“번개조 출동!! 으아아아아아아-!”

이 비명과 같은 구호를 계속 지르며 위병소까지 뛰어내려왔더니 이미 몸과 마음이 지쳐버렸다. 더 슬픈 것은 내가 맨 앞이었다는 것이었다. 군대에는 중간에 서야 하는데 이런 돌상황에 맨 앞이라니 무사히 전역할 수 있을까라는 생각이 들며 정신이 아득해졌다. 뒤에는 속속들이 후임병들이 도착했다. 사지방에서 페이스북으로 사회생활을 하고 있던 번개조는 행정반에서 이나마 곤봉과 줄을 챙겨왔다. 다만 이들은 이미 손이 까져서 아파하고 있었다. PX에서 물건을 팔던 유 상병은 상대를 쓸어버리겠다는 뜻이었는지 매장 청소용 빗자루를 들고 왔다. 보일러가 망가져서 고치고 있던 이 상병은 양손에 볼트 조이개와 드릴을 들고 왔다. 이발을 하던 최 상병은 미용가위를, 그 보조 신 일병은 바리깡과 머리 터는 스펀지를 들고 왔다. 그 검은 무리를 밀어버리겠다는 뜻이었을 것이다. 마지막으로 도착한 백모 이병은 바지가 엉거주춤한 것이 무언가 어색했다. 휴지를 들고 나오진 않았지만 표정에서 그간의 고뇌를 느낄 수 있었다. 그 친구의 인권을 위해 자세히 물어보지는 않았다. 아무튼 기적적으로 우리 번개조는 평소 목표한 시간 내로 위병소 앞에 각자의 무기를 들고 올망졸망 집결했다.      



이렇게 생긴 분들이 몰려왔다...


상대편은 온몸을 검은색으로 감싸고 있었다. 우리에게 MP5로 보이는 기관단총을 겨누고 있었으며 뒤에는 레토나 차량, 장갑차, 병력 수송 트럭이 줄줄이 서 있었다. 우리 초병들이 전화로 지휘통제실로 알리는 사이, 그 검은 일당들이 바리케이트를 알아서 치워버려 검은 병력과 검은 차량 상당 부분 부대 내로 들어와 있었다. 초병들은 위병소에 숨어 공포탄이 든 총을 휘두르며 ‘누구냐 넌’을 외치고 있었고, 위병조장은 넋이 나가 머리를 감싸 쥐고 있었다. 이 혼돈의 상황에서 우리 번개조가 용감하게 나서 검은 무리들의 진입을 저지한 그런 상황이었다.      



뒤에서 가위를 들고 있던 신모 상병이 나지막이 물었다.

“이상우 병장님. 어떻게 합니까?”

“........몰라. 말로 하자고 할까?”

어느 놈인지 모르지만 한 명이 또 말했다.

그래도 이상우 병장님이 앞에 계셔서 다행입니다.”

“.......야 꺼져.”     

나는 평화주의자답게 우리에게 맨 앞에서 총을 겨눈 검은 분에게 물었다.

“누구세요?”

“....웅얼웅얼.”

“네? 어디서 오셨냐고요?”

그 사람은 검은 마스크를 벗고 대답했다.

“...헌병입니다.”

순간의 장탄식이 새어 나왔다. 집에서 잠자던 전역 2년 남은 행보관도 부대로 뛰어오게 만드는 헌병이라니. 그 헌병들이 우리 부대에 이렇게 중무장하고 들이닥치다니. 우리 부대에 테러 용의자라도 있는 것일까. 그 테러 용의자를 감싼 우리는 어떻게 되는 거지. 맑고 고운소리 영창으로 끝나면 다행일 텐데. 수많은 생각들이 우리를 감쌌다. 그 검은 헌병 뒤에서는 지휘관으로 보이는 사람이 소리를 치고 있었다.

“너희 새끼들. 뭐 하는 새끼들이야?”     



