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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이철 Aug 10. 2024

협박하는 남자(1)

베이징의 별장촌에서 여자를 발견했다.

망원경으로 잡은 광경은 그야말로 변태 포르노 속의 한 장면 같았다. 뚱뚱하다기보다는 거대한 몸집의 대머리 사내가 가냘픈 여자의 머리를 잡고 흔들며 자신의 성기를 마찰하고 있었다. 남자의 우악스러운 큰 손과 흔드는 거대한 엉덩이를 보며 사내는 저 여자가 성한 몸으로 남을 수 있을지 걱정이 되었다. 하지만 여성에 대한 동정심으로 안타까운 동시에 사내 자신도 눈앞에 펼쳐진 장면에 욕정이 치솟는 것을 어쩔 수 없었다.


이 여자와 조우한 것은 대략 한 달쯤 전이었다. 장소는 사내가 살고 있던 베이징의 한 별장촌이었다. 메마르고 건조한 베이징의 기후를 고려했는지 이 단지는 중심부에 커다란 인조 호수를 복잡한 모양으로 조성하고 그 호변을 둘러가며 고급 주택을 만들었다. 그리고는 길거리를 향한 변두에는 저렴한 아파트를 만들어 일종의 성벽처럼 둘렀는데 사내는 바로 이 저렴한 아파트에 월세로 살고 있었다.


이런저런 장사를 해보려다 모두 실패한 후 사내의 아내는 자식들을 데리고 한국으로 떠났고 그는 망해가는 사무실을 어떻게든 수습해 보려다 결국 정리하고 남아 있는 월세 기간 동안 아파트에 우그리고 있었던 중이었다. 그렇다. 사내는 절망적이었다. 사내는 잠도 없었다. 돈도 없어 밖으로 나다니기도 어려웠다. 결국 사내는 밤이면 별장촌의 길을 걸으며 답답한 마음을 추스르려 애를 수밖에 없었다. 그리고 그가 마주치는 고급 별장들은 그의 마음을 더욱 쓰라리게 했다. 별장들은 대개 200평이 넘는 저택의 모습들이었다. 


사내는 한 가지 사실을 발견했다. 이 저택들에 사는 사람이 별로 없다는 것이다. 밤이 되면 넓은 거실에 '아이(중국 말로 가정부를 말함)'들이 TV를 보는 집들이 대부분이었다. 아마도 이 저택들의 주인은 지방에 살거나 외국에 사는 부자들로서 베이징에 머무는 시간이 길지 않은 모양이었다. 이렇게나 비싼 집을 사서 결국 가정부들이 잘 먹고 잘 사는 모습을 보며 사내는 더욱 쓰라린 마음이었다.


그 여자를 발견한 것은 그렇게 밤마다 별장촌을 헤매던 어느 날 밤이었다. 그날도 사내는 별장촌 안의 소롯길을 걷고 있었는데 그 여자가 그를 스쳐 지나갔다. 그 순간 사내는 콧속으로 들어오는 그 여자의 몸 냄새에 아찔함을 느꼈다. 그 내음은 강렬하다고는 할 수 없었지만 충분히 인상적이었고 그의 두뇌에 번쩍하는 작은 번개를 때려 넣었다. 약간은 피냄새가 섞여 있는 듯도 하면서 약간은 매캐했고 그러면서도 청량한 기운이 있었다. 그는 자신도 모르게 고개를 돌리고 그 여자가 사라지는 방향을 바라보았다. 그리고는 무언가에 홀린 듯이 그 여자가 사라진 방향의 소롯길을 무작정 걷기 시작했다.


소롯길에 갈림길이 나올 때마다 사내는 멈춰 서서 코를 위로 올리고 냄새를 맡았다. 신기하게도 약간의 잔향이 있는 것을 느낄 수 있었다. 아니, 어쩌면 그렇게 착각했을 수도 있다. 어찌 되었던 별장존의 길이 많은 것도 아니었고 긴 것도 아니어서 헤매다 보면 결국은 그 여자가 지나간 길을 사내도 지나가게 될 터였다. 


