앞을 잘 보고 다닙시다
맨홀 도서관
- 은상’s #인스타소설
눈을 뜬 것인지 감은 것인지 모르겠다.
뜬 것 같은데, 앞이 보이지 않는다. 눈을 깜박거려 본다. 눈꺼풀의 느낌이 나는 걸로 봐서 눈을 뜨고 있기는 한 듯하다.
분명 길을 걸어가고 있었는데……. 갑자기 이런 상태가 됐다.
순간 강한 빛이 눈을 파고 들었다. 고개를 돌리고 눈이 명순응 하도록 기다렸다. 빛의 정체는 지금은 보기 힘든 오래된 백열등 스탠드였다.
그리고 그 옆에는 입이 삐죽 튀어나오고, 앞발이 유난히 큰, 게다가 두 발로 선 짐승이 있었다.
그건, 그건 거대한 두더지였다.
“눈을 떴나? 칠칠치 못하게 여기까지 떠내려 오다니……사실 요즘 자네 같은 사람이 늘어나기는 했다만.”
말! 두더지가 말을 하고 있다. 꿈일 것이다. 꿈이라고 생각하고 볼을 꼬집어 보았다. 아프다! 그런데 꿈에서도 아픈 것이면 어쩌지? 이게 꿈인지 아닌지 알 방법이 없잖아!
“볼을 꼬집는 걸 봐서 꿈인지 아닌지 알아보는 것 같은데, 꿈은 아니네. 여기 오면 다들 한 번씩 볼을 꼬집더군.”
두더지가 나에게 말했다. 난 영문을 몰라 주변을 둘러보았다. 제목은 잘 안 보이지만 책으로 가득한 어떤 곳이었고, 난 매우 낡은 3인용 소파에 누워 있었다. 재빨리 자세를 바로하고 앉았다.
두더지는 나를 보고 씩 하고 웃었다. 말 그대로다. 웃었다!
“여기는 도서관이야. 맨홀 도서관이라고 부르고 있지. 자네처럼 아무 생각 없이 걷다가 맨홀에 빠진 인간이 오는 곳이네.”
생각난다. 나는 정말로 아무 생각 없었다. 괴로운 현실을 잊고자……. 사실 그건 핑계고, 그냥 시도 때도 없이 숏폼을 봤다. 밤 새도록 봤고, 밥 먹으면서도 봤고, 길에서도 봤다. 걸으며 숏폼을 보다 정신을 잃었고, 눈떠 보니 지금 이 상황이었다.
“자, 어디인지 알았으니 주변에 있는 책을 한번 돌아보게. 자네에게 딱 맞는 책을 찾아 읽으면 여기에서 나갈 수 있고, 그렇지 않다면…… 글쎄, 나도 어떻게 될지 모르네.”
“책을 읽으라고요? 그건 그렇고 왜 반말을 하시는 거죠?”
두더지는 잘 보이지도 않는 눈을 한 번 동그랗게 뜨더니, 곧 낄낄대며 웃었다. 그러고는 곧 배를 잡고 뒹굴며 웃었다. 난 그 모습을 보니 화가 나기 시작했다.
“왜 그렇게 웃는 거죠? 내가 우습게 보여요?”
바닥을 뒹굴던 두더지는 똑바로 서더니 나에게 커다란 앞발을 내밀며 말했다.
“아주 자격지심으로 똘똘 뭉쳤군. 그래, 이상한 게 반말을 하는 게 전부였나? 두더지가 이렇게 말하고 있는 건 안 이상하고? 지금은 하는 일이 잘 안되니까 세상 사람들이 다 자기를 비웃는 것 같은가?”
두더지의 눈이 가늘어졌다.
“나, 나를 어떻게 알고 그런 말을 하는 거예요?”
난 꿰뚫어보는 듯한 그 눈빛에 당황했다.
“여기 오는 사람들은 다 그렇거든.”
두더지는 그렇게 말하고 다시 씩 웃었다.
“정 못 고르겠으면 내가 하나 추천해주지.”
두더지는 그렇게 말하고 책을 한 권 쥐어주었다. 손바닥 안에 쏙 들어오는 아주 작고 얇은 책이었다. 백열등 불빛 아래에서, 눈을 가늘게 떠야 제목이 겨우 보였다.
《똥》 포기하지 않는 파리 씀.
“파리가 썼다고요? 게다가 제목이 똥?”
“누차에 걸쳐 말하지만, 두더지가 도서관장인데 파리가 글을 못 쓸 것은 또 뭔가? 읽어보게. 도움이 될 거야.”
난 의심스러웠지만 손 안의 책을 읽었다.
난 좋다. 똥.
사람들이 아무리 오지 말라고 약을 뿌려도,
파리채를 들고 쫓아다녀도,
소가 꼬리를 휘휘 휘둘러 쫓아내려 해도,
난 달려든다.
다시 말하지만
사람들이 아무리 오지 말라고 약을 뿌려도,
파리채를 들고 쫓아다녀도,
소가 꼬리를 휘휘 휘둘러 쫓아내려 해도,
난 달려든다.
또 다시 말하지만
사람들이 아무리 오지 말라고 약을 뿌려도,
파리채를 들고 쫓아다녀도,
소가 꼬리를 휘휘 휘둘러 쫓아내려 해도,
난 달려든다.
또또 다시 말하지만……
그렇게 내용은 계속 반복됐다.
“이게 무슨 내용이죠? 계속 똥에 달려든다는 내용밖에 없는데요?”
“그럼 파리에게 뭘 더 바라나?”
두더지가 한심하다는 듯 쳐다봤다.
“분명, 도움이 될 거라고…….”
“됐고, 이제 나가게. 앞으로는 걸으면서 휴대전화 보지 말고! 또 오면 정말 못 나갈 줄 알아!”
두더지는 내 말을 자르더니 휴대전화를 돌려주었다. 그러고는 길을 따라가라는 말을 남긴 채 문밖으로 나를 떠밀었다.
쿵, 하고 문이 닫히자 다시 완벽한 어둠이 찾아왔다. 휴대전화 라이트 기능을 켰는데도 그 문은 다시 보이지 않았다.
난 뒤쪽에 있는 사다리를 올라와 맨홀 뚜껑을 열었다. 다행히 길에 사람은 없어서 이상한 의심은 받지 않았다.
묘한 일이었다. 걸어가며 난 생각했다.
‘눈이 안 보이는 두더지는 도서관 관장이고, 포기하지 않는 파리는 포기하지 않네.’
휴대전화를 주머니에 넣고 걷는데 공연히 웃음이 나왔다.
- 끝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