우리는 물러날 수도 없어서 계속 기묘한 대치를 이어나갔다. MP5 기관단총과 장갑차를 우리는 부지깽이, 나사 조이개, 빗자루로 막아서고 있었던 것이다. 우리 일부 인원은 손에 곤봉 조각이 박혀 피를 흘리며 ‘아 시발, 손에 가시’라고 하면서 고통을 호소했다. 또 누구는 슬리퍼 신고 뛰어내려 오느라 발톱이 뒤집어졌다며 의무대에 가야 한다고도 했다. 그걸 듣는 내 마음도 아팠다. 병법에서는 비전투 손실을 제일 경계해야 한다고 했는데, 우리는 싸우지도 않고 벌써 병력 손실이 발생하고 있었던 것이었다. 그나마 우리의 무기 중에 전기드릴이 가장 강했지만 안타깝게도 콘센트가 꼽혀있지 않았다. 상대 수십 명은 온몸을 검은 옷으로 감싸고 눈도 간지나는 고글을 쓰고 있는 반면에, 우리 열 명은 활동복이나 개구리 무늬 반바지, 황색 브레이브 맨 런닝 등을 입고 있었다. 한마디로 웃기지도 않는 광경이었다.     



아까 우리에게 소리 지른 검은 무리 대장이 지휘봉을 휘두르며 다가왔다.

“야 이 새끼들. 빨리 안 비켜.”

죽기는 쉬워도 길을 비키기는 어렵다’고도 하고 싶었지만, 나는 송상헌 공처럼 군대에서 순국하고 싶지는 않았다. 그래서 명분은 없었지만 슬슬 발을 옆으로 틀며 비키려고 하고 있었다. 헌병이라고 하니 왠지 그래야 할 것도 같았다. 다행히 그때 저 위에서 당직 사령이 뛰어내려왔다.

“야야~ 비켜줘 빨리 비켜줘.”

아 살았다. 복음이 이런 거구나 싶었다. 우리는 패잔병처럼 보이지 않고는 싶었는지 옆으로 돌아서지 않고 뒤로 서서히 물러났다. 그 검은 무리 대장은 우리에게 다시 욕을 하며 자기 부하들에게는 역정을 냈다. 그리고는 연병장으로 들어왔다.     



나중에 알고 보니 사정은 그랬다. 우리 사단 헌병대가 대테러 훈련을 하는데, 그날 훈련하기로 한 장소가 사정이 생겨 사용하지 못하게 되었다고 한다. 헌병대장이 급히 사방에 전화를 돌려 마땅한 곳을 물색했는데, 우리 대대장이 흔쾌히 연병장 사용을 허락한 것이었다. 문제는 그런 말을 했으면 우리 부대에도 알려줘야 하는데, 그건 또 까먹으신 모양이었다. 헌병대는 대대장 말만 믿고 우리 부대로 잔뜩 몰려왔고, 당직 사령은 들은 게 없으니 번개조 나가라고 했고, 우리는 명령이니 또 우스꽝스럽게 뛰어나갔고, 그 맨 앞에 서 있던 검은 헌병들도 아마 이 그지들이 왜 이러나 싶으면서도 배경 사정을 모르니 총은 계속 들이대고 있었던 것이다. 모르긴 몰라도 총 내리고 우리와 이야기하면 선임병이나 간부들에게 혼날까 봐도 그랬을 것이었다. 다 이해가 되는 일이었다. 대대장은 결국 부대로 휴일에 들어왔다. 헌병들의 진입을 막지 못했던 초병이나 위병조장은 경을 칠 수도 있는 일이었지만 서로 잘못한 게 있으니 불문에 부치고 넘어갔다. 우리는 막사로 올라가 창문으로 헌병대들이 서커스를 하고 있는 것을 구경 했다. 손에 가시가 박혔다고 했던 놈이나 발에 피난다고 했던 놈은 시간 아깝다며 의무대는 가지 않고 오락을 하러 휴게실에 갔다. 그리고 우리는 초동대처 우수로 평가받아 각 분대가 돌아가며 하던 번개조를 고정으로 하게 되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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