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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옥세경 Nov 01. 2020

1-5 GRE & TOEFL

GRE와 TOEFL에 대한 이해와 공부 전략

1. GRE 시험의 본질과 공부 전략
2. GRE는 수험기간이 길어진다고 고득점이 나오는 시험이 아니다.
3. 대학원 입시에서 TOEFL과 GRE는 다른 의의를 갖는다.


이 가이드의 목적은 독자들이 미국 대학원 유학을 스스로 준비하는 데 필요한 거시적인 통찰을 전달하는 데에 있다. 따라서 GRE와 TOEFL 시험에 관해서 세세한 팁을 제공하기보다는 해당 시험의 본질을 이해하는데 필요한 몇몇 쟁점들을 짚어볼 예정이다. 문제풀이 노하우는 인터넷에 충분히 있다. 내가 이야기하고 싶은 것은 시험공부 계획을 세우기 앞서 어떤 부분들을 주의해야 하는가다.




1) GRE의 본질과 공부 전략

미국 대학원 입시를 준비하는 사람들이 가장 많이 하는 실수가 GRE 학원에서 소중한 시간을 몽땅 탕진하는 것이다. 일단 학부는 졸업해버렸고 당장 무엇을 준비해야 할지 잘 모르기 때문에 학원에 몸을 맡기는 경우가 많다. 어떤 학원은 제출 서류들을 알아서 대필해줄 테니 GRE 시험에만 집중하라는 식으로 조언하기도 하던데, 그건 정말 무책임한 서비스다. 그저 도덕적으로 엉망이라는 얘기가 아니라, 학원에 앉아있다고 원하는 GRE 점수가 나오는 것도 아닐뿐더러 연구계획서와 작문 견본스스로 준비하고 적합한 예비 지도교수들을 찾아 직접 연락 수 있는 역량과 태도 없이 설령 대학원에 간다고 해도 성취를 낼 수 없다는 뜻이다. (그렇게 대학원 졸업 후에 "학문적 커리어가 있는 사람"이 아닌 "일단 학위는 있으니까 어딘가에서 일 할 수는 있지 않을까 싶은 사람"이 된다)


물론 GRE 시험은 성실하게 준비해서 가능한 한 고득점을 받아야 하고, 일정 수험기간 동안 학원에서 필요한 훈련을 받는 것은 나쁜 선택이 아니다. 문제는 스스로 세운 계획의 일부로서 학원의 서비스를 선택적으로 구매하는 것과 그냥 학원에 돈과 시간을 맹목적으로 투자하면 알아서 고득점을 받게 될 것이라고 기대하는 것은 다르다는 점이다. 그럼 GRE도대체 어떤 시험이고 어떻게 준비해야 할까?


결론부터 말하면 GRE는 논리적 문해력 시험이다. Argument Task(주어진 지문을 읽고 특정 방향의 논설문을 작성하는 과제), Verbal Reasoning(독해 지문을 읽고 문제를 푸는 과제) 그리고 Quantitative Reasoning(수학적 도식이나 상황에 관련된 문제를 푸는 과제)이라는 세 과목으로 구성되어 있지만, 단순히 작문 능력, 독해 능력, 수학 숙련도 전반을 테스트하는 교양 시험이 아니다. 따라서 수려한 글쓰기, 문학/비문학/역사 등에 대한 지식, 수학 공식에 대한 암기 등은 필요하지 않으며, 오직 상당히 날카로운 수준의 논리로 글을 읽고, 쓰고, 수학적 문제를 해결할 수 있어야 한다. 결국 독해 지문에서 고급 어휘가 나온다는 점과 고등학교 이하 과정에서 배운 수학적 상황들에 대한 어느 정도의 기억이 있어야 한다는 점을 제외하고는 거의 후천적 IQ 테스트에 가까운 시험다. 단기간에 학원 교육을 받거나 문제풀이 연습을 한다고 해서 본인의 기본적인 역량을 크게 웃도는 고득점을 받을 수는 없다.


