오늘은 어느 동네로 가볼까
나쁜 놈 100
- 은상’s #인스타소설
새벽. 아직 해가 떠오르지는 않았지만 어스름이 가시려고 하는 그 순간. 그 순간에 산책을 하는 게 나는 좋다.
길을 걸으며 숫자를 센다.
왼쪽을 보며 하나, 이백 미터 앞쪽을 보며 둘, 그리고 오른쪽으로 꺽어서 오백 미터쯤 가면 셋, 넷부터는 조금 멀리 돌아가야 하니 오늘은 셋까지만 센다.
난 집으로 돌아와 서울시 지도검색서비스 웹사이트를 열었다. 이 웹사이트를 보면 어디에서 어떤 공사를 하는지 알 수 있다.
오늘은 특히 도봉구에 어떤 공사가 있는지 살펴본다. 나는 하수 시설물 공사를 특히 선호한다. 그게 내 작업에 가장 좋기 때문이다.
아버지는 가장 믿는 친구에게 사기를 당했다. 어떤 사기였는지는 모르지만 아버지가 우는 건 그때 처음 보았다.
아버지는 울다가 나와 눈이 마주치자, 눈물을 닦고는 말했다.
“아무리 믿고 살려고 해도, 세상에 나쁜 놈이 백 명쯤은 있는 모양이다.”
그 말이 내 뇌리에 박혔다. 아버지는 그로부터 사흘 후에 돌아가셨다. 차에서 번개탄을 피웠다고 한다. 아버지는 참 열이 많은 분이었는데 그걸 어떻게 버텼는지 잘 모르겠다.
어쨌든 그 친구는 나에게 나쁜 놈 100명 중 1번이 되었다.
나는 성인이 되고 나서도 계속 1번을 추적했다. 멀리서 본 1번은 이제 노인이 다 되었고, 기대와 다르게 그리 잘살지도 못했다. 아버지가 살아계셨으면 1번처럼 노인이 됐을 테지. 그래도 좋았을까?
1번을 잡아다가 토막을 냈다. 원래는 영화에서 본 것처럼 황산으로 녹여 하수구에 버리려고 했지만, 그만큼 황산을 구하기도 힘들었고 우리집 하수구가 지저분해지는 것도 싫었다.
그래서 무작정 트렁크에 조각난 시체와 삽을 싣고 길을 나섰다. 어디 먼 곳에 가서 야산 같은 데 묻을 작정이었다. 그런데 집에서 나온지 5분도 안 돼서 뭔가가 눈에 띄었다. 공사현장이었다. 도로를 정비하는 것인지 보도블록은 다 치워져 있었고, 바닥에는 거적 같은 것만 깔려 있었다.
새벽 3시, 공사중이라는 표지판만 있고 지나다니는 사람도 거의 없었다. 난 그 앞에 차를 멈췄다. 당당히 비상등을 켜고 드렁크에서 삽과 시체가 담긴 대형 비닐봉지를 여러 개 꺼냈는데, 간혹 지나가는 차나 사람이 있었지만 아무도 신경 쓰지 않았다. 난 인도를 깊게, 깊게 파고는 비닐봉지들을 묻었다. 그리고 그 위에 흙을 덮고 거적을 원위치시켰다.
언젠가는 들키겠지만 당장은 아니다. 그 위에 새로 보도블록이 깔리고 나면 사람들은 자기 발밑에 시체가 있다는 상상도 하지 못한 채 돌아다니겠지.
2번은 엄마에게 최저임금도 주지 않고 주방일을 시켰던 갈비집 사장님으로 정했다. 가족 일부터 해결하는 게 우선이니까.
난 어디서 공사하는지 알려주는 서비스가 있다는 것을 알고 나서 적당한 공사 현장을 찾기 시작했다. 마침 1번을 묻은 곳 길 건너에서 하수구 정비 사업을 하고 있었다.
지인 중에 피규어를 모으는 사람이 있었다. 그 사람은 피규어 수집에서 본질은 장식장이라며, 피규어가 한곳에 모여 있으면 그 가치가 더 빛난다고 자랑했었다.
난 그때는 그 사람이 무슨 말을 하는 것인지 잘 몰랐다. 이제는 알 것 같다. 이제 이 거리는 나의 장식장이다.
나는 공사장에서 흔히 쓰는 헬멧과 야광 밴드 등을 샀다. 그걸 착용하고 하수구 공사장 바로 옆에 2번을 묻을 때는 잠깐 위기도 있었다.
순찰 중이던 경찰차가 옆에 멈추더니 차에서 내리지도 않고 물어봤다.
“이 시간에 무슨 공사입니까?”
“아, 낮에 묻은 게 문제가 생겨서 잠깐 땜빵하러 왔어요.”
난 고개도 들지 않고 대답했다. 눈을 마주하면 딴 소리가 나올 것만 같았다.
“수고 많으신데요, 원래 야간 공사하려면 신고해야 해요.”
경찰이 말했다.
“안 돼요. 이거 내 실수라, 몰래 땜빵해두지 않으면 난 짤려요.”
난 그제야 얼굴을 들어 경찰을 쳐다보며 사정했다.
마흔이 넘어 보이는 경찰은 내 얼굴을 한참 쳐다보더니 안됐다는 듯 말했다.
“젊은 사람이 고생이 많네요. 소음 신고나 오지 않게 조심하세요.”
그렇게 말하고 경찰은 자리를 떴다. 스무살 갓 넘어 보이는 청년이 이러고 있는 게 안됐나 보다. 저런 경찰은 100명 안에 넣지 않아야 한다.
이 동네에는 3번까지 모았다. 난 다른 동네에도 장식장을 만들기로 했다.
그래서 오늘 도봉구에 7번을 묻을 차례다.
할 일 없는 내일은 옆 동네로 산책을 갈 예정이다.
넷, 다섯, 여섯.
거기까지 셀 수 있겠지.
- 끝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