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랑이 부족해서가 아니다. 죽겠어서 그렇다. 허리, 무릎, 발목이 골고루 아프다. 우리 딸도 아비 없는 자식으로 크고 싶지는 않을 텐데, 상황을 아는지 모르는지 늘 두 팔을 벌리고 쫓아온다. 아빠가 허리를 피지 못하든 팔을 못 들어 올리든 상관없는 것 같다.
우리 부부의 문제점이 있었다면 아빠는 조금만 찡그려도 안아주고 엄마는 무슨 일만 있으면 젖을 물렸다는 데 있다. 한때는 아이의 불만을 잠재우는 효율적인 방법이었으나, 앞날을 내다보지 못한 어리석은 행동이었다. 이 근시안적 해결책으로 인해 아내는 밤새 젖 물리고 나는 허리가 부러지도록 안아주어야 한다. 애정이 넘치고 정서가 풍부한 사람으로 키우고 싶은 욕심이 화를 불렀다. 패기 있게 ‘지금 안아주지 언제 또 안아주나’를 호기롭게 말했던 나를 반성하게 된다. 척추의 의견도 들어봤어야 하는 건데.
둘이 함께 볼 때는 나았다. 딸이 엄마 눈치는 조금 보는 편이라 아주 막 나가지는 않았기 때문이다. 다만 과다한 신체접촉을 하는 육아 방법이 우리를 서서히 옭아맬 즈음에 아내는 직장으로 튀어버리고 남은 나는 피박을 썼다.
안아줘 안아줘
이렇게 일차적 책임은 나에게 있으니 딱히 할 말은 없다. 하지만 아빠는 반드시 날 안아줄 거라는 확신 어린 표정을 보면 안 안아줄 수가 없다. 안아주고 나면 ‘우리 아빠다~’ 하는 뿌듯한 표정을 짓고 혹 안아주지 않았을 때 실망하는 얼굴을 보면 더 그렇다. 더군다나 요즘에는 돈 벌러간 엄마가 생각나는지 손가락을 종종 빨곤 한다. 그 뒷모습이 애처로워 또 안아주게 된다. 이야기를 들은 아내는 다 지지배의 수법이라 한다. 그렇지만 쿨하지 못한 나는 어쩔 수 없는 이재하의 가마꾼이다.
그래도 너무 허리가 아프면 어쩔 수 없다. 아빠한테 와서 안아달라며 세상 무너지는 표정을 지어도, 그전에 내 등어리가 무너질 것 같으면 안아주지 않을 때도 있다. 그러면 작전을 바꿔 어디 가서 뭘 주워 들고 온다. 아끼는 자기 쌀과자를 나에게 내민다.
「아~아아~ 아아앙~」(과자 줄 테니 나를 안아주지 않겠어? 이거 되게 맛있어)
교환의 개념이 생긴 것이다. 그러나 어른에게 쌀과자의 효용은 ‘0’인지라 시큰둥한 표정을 지으면 금방 매개체를 바꾼다. 내 전화기를 들고 와서는 이거 받고 안아달라고 한다.
거래가 이루어지지 않으면 이번에는 곡을 한다.
「아아앙~ 아아앙~」(아이고~ 아이고~)
한 1 분하면 눈물이 나오고 곧 줄줄 흐른다. 장례식장에서 알바해도 될 실력이다. 메소드 연기가 따로 없다. 어쩔 수 없이 안아주면서 아내를 떠올린다. 그녀가 있었다면 이재하의 이 깡패 짓거리를 막아주었을 텐데.
재하는 이때부터 씨익 웃으며 내려갈 생각을 하지 않는다. 아빠 위에서 먹고 자고 싸고 세상 구경도 좀 하고 그런다. 이 위기에서 탈출할 수 있는 수단은 재하가 자는 방법뿐이다. 구 여친에게 「자니?」를 묻는 다면 딸에게는 「안 자니?」를 묻게 된다. 어찌어찌해서 잘 때도 있는데 내려놓으면 바로 깨서 역정을 낸다. 재하는 나에게 한마디를 남기고 다시 눈을 감는다.
「내려놓지 마라. 앉아있지도 마라」
데리고 나가는 것은 썩 좋은 방법은 아니다. 유모차에 태워 나갔다가 유모차 타기 싫다 걷기도 싫다 하면 안아 데리고 와야 해서 그렇다. 한 손에는 딸을, 한 손에는 유모차를 끄는 벌을 받아야 한다. 날이 추워지면서 손이 시렸던 재하는 내 가슴속에 손을 자주 넣었다. 얼굴이 발개졌다. 아빠가 부끄러워하니 재하는 더 좋아하면서 두 손을 다 넣었다. 그날 이후 당장 장갑을 사주었다.
내가 유일하게 기대하는 마음으로 이 코알라를 안아주었던 때는 재하가 약을 먹었을 때였다. 한 번은 딸의 얼굴에 알레르기 반응이 나서 진료를 받았던 적이 있다. 약을 타러 약국에 갔는데 약사님이 말씀하셨다.
「항히스타민제의 단점이 하나 있는데 졸리다는 거예요」
「선생님!! 정말 이지요? 와우!!!」
집에 와서 재하에게 약을 먹였다. 안 먹겠다고 발버둥을 쳤지만 하나도 힘들지 않았다. 이 약만 먹으면 코~ 잘 것이기 때문이었다. 간신히 약을 먹이고 재하를 미리 안았다. 언제 잠들지 몰랐다. 성공은 기다리는 자가 아니라 준비된 자를 위한 것이었다. 하지만 근성이 넘쳤던 14개월 우리 아기는 역경을 이겨내고 아빠를 또 타고 놀았다. 아주 오랜 시간 동안. 언젠가 리뷰 남길 것이다. 그 약사 거짓말쟁이라고.
목마도 타고
아무튼 요새는 이렇게 살고 있다. 가끔 그렇게도 생각한다. 건물에도 기초공사가 중요한 것처럼 인간의 마음도 마찬가지가 아닐까 하고. 딸을 안아주는 이 시간들이 아이 마음의 기반을 다지고 있는 것이라고. 아빠에게 안겨있던 시간들을 기억하지는 못하겠지만 재하가 맺을 수많은 관계들의 밑거름이 되었으면 좋겠다는 바람이 든다. 아 물론 이건 너무 가식적으로 표현하는 거고 솔직히 허리가 부러질 것 같다. 나부터 살아야지 원. 이제는 좀 덜 안아줘야겠다.
재하야, 언제나 손 뻗는 곳에 아빠가 있어주고 싶지만 너는 너의 인생을 살아야 하니 지금부터 연습을 하자. 다시 한번 말하지만 너는 이제 가볍지 않아. 절대 가볍지 않아.