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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이철 Aug 17. 2024

협박하는 남자(2)

절망이 절망을 만나다

다음 날 해가 밝았을 때 밤새 뒤척이던 사내는 가까스로 눈을 떴다. 잠을 제대로 못 자 몸이 무거웠다. 한숨을 쉬고 나자 다시 어젯밤 일이 머리에 떠올랐다. 그 여자는 살인을 저지르고도 뒤처리조차 하지 않고 방으로 들어가 버렸다. 아마 잠잘 수 없었을 것이다. 시체는 어떻게 처리할 셈일까? 공안에 자수할까? 아니면 도망을 가려할까?


중국에서 형사 사건이 나면 당연히 공안이 수사를 한다. 중국 공안은 매우 검거율이 높다. 억울한 사람들이 가끔 나와서 탈이지만 중국 공안은 나름대로 헌신적인 사람들이다. 중국 공안은 근무 중 매년 2, 3천 명이 사망한다. 대부분 범죄자들과의 다툼이나 위험한 곳에 있다 사고를 당해서이다. 국가 체제가 통제 사회이다 보니 정보 획득이 쉬워 범인 특정이 용이하지만 그만큼 범죄자들의 반항도 강력하다. 그래서 필요 이상의 무력을 사용하는 경우가 잦다.


사내는 중국 공안들이 그 여자를 두들겨 패고 압송하는 장면을 떠올렸다. 갑자기 뜨거운 것이 울컥 뱃속에서 올라오며 참을 수가 없었다. 사내는 벌떡 일어나 고양이 세수만 하고 그 여자의 집 앞으로 달려갔다. 여자는 린다이위(林黛玉)처럼 울고 울다 신세에 절망하여 자살을 하려 할지도 모른다는 생각도 들었다. 구해주고 싶었다. 물론 여자의 힌 피부와 검고 풍성한 머릿결, 요염함을 감출 수 없었던 몸매, 그 여자의 성적 매력에 매료되었다는 것도 부정할 수 없지만 말이다.


하지만 사내가 여자의 집 앞에 도착했을 때 집안은 이상하리만큼 적막하고 변화가 없어 보였다. 마치 시간이 그 집을 둘러싸고 사람들의 접근을 밀어내고 있는 듯했다. 새 소리나 매미 소리도 들리지 않았다. 거실 창문은 보라는 듯이 열려 있었고 그 안에는 아무도 보이지 않았다. 순간 사내는 여자는 도망가고 집안 전체가 비어있을 것 같은 생각이 들었다. 하지만 그렇게 사내가 생각하자마자 안쪽에서 여자가 나타나서는 아무 일도 없었다는 듯이 소파에 앉아 리모컨으로 TV를 켜고는 보기 시작했다. 한쪽 발을 소파에 올리고 껴안고서는 몸을 앞뒤로 조금씩 흔들며 TV를 보았는데 자세히 보니 뭔가 노래를 흥얼거리고 있었다. 여자의 이마에 맺힌 몇 방울의 땀이 여자의 모습을 더욱 육감적으로 보이게 하였다.


사내는 욱하는 생각이 들었다. 사람을 죽이고서 아무렇지도 않게 노래를 흥얼거리며 TV를 보다니? 사내는 여자를 걱정하던 자신이 바보 같다는 생각이 들었고 동시에 그 여자에게 모욕을 받은 것만 같은 기분에 휩싸였다. 이놈의 세상은 어찌 이리 불공평하단 말인가? 그날 원촨 대지진의 현장에 가지만 않았어도 중국 공산당이 숨기려는 비밀을 보게 될 일도 없었을 것이고, 임기를 마치고 정상적으로 한국으로 돌아가서 평범한 직장인으로 살았을 터였다. 그날 원촨에 갔었다는 이유로 그의 출국은 허락되지 않았다. 매번 공항에 가서 출국을 하려 하면 출입국 관리국의 직원들은 출국이 안된다고 거절하였다. 이유도 말해주지 않았다. 아마 그들도 이유를 몰랐을 것이다.