사내는 결국 호수 맞은편에 커다란 저택에서 불을 밝힌 넓은 거실 유리창에서 그 여자의 모습을 찾을 수 있었다. 여자는 거실 큰 창문을 통해 밖을 쳐다보고 있었는데 사내는 그 여자가 자기가 쫓아왔다는 사실을 눈치챈 것일까 하고 잠시 생각했다. 하지만 설령 여자가 자신을 의식하였다고 해도 사내를 남성으로 호감을 가지기보다는 위험한 스토커로 인식할 가능성이 컸다. 여자는 나이를 짐작하기 어려웠지만 어리다면 이십 대 후반일 것이고 많다면 삽 십 대 후반으로 보였다. 그러나 사내는 이미 오십을 훌쩍 넘긴 나이이고 곧 육십이 될 터였다. 아! 어째서 세월을 이렇게 빨리 가는 것일까?


그날 그일 만 없었다면 사내는 한국으로 돌아갈 수 있었을 것이다. 이렇게 출국 정지되어 중국의 구만리 강산을 헤매고 다니지 않아도 되었을 것이다. 당시 몸에 지니고 있던 정보통신 기술과 경험으로 크든 작든 어딘가의 테크 기업에 자리를 잡고 평온한 세월을 보낼 수 있었을 것이다. 그러면 아내도 떠나지 않았을 것이고 귀여운 딸들도 함께 했을 것이다. 가족들을 생각하자 사내는 칼로 심장을 후비는 것 같은 고통을 느꼈다. 


사내가 비애에 잠겨 있던 그 순간 창가 여자의 뒤에서 한 남자가 나타났다. 남자는 육중한 몸의 거한으로 대머리에 배불뚝이였다. 그러나 비계덩어리가 아니라 일본의 스모 선수처럼 다부진 몸이었고 확신할 수는 없지만 이런저런 상처가 있어 보였다. 게다가 팔과 가슴에 문신을 하고 있는 것이 평범한 회사원 따위와는 거리가 먼 모습이었다. 남자는 여자를 뒤에서부터 잡더니 불문곡직 여자의 옷을 걷어 올리고 허리를 잡았다. 사내가 있는 각도에서는 보이지 않았지만 남자가 몸을 앞뒤로 흔들기 시작한 것으로 보아 성행위를 시작한 것임에 틀림없었다. 여자는 입을 '아'하는 모양으로 벌리고 눈을 감고는 머리를 흔들었는데 사내는 그 모습이 고통인지 쾌락인지 알 수 없었다. 그러나 고통일 가능성이 크다고 생각했다. 어느 여자가 전희도 없이 갑자기 삽입하는데 쾌락을 느낀단 말인가.


남자는 여자의 가냘픈 몸을 마치 샴페인 병 흔들듯이 흔들어 대다가 엉덩이를 밀어 대었다. 이윽고 남자는 여자를 소파 위에 내 팽개치더니 숨을 몰아쉬며 안 쪽으로 들어가 버렸다. 여자는 거실 바닥에 축 늘어지더니 마치 잠을 자는 것처럼 바닥에 몸을 비벼대었다. 그때 사내는 여자의 등에 빨간 선들이 있는 것을 보았다. 저게 뭘까? 상처인가? 상처라기에는 너무 컸다. 여자의 어깨부터 엉덩이에 걸쳐 몇 개의 구렁이와 같은 굵은 선이 빨간색으로 굽이쳐 있었는데 그것이 만일 상처라면 너무나 큰 것이어서 사내는 연민의 정을 느끼지 않을 수 없었다.