가령 Argument Task에 이런 지문이 나왔다고 생각해보자:

James의 공장은 막대사탕을 생산한다. James는 얼마 전 대형 식품업체 A에 사탕을 납품하고 20% 정도의 마진을 남기는 새로운 계약을 맺었다. 식품업체 A는 James의 공장에서 생산된 사탕을 각각 동부, 서부, 중서부, 남부의 유통망을 담당하는 유통업체 1, 2, 3, 4를 통해 전국의 도소매상에 판매한다. 또한 식품업체 A는 James의 공장에서 생산된 사탕의 TV 및 SNS 광고도 직접 진행하는데, 사내 홍보팀이 하나의 영상 콘텐츠를 제작한 뒤 회사 SNS와 각 주의 방송국을 통해 전 국민에게 송출하는 방식이다. 그런데 문제가 있다. 사탕을 판매하기 시작한 지 몇 개월이 지났는데, 예상에 비해 James 공장의 막대사탕의 판매량이 많이 부진한 것이다. 식품업체 A의 임원인 David는 해당 사탕이 기존에 예상했던 만큼 수요가 있는 제품은 아니라는 판단을 내렸고, 계약기간이 끝나면 James가 가져가는 마진을 대폭 줄이는 방향으로 재계약을 하거나 아예 계약을 종료하는 것이 합리적이라는 결론을 내렸다.

질문:  David의 결론의 숨은 전제들을 분석하여 그에 의견에 대한 논설문을 쓰시오. 명심할 것은, David의 주장에 어떤 숨은 전제들이 있으며 그 전제들이 전혀 보장되지 않았다는 점이 드러날 때 David의 논리 전반에 어떤 비판이 가능해지는 지를 유념하며 답변하시오.

이때 우리는 스스로의 의견, 배경 지식, 멋있는 말솜씨 등을 전부 버리고, 그저 주어진 글의 내용과 칼 같은 논리만으로 "David의 결론이 사실은 전혀 보장되어 있지 않는 전제들에 함부로 기반한다"는 것을 가능한 한 모든 면에서 30분 동안 난도질해야 한다. 예를 들면 이렇게 말이다:

David는 사탕의 판매량이 기대보다 부진하다는 이유로 (1)해당 사탕의 실수요가 예상보다 적으며 (2)결과적으로 James에게 좀 더 불리한 조건으로 재계약을 하는 것이 옳다는 결론을 내렸다. 하지만 해당 결론에는 많은 보장되지 않은 전제들이 있다.

첫째, 사탕의 판매량이 부진한 것이 수요의 부족 때문이라는 결론은 "유통, 홍보 그리고 도소매상의 영업 과정"에는 전혀 문제가 없다는 것을 함부로 전제한 것이다. 어쩌면 유통업체에서 비효율적인 유통망을 사용하는 탓에 비용 대비 적절한 수의 도소매상에 상품이 유통되지 못하고 있을 수도 있다. 혹은 특정 유통업체에서 상품을 취급하는 방식에 문제가 있어 유통 중 일부 사탕의 맛이 변질되기 때문에 특정 지역의 소비자들에게 외면받고 있을 수도 있다. 혹은 A사가 제작한 광고물이 수요자들에 대한 구매 자극력이 없는 것일 수도 있고, 전반적으로는 괜찮은 광고물을 만들고 있더라도 각 지역의 문화적/취향적 차이를 감안해 지역-구분적 광고물을 만들지 않는다는 점이 약점일 수도 있다. 물론 광고물의 질과 관련 없이, 광고물의 송신망이 비효율적인 것일 수도 있다: SNS 팔로잉을 유도하는 것이 불충분하거나 방송국이 비효율적인 송출 시간대를 활용하고 있는 것일 수도 있다. 또 도소매상에서 해당 사탕을 배치하는 위치나 방식에 문제가 있을 수도 있다. 결과적으로 각 상점별/지역별 구매 양태를 파악하고, 광고물에 대한 소비자의 반응과 방송 시간대의 시간-적절성을 지역별로 구분해서 조사하고, 현재 유통망의 효율성과 범위를 검토하여 종합적인 결론을 내려야 한다. 어쩌면 수요가 있는데 활용을 못하는 것일 수도 있기 때문이다. 문제를 해결하면 그동안 구매를 하지 않았던 수요자들이 구매를 시작하게 되고, James와의 계약 조건은 정당했던 것임이 드러날 수 있다.

