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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이철 Aug 03. 2024

프롤로그 대지진

씨는 그날 뿌려졌다

맑고 파랗기만 한 하늘을 중국에서 보는 것은 쉽지 않았다. 그러나 2008년 5월 중국 쓰촨 성의 하늘은 맑기만 했다. 쓰촨 성은 광대한 분지로서 예로부터 들어가고 나오기가 모두 어려워 고립된 지역이다. 육로로 가는 길은 북쪽뿐이며 그나마 길도 험하고 주유소도 적어 출발 전에 주유소 위치를 확인하고 주유 계획을 세워야 하는 곳이기도 했다. 그러나 고속철이 개통되고 하늘 길이 열린 후에는 쓰촨에 가는 길도 편하고 빠른 것이 되었다.

비행기에서 내려다보는 거대한 쓰촨 분지의 모습은 여느 중국 대륙의 모습과 다를 것이 없었다. 원촨(汶川)이 가까워지면서 비행기 안의 두 남자는 부산스럽게 지면을 살피기 시작했다. 그러자 맞은편에 앉아있던 군복을 입은 사나이가 한 마디 했다.

"15분 후에나 지진 현장이 보일 겁니다."

부산 떨던 두 남자는 어색한 표정으로 다시 허리를 좌석에 묻고는 서로의 얼굴을 쳐다보았다. 이 두 남자는 의사이며 바이오 공학자인 허렌년(贺连念)이었고 다른 한 사람은 한국인 회사원 주철범이었다. 허렌년은 상당히 흥분된 표정이었으나 주철범은 어리둥절한 얼굴로 어색해하는 것이 역력했다.


이윽고 비행기가 원촨 상공에 이르자 비행기 안의 사람들은 모두 너나 할 것 없이 창가로 얼굴을 돌렸다. 군용 수송기에서 내려다보는 원천은 연기가 사방에서 피어오르고 건물들은 무너져 있었으며 도로에는 처참한 모습의 자동차들이 여기저기 흩어져 있었다. 심지어 사람들의 몸들이 여기저기 흩어져 있었는데 죽었는지 살았는지 짐작도 되지 않았다. 간간이 움직이는 이들도 보였지만 그 광경이란 마치 전쟁터 같았다.

이윽고 군복의 사나이는 손가락을 까닥여 맞은 편의 두 사람에게 신호를 했다. 두 사람이 가까이 다가오자 낮은 목소리로 말했다.

"이제부터 보게 될 광경은 당신들이 평생 잊지 못할 광경일 것이요. 하지만 명심하시오. 오늘 보게 되는 모든 것, 듣게 되는 모든 것이 국가기밀이라는 것을. 만일 어기게 되면..."

사나이는 말을 끊더니 두 사람을 향해 싱긋 웃었다. 두 사람은 약속이라도 한 듯이 흠칫하며 몸을 긴장시켰다. 그리고는 항문으로 나타나는 광경을 보고 입을 딱 벌리지 않을 수 없었다.

지상에는 대규모 폭발이 일어난 듯 모든 건물과 자동차, 물건들이 같은 방향으로 쓰러져 있었다. 자세히 보면 원형으로 쓰러져 있는 것을 알 수 있었고 그 규모는 수십 km에 걸쳐 있는 것이었다. 비행기는 이 거대한 원형의 폭발 현장의 중심을 비스듬히 지나가며 고의인지 모르지만 비행기의 자세를 바꾸어 두 사람이 보다 명확하게 폭발 현장의 중심부를 볼 수 있게 해 주었다. 어쩌면 파일롯 본인이 자세히 보고 싶었을지도 모른다.

원형의 폭발은 동심원을 그리며 지역 전체를 파괴하고 있었다. 주철범은 고개를 갸우뚱하며 말했다. 

"이봐. 뭔가 이상해."

"워가?"

"폭발로 쓰러진 나무며 건물의 방향이 바깥쪽이 아니라 안쪽이야. 그러니까 폭발이면 바깥쪽으로 다들 쓰러져야 정상 아니냐고!"

허렌년도 깜짝 놀라며 다시 창밖의 풍경을 뚫어져라 쳐다보았다.

그러자 군복의 사나이가 나지막이 말했다.

"이제 시작일 뿐이요. 잊지 마시오. 오늘 보고 들은 것은 모두 국가 최고 기밀이라는 것을..."