그날부터 사내는 저녁이 되면 집을 나서 붉은 상처를 가진 여자의 집으로 향했다. 여자는 언제나 거실의 붉을 밝히고 TV를 보거나 책을 보고 있었기 때문에 사내는 마치 일과처럼 저녁 시간에는 호수에서 여자의 집을 관찰하게 되었다. 그리고 결국 작은 오페라 망원경도 하나 장만을 했다. 그 여자를 보다 가까이 보고 싶었고, 그 여자 등의 상처를 확인하고 싶었고, 사실은 그 여자의 얼굴과, 그리고 코와, 그리고 입과, 그리고 가슴을, 그리고 그보다 더한 것도 보고 싶었다.


여자는 대단한 미인은 아니었다. 그러나 TV를 보고 있을 때의 표정은 무표정이라기보다는 일종의 굳은 표정으로 묘하게 권태로운 느낌을 주었다. 사내는 망원경을 통해 보이는 여자의 몸짓에서 마치 그 여자의 몸 냄새를 맡은 것 만 같은 느낌을 가졌다. 그리고 그 냄새는 최음제처럼 사내의 욕망을 끌어내었다. 사내는 한 손으로 망원경을 잡고 다른 손으로 양물을 꺼내었다. 그리고 천천히 자위를 시작했다. 아내가 도망간 후 섹스를 해 본 적은 당연히 없었다. 그리고 아내가 도망가기 전에도 사실 잠자리를 같이 하는 일은 매우 드물었다. 그렇다. 사내는 외로웠다. 사내는 한 손으로 망원경을, 다른 손으로는 양물을 흔들며 어이없게도 울기 시작했다. 조용히 시작된 눈물이 이윽고 격렬한 울음소리로 바뀌었다. 사내는 자신의 이런 꼴이 죽을 만큼 추하다고 느끼면서도 양물을 흔드는 손을 멈추지도 않았다.


그런 밤은 하루가 아니었다. 거의 매일 사내가 호수가로 나오고 여자는 남자에게 유린당하고 사내는 자신에 대한 혐오를 정액으로 배출하는 날들이 계속되었다. 그리고 오늘이 온 것이다. 망원경에 비친 남자의 모습은 그대로였지만 여자의 표정이 여느 때 와는 달랐다. 여자의 입술은 일그러졌고 눈썹은 분노로 덜렸으며 숨을 거칠게 몰아쉬는 것이었다. 사내는 어, 어 하면서 여자가 어쩌려는 것일까 하는 표정을 지었다. 그리고 사내는 놀라서 숨을 들이켰다. 망원경 속의 여자는 거실 한편에 있던 골프 백에 손을 뻗더니 백을 자빠뜨렸다. 그리고 남자가 무슨 일인가 하는 얼굴로 잠시 동작을 멈추자 손을 뻗어 드라이버를 꺼내어 뒤를 향해 풀스윙을 하였다.


그럴 리는 없지만 사내의 눈에는 여자의 동작이 슬로모션으로 보였다. 여자가 인상을 찡그리며 허리를 비틀자 드라이버의 헤드는 곧바로 남자의 머리를 향해 날아갔다. 마치 한 시간은 걸려서 드라이버 헤드가 남자의 머리에 도달하자 남자는 공포로 크게 뜬 눈을 감지도 못한 채 머리통이 일그러졌다. 그리고 다음 순간 펑하는 소리와 함께(소리가 들리지는 않았지만 그렇게 느껴졌다) 그의 머리통은 깨어진 수박이 되어 거실에 뿌려졌다. 


사내는 입을 벌린 채 움직이지 못했다. 망원경 속의 여자는 숨을 몰아쉬며 헐떡이더니 골프채를 집어던지고 안 쪽으로 사라졌다. 마치 TV 속의 한 장면을 본 것 같아 현실감이 없었다. 사내는 속으로 '이게 뭐지', '이게 뭐지' 되돌이 표를 찍으며 어쩔 줄 몰라했다. 그렇다. 사내는 생전 처음 살인 장면을 목격한 것이다. 그리고 목격자는 그 한 사람 외에는 없을 것이었다.(계속)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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