둘째, 혹시 당장 수요가 적은 것이 사실이라고 전제하더라도, James와 재계약을 하기 전에 수요를 확대하려는 시도를 해볼 수 있다. 비록 현 수요의 기준에서 부당한 계약이라고 하더라도, James의 사탕의 "잠재적 수요"를 실질적 수요로 충분히 전환할 수 있다면 결국 James와 David 모두에게 정당한 상황으로 전환될 것이다. 즉 David의 두 번째 결론은 해당 상품의 "잠재적 수요"가 충분하지 않음을 함부로 전제한 것이다. 윗 문단에서 제시한 비판과 관련해서, 유통/홍보/영업 전반에 대한 검토를 실시한다면, 어쩌면 현 수요층의 구매를 자극하는 것을 넘어서 새로운 수요층을 끌어당길 수 있는 방안이 있을 수 있다. 유통망을 점검해 미유통 지역을 새로운 시장으로 전환할 수도 있고, 각 지역별로 색다른 소비자를 끌어당길 수 있는 광고물을 만들 수도 있으며, 도소매장 내 상품 배치 방법을 변경함으로써 새로운 소비자의 눈높이에 맞출 수도 있다. 결론 내리자면, 어쩌면 실제로 수요에 비해 James에게 높은 마진율이 책정된 것일 수도 있지만, David는 상품의 유통-홍보-판매 과정에 대한 충분한 조사 없이 너무 많은 점들을 함부로 전제하며 결론을 내린 것이다.

나는 경영학 전공자가 아니기 때문에, 어쩌면 내 답변이 나의 경영학적 지식의 부족을 반영하고 있을지도 모른다. 하지만 이 작문에서는 그런 것이 중요하지 않다. 그저 주어진 내용의 논리적 쟁점들을 파악하고 오직 그 내용만을 이용해 비판을 되돌려주는 역량을 보여주면 된다. 실전에서는 지문이 좀 더 길고, 시간의 압박이 크게 작용하며, 무엇보다 영어에 자신이 없는 사람에게는 어려운 작문일 수 있다. 하지만 그건 연습하면서 자신만의 방법을 만들어나가면 되는 것이고 중요한  GRE 시험은 단순한 영어 및 교양 시험이 아닌 논리적 문해력 시험이라는 점을 다시 한번 명심하고 훈련 계획을 세우는 것이다.


Aurgument Task는 Issue 문제 하나와 Argue 문제 하나로 구성되는데, 방금 제시한 예시는 Argue 문제다. Issue 문제에서는 "학생들이 국제화 시대의 지식경쟁력을 확보할 수 있도록, 대학교는 모든 학생에게 하나의 외국어를 최소 20학점 이상 듣도록 해야 한다"와 같은 한 문장짜리 테제가 주어지고 시험자는 그것에 대한 답변을 써야 한다. 얼핏 보면 토플 라이팅과 비슷하게 그냥 내 생각을 쓰는 에세이 같지만, 질문을 자세히 읽어보면 찬반의 입장을 모두 다루는 글을 쓰도록 주문한다. 즉 나의 논리를 전개하면서도 그것이 어디까지나 특정 전제와 맥락에 기대고 있다는 점을 스스로 밝히면서, 다른 구체적인 조건이나 맥락에서는 반대 의견이 유효할 수 있다는 점을 인정하는, "나는 의견을 제시하긴 하겠지만 이게 완벽한 것은 아니라는 점을 내가 스스로 밝힐 테니까, 내가 보장되지 않은 전제를 깔고 있다는 난도질은 하지 말아 줘"라는 외침을 하는 듯한 편집증적이고 방어적인 논리-강박의 글을 쓰면 된다. Argue 문제는 위에서 자세히 설명했듯이 한 문단 정도의 글을 읽고 그 글이 기반하고 있는 숨은 전제들을 파헤치는 공격적인 답변을 쓰면 되는데, 결국 Issue 문제와 Argue 문제는 동전의 양면과도 같다. 즉 Issue 문제에 답변할 때, 누군가가 나의 글에 대한 Argue 답변을 쓰지는 않을까 하는 심정으로 수비적인 쉐도우 복싱을 하듯이 논리를 전개하면 된다 (남한테 트집 잡힐 만한 것들은 내가 먼저 말해버리겠다는 태도라고나 할까). 인터넷이나 GRE 기본서 등에 라이팅 노하우와 방법론들은 많이 있으니, 각자 참고자료를 찾고 독자적으로 훈련하면서 본인만의 스타일이나 유연한 템플릿을 만들어 나가면 된다. 다만 이 글의 내용을 명심해서, Argument Task에서는 수려한 글쓰기가 아닌 강박적 논리력을 보여줘야 한다는 것만은 꼭 기억하고 훈련을 하자.


