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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손길 Feb 01. 2024

태도에 대하여

그날의 선생님

  그네를 타러 나간 아이는 한참 후에도 집으로 돌아오지 않았다. 어머니는 그 이유가 짐작되어 한숨이 나왔다. 집 앞 놀이터로 나가자, 아이가 한눈에 들어온다. 아이는 그네 옆 아이들 틈에서 투명 인간이 되었다. 차례를 지키지 않고 새치기하는 아이들. 내 차례라는 말 한마디 못 하는 내 아이가 더 밉다. 올라오는 감정을 꾹꾹 누르기 위해 숨을 가다듬는다. 

 “네 할 말은 할 줄 알아야지.” 

  아이는 화가 난 어머니를 물끄러미 바라보며 눈만 껌뻑일 뿐이다. 

  유치원에 입소한 아이는 음식을 거부했다. 점심 식사 시간에 수저를 들지 않았다. 안 그래도 작고 마른 아이가 점심까지 거른다는 소식에 어머니는 몰래 유치원 창문으로 아이를 훔쳐보기도 했다. 저럴 거면 그냥 유치원 가기 싫다고 떼라도 부리지. 아이는 세상과 발맞추어 걷지 못했다.

  아이는 8살이 되었다. 학교 교문에 서면 으스스 몸이 떨렸다. 멀리 보이는 건물과 넓은 운동장은 입 큰 괴물 같았다. 어머니와 잡은 손을 겨우 놓고 운동장을 가로질러 들어갈 때면 고개를 숙였다. 등교하는 또래들의 목소리를 못 들은 척 줄곧 움직이는 발만 바라봤다. 네모나고 딱딱한 가방에서 철제 필통이 딸깍딸깍 요란한 소리를 냈다. 아이는 그 소리마저 거북스러워 살금살금 걸었다. 1층 복도 끝 교실이 가까워지자, 아이는 마음의 걸쇠를 다시 한번 확인했다.     

  초등학생이 된 지 한 달이 지났다. 담임 선생님은 어머니에게 전화를 걸었다.

 “어머님, 아이가 무섭도록 말이 없어요.”

  아이는 학교에서 말 한마디도 하지 않았다.


  6월이 되었다. 초여름의 교실은 뜨거운 햇볕과 아이들의 열기로 밖보다 후끈했다. 아침을 잘못 먹은 걸까. 아이의 배 속이 야단법석이었다. 1교시가 끝난 뒤 우유 당번이 우유를 돌렸다. 친구들이 일제히 우유갑 입구를 열자, 은근한 우유 냄새가 교실을 가득 채웠다. 냄새는 그날따라 유난히 지독했다.

  “선생님, 배 아파서 우유 못 마시겠어요.”

  한 친구가 손을 들어 말했다. 아이는 그 말을 할 수 없었다. 기계처럼 우유갑 입구를 열었다. 그리곤 우유를 벌컥벌컥 들이켰다. 

수 초가 지난 뒤 무언가 잘못되었다는 것을 깨달았다. 아이는 마신 우유를 다 토해냈다. 토사물에는 아침에 먹었던 음식까지 섞여 있었다. 

  교실은 난장판이 되었다. 아이 책상은 물론 짝의 책상도 토사물로 얼룩졌다. 다음 수업을 위해 펼쳐 두었던 국어 교과서와 연습장이 축축하게 젖어 금세 울룩불룩 올라왔다. 짝은 놀란 나머지 자신이 먹던 우유를 다 토해냈다. 짝과 나의 옷이 흠뻑 젖었다. (아이들은 종종 그렇지 않은가?) 

  난리에 난리가 더해졌다. 반 친구들은 꽥꽥 소리를 지르며 선생님을 찾았다. 

 “선생님, 선생님! 승희랑 00 토했어요!”

  아이는 눈앞에 펼쳐진 상황이 꿈같았다. 속은 시원했다. 다만 알 수 없는 공포감에 정신이 아늑해졌다. 아이를 둘러싼 모든 것이 흔들리고 있었다. 이 사건의 주동자가 자신이라는 사실이 믿기지 않았다. 먼지만큼 작아지고 싶었던 꿈과는 달리 예상치 못한 모습으로 교실 한가운데 서게 된 것이다. 아이는 그 와중에도 우는 짝에게 미안해서 무슨 말이라도 하고 싶었다. 하지만 입술이 쩔걱 달라붙어 열리지 않았다. 목구멍 끝까지 뻑뻑한 것으로 단단히 틀어막힌 것 같았다. 손이 점점 차가워졌다. 모든 것이 엉망진창이다. 

  그때, 어떤 손이 아이의 등을 토닥거렸다. 윙윙거리는 아이들의 고함 속에서 다정하고 선명한 목소리가 들렸다. 선생님이었다.

 “에고. 승희 속이 많이 안 좋았구나. 놀랐지? 괜찮아. 그럴 수 있어. 잠시만 기다려 봐.”

  선생님은 흥분한 아이들을 제자리에 앉혔다. 토사물로 얼룩진 자리를 수건으로(사실 뭐로 정리했는지 정확히 기억나지는 않는다.) 닦았다. 아이와 짝의 젖은 옷을 여벌 옷으로 갈아입혔다. 교과서와 공책들을 다 새것으로 바꿔 주었다. 선생님은 아무 일 아니라는 듯 모든 것을 하나하나 원상태로 복구해 나갔다. 그새 짝의 울음은 조금씩 잦아들었다. 친구들도 언제 고함을 질렀냐는 듯 차분해졌다. 

  새로운 공간, 새로운 사람에 대한 불편함을 강하게 느끼던 아이는 그 일을 계기로 조금씩 새로운 관계에 마음 문을 열게 되었다. 그날의 사건은 아이에게 단 한 방울의 수치심도 남기지 않았다.      

 

 말 없던 아이는 커서 교사가 되었다. 아이는 그날의 자신을 기억한다. 한 아이가 하나의 우주라는 마음으로 아이들을 대하려고 노력한다. 불쑥불쑥 아이들이 미워지는 날이면 아이는 담담히 자신의 토사물을 치우던 ‘그날의 선생님’을 떠올린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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