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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이상우 Aug 16. 2020

보고도 믿지 못하느냐

한 발짝 두 발짝

며칠 전부터 재하가 한 발짝 떼었다는 소문이 돌았다. 사람들이 입을 모아 간증을 했다. 

“내가 봤습니다. 분명히 한 걸음 걸었습니다.”

“내가 증인입니다. 두 눈으로 똑똑히 보았습니다.”

나는 보지 못했고 신경 쓰지 않았다. 한때 역사학도답게, 실증주의에 입각하여 내 눈으로 보든지, 영상 증거만을 인정했기 때문이다.     


딸이 첫걸음 했다는 이야기를 유포한 자들은 ‘이재하천재설’을 맹목적으로 퍼뜨리던 ‘이재하천재교’신도들이었다. 무분별한 유언비어에는 강력 대응하겠다고 엄중 경고했으나 불붙은 첫걸음설은 끝날 줄을 몰랐다. 객관적인 물증은 없음에도 수많은 이들이 재하걸음을 증거 하니, 딸은 걸음을 넘어 이미 뛰고 있었다. 

    

본가에 다녀오느라 잠시 집을 비웠다 돌아왔다. 나를 보자 신도들은 득달같이 달려들어 외쳤다. 

“재하가 두 걸음 떼었소!!! 믿는 자에게 복이 있을지어다!!!”

혹세무민이 극에 이르렀다. 그냥 넘어갈 수 없었다. 따끔하게 한마디 해야겠다고 생각했다.    

 

그런 딸이 마침내 내 앞에서 한 걸음 떼었다. 그 순간 재하는 내 눈을 보고 분명히 말했다.

“아~아아~으아~아부”(보고도 믿지 못하느냐. 보지 않고 믿는 자는 복이 있을지어다)

눈물을 흘리며 고백할 수밖에 없었다.

“이제 믿습니다!! 세상 끝까지 이재하천재교를 전파하겠습니다!!!”


드디어 한 걸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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