여기서 너무 자세히 설명할 필요는 없지만, GRE가 논리적 문해력 시험이라는 것은 Verbal Reasoning에서도 마찬가지다. Verbal Reasoning은 독해 지문에서 제시하는 내용의 "구조 단위의 논리 전개"와 "문장 단위의 논리 전개" 모두를 시험자가 자유자재로 다룰 수 있는지 시험한다. 즉, 글을 읽으면서 큼직한 내용 전개를 파악할 수 있으며, 동시에 문장을 쓰고 읽을 때 의미적 오류를 피할 수 있는 정도의 논리적 문해력이 있는지를 테스트하는 것이다. 생각해보면, 누군가가 어떤 말이 비논리적이라고 생각한다면 그건 둘 중 하나의 이유 때문이다: 문장이 말이 안 되거나, 문장들 사이의 관계인 내용 구조가 말이 안 되거나. 그렇기 때문에 GRE Verbal Reasoning의 세 가지 질문 타입인 Reading Comprehension(글의 구조나 세부 내용에 대한 질문), Text Completion(문장에 들어가기 적합한 단어를 묻는 질문), Sentence Equivalence(문장 안에 하나의 빈칸이 있고 그 빈칸에 들어갈 수 있는 단어 두 개를 골라야 하는 질문)각기 상당히 이질적으로 보이지만, 결국 우리가 언어를 활용해 논리를 구사할 준비가 되었는지를 본다는 공통점이 있는 것이다. 논리적 문해력 외에 유일하게 필요한 역량은 아마 어휘력과 영어 숙련도일 것이다. Verbal Reasoning에서는 사용되는 단어의 수준이 높고 지문이 복잡한 편이어서, 영어에 대한 자신이 없다면 본인의 논리력을 충분히 발휘하지 못한다.


결국 Verbal Reasoning에서 고득점을 받으려면 두 가지가 필요하다: (1)길고 복잡한 글을 읽을 때 내용 흐름의 큰 구조를 캐치하면서도 작은 부분들의 위치를 어느 정도는 기억해두는 독해력과 노트 테이킹 기술, (2)고급 어휘력과 영어 숙련도. "작가가 A 부분을 무슨 목적으로 언급했는가" 혹은 "A부분과 B부분은 어떤 관계가 있는가"와 같은 구조적인 질문이 나올 때, 전체적인 내용 흐름을 거시적으로 파악하며 지문을 읽은 시험자는 이미 글의 각 부분이 무슨 기능을 하는지(저자의 주장인지, 근거인지, 근거를 보충하는 예시인지, 혹은 타인의 주장을 반박하기 위해 제시한 반례인지 등)를 대충 파악해뒀을 것이기 때문에 어렵지 않게 답할 수 있다. "작가가 X주장을 반박하기 위해 제시한 반례는 무엇인가"와 같이 세부 내용을 묻는 질문이 나오면, 마찬가지로 이미 큰 그림을 알고 있다면 글의 어느 부분에 해당 반례가 등장하는지를 쉽게 기억해낼 수 있고 꼭 필요한 지점만 다시 읽어보고 대답하면 되는 것이다. "X 문장의 빈칸에 들어갔을 때 원문장의 의미를 변형시키지 않는 단어 두 개를 고르시오"와 같은 문장 단위의 질문이 주어지면, 흐름상 빈칸에 어떤 의미/뉘앙스의 단어가 와야 하는지를 판단해보고, 정답 옵션에서 가장 적절한 답 두 개를 체크하면 된다. 어차피 지문을 읽고 풀면 되는데, 딱히 학원에서 문제풀이의 노하우를 배울 필요가 있어 보이는가?


Quantitative Reasoning의 경우도 마찬가지다. 문제풀이에 필요한 배경지식은 국내 과정으로 치면 중학교 3학년 정도면 다 떼는 기본적인 내용들이다. 즉 수학에서 사용되는 영어 어휘 정도만 익숙하다면 지식이 부족해서 못 푸는 문제는 없을 것이라는 말이다. 다만 필요지식의 범위가 정해지지 않은 데다가 복잡한 수수께끼 같은 문제들이 나오기 때문에 머리를 영악하게 굴려가며 문제 해결의 방법을 찾는 수리적 사고력이 있어야 한다. 이에 대한 훈련은 각자의 필요에 맞게 계획을 짜서 진행하면 된다. 어렸을 때 수학 공부를 안 한 탓에 기본기가 부족하다면 기본적인 공식 설명에 충실한 GRE Quantitative Reasoning 기본서를 한 권 구매해서 공부하면 되고, 문제 풀이력을 발전시키고 싶다면 문제 유형 분석에 집중하는 기본서와 연습문제집을 활용하자. 혹시 수학 영어가 너무 낯설다면, 꾸준히 어휘를 암기하고 시험에서 사용하는 모든 표현이 익숙해질 때까지 문제를 풀어보는 노력을 하면 된다.