이윽고 비행기가 고도를 낮추기 시작하면서 착륙을 준비하기 시작했다. 그리고 비행기 안의 사나이들은 동심원의 중앙에 있는 광경을 경악을 하며 바라보았다. 중앙에는 수많은 차량과 인원들이 보였고 임시 막사 같은 것이 수십 개가 펼쳐져 있었다. 그리고 전력선이나 통신선 등으로 보이는 전선들이 중앙부와 주변 막사에 연결되어 있는 모습이 마치 최전선 작전 사령부를 연상케 하였다. 그리고 그 핵폭발과 같은 풍경을 보인 동심원의 한가운데에는 사람 키의 두 세 배 되어 보이는 커다란 코쿤이 그러니까 커다란 알이 그것도 깨어진 채로 있었다. 그 광경은 그야말로 기괴하기 이를 데 없었고 주철범은 잠시 UFO인가라고 생각했다가 머리를 털어 생각을 밀어내었다.  


이윽고 비행기는 아직도 부서진 잔해물이 제대로 치워지지도 않은 활주로에 위태롭게 내려앉았다.  그리고 세 사람은 군용 지프차로 갈아타고 현장을 향해 달렸다. 거리에는 지진으로 무너져 내린 건물들이 여기저기 주저앉아 있었고 죽은 가족을 끌어안고 우는 사람, 망연히 주저앉아 있는 사람, 건물 틈바구니로 삐쭉 보이는 사람들의 팔다리 등 그야말로 참혹하기 이를 데 없었다. 얼마간 달리자 폭발 중심으로 향하면서 풍경이 달라지기 시작했다. 지진에 의해 무너졌다기보다는 폭발에 의해 그을린 것으로 보이는 건물들 피해가 늘어나기 시작한 것이다. 


이윽고 차량은 폭발의 중심부에 멈추었고 사람들은 약속이나 한 듯이 문을 박차 열고 뛰어나가 중심부중앙으로 다가갔다. 중심부에는 비행기에서 본 커다란 알, 또는 코쿤이  있었는데 그 색깔은 아마도 원래는 하얀색 같았으나 심하게 그을려 있고 먼지를 뒤집어써서 회색 빛으로만 보였다. 알은 이미 껍질이 깨어져 있었고 그 안으로 생물체의 촉수인지 혈관인지 모를 것들이 보였다.


두 사람을 데리고 온 군인은 그들에게 다가온 군인 무리의 지휘관인 듯 한 사람에게 사람들을 물이치고 주위를 경계하라고 명령을 내렸다. 

"다시 한번 분명히 명령한다. 접근하는 자들은 그 누구든 통과시켜서는 안 되며 통과하려 하는 자는 즉시 사살하라!"

"넷"

군인들은 우렁차게 대답하고는 코쿤의 둘레에 퍼져 사방 경계를 시작하였다. 허롄년은 주저하며 중앙으로 접근해 갔다. 그리고 뒤를 돌아보더니 주철범에게 따라오라고 손짓했다. 주철범은 이런 상황이 정말 내키지 않았지만 이미 그에게 선택은 없어 보였다. 그는 어기적 거리며 허롄년의 뒤를 따랐다.  

허롄년은 주철범이 따라오는 것을 보고는 고개를 돌려 다시 걸어갔다. 그러더니 그는 갑자기 발걸음을 멈추었다. 뒤따르던 주철범은 하마터면 부딪힐 뻔했다. 

"이봐 왜 그래?"

허렌텬은 말이 없었다. 주철범이 보니 하렌년은 몸을 떨고 있었다.

주철범도 고개를 삐죽 내밀고 중앙을 쳐다보았다. 그리고는 그 또한 흠칫 몸을 떨었다. 그들 앞에 펼쳐진 광경은 이 세상 것이라고는 믿을 수 없는 것이었다. 두 사람은 입을 벌리고 한 없이 한 없이 멍청하게 그리고 뚫어져라 중앙부를 노려 보았다.


이 날 이후 두 사람은 단 한 번도 그들이 본 광경, 그들의 귀에 들어오던 소리, 그들의 코를 스쳐 지나간 냄새, 그들을 안내한 군인이 그들을 쳐다 보며 웃던 표정, 배경처럼 경계를 하던 병사들, 멀리서 들려오는 사람들의 고함 소리, 울음소리, 불탄 재가 허공에 흩뿌리는 모습 그 모든 것을 잊어버린 적이 없었다. 그 광경은 두 사람의 뇌 세포 안에 깊숙이 각인이 되어 버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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