사내는 끓어오르는 분노를 삼키며 애정이 증오로 바뀌는 속 마음을 지켜보았다. 그렇다. 네가 그런 여자라면 공정한 결과를 맞이해야 한다. 사내는 일어나 집으로 향했다. 지금부터 그가 하려는 일이 잘하는 일인지 아니면 후회하게 될지 알 수 없었다. 아니 사실은 알고 있었다. 이런 기분으로 저지르는 일은 언제나 좋지 않은 결과를 가져왔다는 것을. 그러나 그는 견딜 수 없었다. 사방이 꽉 막힌 방에 가두어진 느낌, 그리고 그것을 남들은 전혀 알아주지 않는 이 상황을 그는 너무나 오래 견뎌왔다. 그리고 이제는 더 견딜 수가 없었다.


사내는 일어나서 저벅저벅 여자의 집을 향해 걸어갔다. 마치 몸이 불에 타는 것 같은 열기와 갈증을 동시에 느끼면서 사내는 틀림없이 이 일로 후회할 것 같다는 생각이 들었다. 그러나 어찌하랴. 이렇게 화가 나면 사내는 언제나 극단적인 행동을 했고 그에 따른 교훈을 받아왔지만 어쩔 수가 없었다. 마치 전갈과 개구리의 이야기처럼 강을 건네주는 개구리를 독침으로 찌르면 자신도 물에 빠져 죽겠지만 전갈은 찌르고야 만다. 그것은 그가 전갈이기 때문이다. 사내도 여자가 앉아 있는 거실을 향해 집의 문을 열며 중얼거릴 수밖에 없었다. "전갈은 어쩔 수 없어... 전갈은... 천성이야..."


여자는 갑자기 문을 열고 들어온 남자를 보고도 표정에 큰 변화가 없었다. 그저 물끄러미 사내가 숨을 몰라쉬며 다가오는 것을 무표정한 얼굴로 쳐다볼 뿐이었다. 사내도 아무 말도 하지 않고 소파에 있는 여자의 허리를 잡고 눕혔다. 그리고는 바지를 벗기기 시작했다. 여자는 잠시 '아'하는 입술 모양을 하더니 곧 입을 다물었다. 그리고는 자신의 하지가 다 벗겨져 하얀 다리와 국부가 드러나는 것을 보고만 있었다.


사내는 이 여자가 사실은 실성했을지도 모르겠다고 생각했다. 정상적인 여자라면 실성할 수 있지라고 속으로 생각하고는 곧바로 정상이면 실성했다는 말의 모순에 쿡쿡 웃었다. 여자는 사내가 벌려놓은 대로 허벅지를 벌린 상태로 역시 무표정한 얼굴로 남자를 쳐다보았다. 사내는 그 무표정한 표정은 아마도 여자의 심리 상태가 될 대로 되라는 것이 아닐까 생각하며 바지를 내려 자신의 양물을 꺼냈다. 여자는 무표정 그대로 양물을 흘낏 쳐다보더니 시선을 사내의 얼굴로 돌였다.


사내는 순간 야릇한 기분이 들었다. 잠시이기는 해도 여자의 얼굴이 가면처럼 느껴졌기 때문이었다. 그것도 아주 두꺼운 가면으로... 그러나 그것도 잠시, 남자는 여자의 다리를 잡아 집어 올리며 불문곡직 자신의 양물을 집어넣었다. 사내 인생 최초의 강간이었다. 과거 남자가 거쳐간 여자들은 모두 전희가 어떻네, 애정이 부족하네, 무드가 어떻네 하며 사내의 욕정에 물을 끼얹었지만 오늘만큼은 충동질에 사로 잡힌 사내는 그저 자신의 욕망에 따라 행동할 것이었다.


양물이 여자의 안으로 들어갈 때 사내는 아무런 저항이 없어 놀랐다. 그뿐이 아니었다. 여자의 안쪽은 마치 수많은 촉수가 달린 바다 연체동물처럼 남자의 양물을 붙잡고 빨아들이며 안쪽을 향해 섬모 운동을 하는 느낌을 주었다. 사내는 한편 놀라고 한편 신기해하며 여자가 고통을 느끼지 않을까 생각해 보았지만 이내 자신은 지금 강간을 저지르고 있는 범죄자일 뿐이라는 사실을 떠올렸다. 일단 자신이 큰 범죄를 저지르고 있다는 인식이 들자 사내는 겁이 덜컥 나며 하마터면 발기가 풀릴 뻔했다. 사내는 이를 악물고 자신의 행동에 집중했다. 발기가 풀리는 강간범이라니 그것이야 말로 죽으면 죽었지 받아들일 수 없는 결과이니 말이다.


