자랑거리

인스타소설

by 은상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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자랑거리

- 은상’s #인스타소설



‘더럽게도 말 많네.’

철민은 소주를 한 잔 들이켜며 앞에 앉아 있는 박 씨를 노려보았다. 박 씨는 같이 현장에서 노가다 하는 주제에 입 만 열면 자랑질이다. 아들이 이번에 대학교에서 장학금을 받았다는 둥, 와이프가 자기 먹으라고 장어즙을 보내줬다는 둥, 비록 노가다를 하고 있지만 사실 시골에 집이 한 채 있다는 둥. 거의 대부분 믿을 수 없는 말들이다. 그나마 그 말을 들어줘야 저녁을 겸해 찌개에 소주 한 잔 얻어먹을 수 있기에 ‘예, 예’ 하면서 앉아 있는다.

“누님, 여기 소주 한 병만 더 줘!”

박 씨는 손을 들어 술 한 병을 더 청했다.

누님이라 불린 함바집 사장은 탁 소리가 나게 소주병을 내려 놓으며 말했다.

“아니, 찌개 하나 시켜 놓고 술을 몇 병이나 마시는 거야?”

“누님, 어차피 술이 제일 많이 남는 거잖아요. 안주 더 시켜봤자 손만 많이 가지, 안 그래요?”

박 씨는 능글능글 웃으며 대답했다. 말은 그렇게 하면서 또 다른 주문을 했다.

“오늘 내가 기분이 좋아서 그래요. 누님, 사람도 없는데 여기 계란말이 하나 더 주고 같이 한 잔 해.”

누님은 잠깐 생각하더니 말했다.

“그래, 어차피 8시면 문을 닫으니까, 한 잔 하지 뭐.”

그렇게 누님도 합석하고 술 자리는 길어졌다.

“나 사실 이 식당, 이번 달 말까지밖에 안 해. 딸이 그 뭐냐, 대기업 다니는 사람이랑 결혼했으니까… 맞아 사위가 대기업을 다니는데 더는 고생하지 말고 같이 살자고 하네. 그 마음이 고마워서 이제 그만하려고.”

누님은 생글생글 웃으며 말했다.

‘이런 젠장, 이제 누님마저 자랑 대열에 끼어들었네.’

철민은 뭐라도 자랑할 게 있었으면 좋겠다고 생각했다. 노가다판을 따라 다니느라 달방에서 겨우겨우 살고 있는 자기에게 자랑할 만한 게 있을 리 없었다. 점점 더 써지는 소주잔을 비우다가 문득 주머니에 뭔가 들어 있다는 게 떠올랐다. 왜 그런 짓을 했는지는 철민도 알지 못했다.

“나도 이제 곧 여기 떠나요. 큰 돈은 아니지만, 그래도 밑천은 되지 않을까 해서요. 2등 됐어요.”

철민은 그렇게 말하고 로또 용지를 주머니에서 꺼내 살짝 흔들었다. 물론 꽝이었다. 게다가 1등이라고 거짓말할 용기도 없었다. 2등 정도면 적당히 부러워할 그런 거짓말이리라.

멍한 표정으로 바라보던 박 씨가 먼저 말했다.

“어, 축하해. 이제 고생 끝낼 때도 됐지.”

“어머, 축하해.”

누님도 같이 축하해주었다.

철민은 부끄러웠다. 자기는 질투 때문에 이런 거짓말을 하고 있는데 박 씨나 누님은 모두 웃으며 축하를 해주고 있었다.

“어… 아직 돈을 바꾸지 못해서 지금은 못 사지만…. 음… 이걸 돈으로 바꾸면 박형하고 누님한테 한 잔 살게요. 기, 기다려요.”

철민은 손이 떨려서 더 술을 마실 수 없었다. 빨리 자리를 파하고 퀘퀘한 달방에 돌아와 쓰러지듯 누웠다.

‘내가 왜 그랬을까? 거짓말이 들통나기 전에 다른 일자리나 알아봐야겠다.’

철민은 후회하다가 겨우 잠이 들었다.

얼마나 잠을 잤을까? 이상한 소리가 들려 눈을 떴다. 누군가 비밀번호를 누르는 소리였다. 뭐지? 누가 비밀번호를 누르지? 어리둥정하고 있는데 문이 열리고야 말았다.

실눈을 뜨고 보는데 어둠을 뚫고 누군가 살금살금 방에 들어왔다. 그러고는 벗어놓은 옷가지에서 뭔가를 뒤지고 있었다.

‘먹고 죽으려 해도 아무것도 없는 나 같은 놈한테도 도둑이 들다니!’

철민은 갑자기 분노를 참을 수 없었다. 철민은 벌떡 일어나 도둑을 넘어뜨리고 올라타 목을 졸랐다. 도둑은 끽끽 하는 듯한 비명을 지를 뿐이었다.

“처… 철민이, 나… 나야.”

도둑이 겨우겨우 낸 목소리는 박 씨와 닮아 있었다. 박 씨라면 비밀번호를 누르고 들어온 게 이해가 됐다. 철민은 불을 켰다. 그 앞에 박 씨가 목을 잡고 누워 있었다. 그제야 철민은 도둑, 아니 박 씨가 무엇을 찾고 있는지 알았다. 바로 그 로또였을 것이다.

“지금 내 로또 훔치러 들어온 거요?”

철민은 소리를 질렀다.

“미안하네. 내가 정신이 나갔나 봐. 지방 전문대에 다니는 아들놈이 매번 술이나 처먹고 공부도 제대로 안 하더니…. 등록금이 없다고… 이번에 등록 안 하면 그나마도 졸업을 못한다고 하기에… 내가 그만….”

“박형, 그럼 그동안 말한 건 다 뻥이었어? 그런데 나한테…. 으악!”

철민은 말하며 구석을 보다가 놀라 크게 넘어지고 말았다.

구석에는 어느새 들어왔는지 ‘누님’이 쪼그리고 앉아 있었다.

“미안, 동생. 나 사실은 월세를 못 내서 가게에서 쫓겨나게 생겼어. 그래서 그만….”

누님은 눈물을 지으며, 매우 미안하다는 얼굴로 말했다. 결국 누님도 로또를 훔치러 들어온 것이다.

철민은 로또를 꺼내 쫙쫙 찢었다.

“이거 다 뻥이야! 나도 뭐라도 말하고 싶었다고!”

철민이 소리치자, 고개를 숙이고 있던 박 씨와 누님은 서로를 황망하게 쳐다보았다. 그리고 몇 분인지 모를 지독한 침묵이 흘렀다.

박 씨는 슬슬 몸을 일으키더니 눈치를 보며 뒷걸음 치다가 어색하게 웃으며 말했다.

“내일 나올 거지? 내일 봐.”

누님도 그뒤를 슬슬 따라 가며 말했다.

“내일 우리 식당 와서 밥 먹어. 맛있는 거 해줄게.”

철민은 찢어진 로또 용지를 모으며, ‘일은 나가는 게 낫겠지?’ 하고 생각하다 웃었다.


- 끝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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