왕은 아니지만
왕이 나셨도다
- 은상’s #인스타소설
머나먼 서쪽 어느 나라에는 몇 년간 왕이 없었다.
마침내 천사가 나타나 이곳에서 동쪽으로 500리를 가면 작은 오두막이 있는데, 그곳에 왕이 될 아이가 있다고 점지해 주었다.
그러자 사람들은 사신을 보내 왕이 될 아이를 모셔오기로 했다.
사신은 몇 날 며칠에 걸쳐 500리 길을 걸어갔다.
과연 그곳에는 천사가 알려준 오두막이 있었다.
사신은 오두막 안으로 들어갔다.
오두막 안에는 얼굴에서 광채가 나는 듯한 아이가 근엄한 표정을 하고 비단 의자에 앉아 있었다.
사신은 고개를 숙이고 아이에게 물었다.
“그대가 우리의 왕이 되실 분입니까?”
그러자 아이가 대답했다.
“내가 왕이 될 사람이다. 왕이 될 권위를 지니고 있고, 왕이 될 외모를 하고 있으며, 천사가 왕이 될 것이라 점지했느니라.”
“과연 그러합니다. 그러면 백성들이 기다리고 있는 왕궁으로 가시지요.”
사신이 말했다.
“지금부터 너 또한 나의 백성이니 왕으로서 나를 모시거라. 왕은 걸어갈 수 없으니 업혀서라도 가야겠다.”
“과연 그 말 또한 옳습니다. 제 등에 업히시지요.”
사신은 왕이 될 아이를 업고서 오두막을 나왔다.
그런데 오두막 앞에는 한 아이가 서 있었다. 검소한 차림새이지만 눈빛만은 총명해 보였다.
사신은 물었다.
“너는 누구냐?”
아이가 사신에게 나무 잔에 담긴 물을 내밀면서 대답했다.
“전 그저 그대를 지켜본 사람일 뿐입니다. 저 멀리서 지친 발걸음으로 이곳까지 오시는 게 너무 힘들어 보여 물 한 잔을 드리려고 기다리고 있었습니다.”
사신은 아이가 준 물을 받아 마시려고 했다.
그러자 등 뒤의 아이가 말했다.
“백성의 것은 왕의 것이다. 그러니 그 물 또한 왕인 내가 마셔야 한다.”
그 말을 들은 사신은 뒤로 돌아가서 업고 있던 아이를 다시 의자에 내려놓았다.
그러고는 문 앞에서 물을 준 아이에게 말했다.
“이제부터 당신이 우리의 왕입니다. 백성을 지켜보고 보살피는 마음이 있다면, 당신의 왕으로서의 권위는 백성이 줄 것입니다.”
아이는 고개를 끄덕였고, 사신과 아이는 나란히 손을 잡고 왕궁이 있는 곳으로 걸어갔다.
- 끝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