남자가 허리를 앞뒤로 흔드는 동안 여자는 그저 인형처럼 무표정 그대로 손가락 하나 까딱하지 않고 사내를 바라보고만 있었다. 사내는 살살 오기가 솟아올랐고 '그래 좋아. 평생 잊을 수 없게 해 주마'라는 생각으로 자신이 할 수 있는 최대한 여자의 안쪽을 자극하려 애썼다. 그러나 그의 일생 동안 여자에게 극치감을 가져다준 적은 별로 없었고, 그의 신체적 특징 또한 별 수 없었고, 그의 체력은 싸구려였다. 사내는 결국 오래 버티지 못하고 정액을 여자의 안쪽에 쏟아내었다. 아니 쏟아 내었다기보다는 찔끔 흘려놓았다는 것이 맞겠다.


바로 그때 여자의 눈빛이 변했다. 갑자기 눈동사에 의아해하는 빛이 떠오르더니 눈동자가 흔들리기 시작했다. 사내는 여자의 변화를 눈치채고는 '어라? 설마 느끼기 시작한 것인가?'라며 고개를 갸웃거렸다. 아무튼 사내 입장에서는 볼 일을 다 본 것이고 범죄를 저지른 주제에 여자를 쓰다듬으며 위안할 것도 아니었다. 사내는 마음을 굳게 먹고 여자에게 말했다.


"공안에는 연락하지 않는 것이 좋을 거야. 난 네가 어젯밤 살인을 저지른 것을 알고 있어"


여자가 흠칫하며 남자의 얼굴을 올려다보았다. 그러나 그 눈만큼은 아무것도 읽을 수 없었다.


"나는 증거도 가지고 있어. 넌 모르겠지만 난 매일 밤 네가 대머리 사내에게 유린당하는 것을 보고 있었어. 동영상도 여러 개 찍어 놓았지. 그리고 어젯밤 네가 그 남자를 살해할 때도 나는 동영상을 찍고 있었어, 그러니 이제부터는 내 말대로 하는 것이 좋을 거야."


여자는 고개를 갸우뚱하며 사내의 말을 들었다. 그 무표정한 얼굴은 여자가 무슨 생각을 하는지 짐작하기 어려웠다. 사내는 물었다.


"이름이 뭐야?"


여자는 잠시 주저하더니 대답했다.

"여다혜"

"여다혜? 어디 출신이야?"

"서쪽에서 왔어요"


서쪽이라면 화서(华西) 지방인 산시 성이거나 깐수, 위구르자치구 쪽에서 왔다는 것이다. 여자는 한족처럼 보였지만 콧대나 눈동자 색 등을 보면 위구르나 다른 소수 민족의 피가 섞여 있는 것처럼도 보였다.


"오늘은 이만 하지. 난 내일 저녁 다시 찾아올 거야. 도망갈 생각은 안 하는 것이 좋아. 네가 없어지면 난 공안에 신고할 테니 말이야. 알았어?"


여자는 고개를 끄덕였다. 어쩐지 자포자기하는 것 같기도 했다. 사내는 자신이 이래도 되는지 모르겠다는 생각을 했지만, 답답한 인생의 막다른 골목 같은 상황에서 이렇게나마 뜨거운 긴장 속으로 뛰어들어간 것에 대한 후회는 별로 들지 않았다. 어차피 그대로 간다면 파멸밖에 없는 것이 그의 인생이었으니 말이다. 사내는 주섬주섬 옷을 집어 입고는 여자의 집을 나섰다. 이제 그의 인생의 방향은 바뀌었고 돌아오는 길에 보이는 밤하늘의 모습도 달라 보였다. 이로서 나는 범죄자이다라고 중얼거리며 사내는 터덜터덜 걸었다. '될 대로 되라지. 어차피 파멸에 처한 놈이 뭘...' 사내는 이제 언제라도 사법기관에게 체포될지 모른다는 생각을 하며 그럴 경우 자살이라도 해야 하나 생각해 보았다. 무서웠다. 그런 일은 있어서는 안 된다. 역시 그 여자를 완전히 굴복시키는 것이 가장 합리적인 선택이었다.(계속)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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