2) GRE는 수험기간이 길어진다고 고득점이 나오는 시험이 아니다

그럼 어떻게 준비하면 될까? 우선 확실한 건 GRE 시험 준비에만 전적으로 집중하는 수험기간은 길 필요도 없고 돈이 많이 들 이유도 없다. 두세 달의 독학이면 충분할 것이다. Argument Task의 경우, 글의 논리적 약점(보장되지 않은 전제)을 낱낱이 파헤치고 제한된 시간에 효율적이고 알찬 비판을 작성하는 훈련을 하며 Issue 문제와 Argue 문제 별로 본인만의 작문 노하우를 축적하면 된다. Verbal Reasoning은 길고 복잡한 글의 큰 그림을 놓치지 않는 독해-노트 테이킹 연습을 하면서, 각종 문제 유형과 친숙해지면 된다. Quantitative Reasoning은 앞서 말했듯이 기초적인 수학 지식, 영어 어휘, 문제 유형 분석 등 본인의 필요에 맞는 공부를 선택적으로 하면 된다. 시중에는 GRE 기본서와 문제집들이 많이 있으니, 본인이 스스로의 역량과 약점을 냉정히 파악할 수 있다면 얼마든지 독학이 가능하다.


그럼 학원에 가면 어떤 도움을 받을 수 있을까? 사실 수업의 내용만 놓고 보면, 결국 단어를 초인적인 경지로 외우도록 장려한다는 것 말고는 제대로 기획된 독학보다 딱히 나을 게 없다. 다만 Argument Task를 쓰는 기초 훈련을 받고 싶다거나, (어느 정도 GRE에 대한 독자적인 이해를 독학으로 마친 뒤에) 고정적으로 작문과 문제풀이를 하고 고수들의 피드백을 받는 시간이 필요하다면 학원이 도움이 될 것 같다. 학원에서 줄 수 있는 도움이 이렇게 제한적인 이유는, GRE는 배경지식을 요하는 시험이 전혀 아닐뿐더러 문제풀이용 잔재주에 함락될 정도로 엉성하게 만들어진 시험이 아니기 때문이다. 족집게 학원 문화에 익숙한 우리는 지문의 일부분이나 문제의 패턴만 보고 정답을 추론하는 잔재주를 노하우랍시고 전수하는 일부 학원들의 역량을 과대평가하는 경향이 있다. 그런데 GRE를 비롯해서 대부분의 대학원 입시용 시험의 경우 그런 이상한 노하우를 암기하느라고 빙빙 돌아갈 시간에 정도(正道)의 훈련을 하는 게 점수를 위해서나 본인의 미래를 위해서나 더 좋다. GRE에서 고득점을 받기 위해서 필요한 것은 오랜 시간에 걸쳐 체득한 논리적 문해력과 영어 숙련도이며, 수험기간에 단기적으로 준비할 수 있는 것은 해당 역량을 유감없이 뽐내기 위한 마무리 훈련 정도인 것이다.


그럼 논리력, 문해력, 영어 숙련도는 어떻게 훈련시키는가? 정답은 없지만 몇 개의 모델을 제시해보겠다. 당신이 아직 학부 저학년이거나 예상 시험일까지 1년 이상의 시간이 있다면, 시험을 의식하지 말고 비판적 독서 훈련과 영어 공부를 열심히 하자. 그리고 주 5일 10-20개 정도의 단어를 외우면서 꾸준히 복습하자. 맘 편한 소리 같을 수 있지만, 전적으로 시험 대비에 집중하는 기간은 길어야 3개월 정도면 충분하고 그 이상은 오히려 시간 낭비다. 우선 책이나 논문을 읽을 때 아무 생각 없이 내용만 따라가지 말고, 전체적인 논리 전개가 어떻게 흘러가는지를 꽉 잡으면서 읽어 내려가자. 당신이 표시한 밑줄이나 메모만 보고도 해당 글의 전체적인 로직 트리가 보여야 한다. "나중에 기억이 흐려져 이 글을 다시 한번 폈을 때, 밑줄 친 부분이나 메모만 훑어보면 이 글에서 어떤 논리 전개를 하고 있는지 한눈에 기억할 수 있게 표시를 해두자"라는 마인드가 필요하다. 만약 당신이 아직 학위 과정 중에 있다면 글을 읽고 써야 하는 과제가 많을 텐데 소중한 훈련 기회를 낭비하지 말자. 또 단어는 하루에 10개씩 30일만 외워도 300개니, 조급함을 버리고 조금씩 꾸준히 외우는 편이 좋다. Quizlet 등의 플래시카드 어플을 이용해 그동안 외운 단어들을 끊임없이 복습하는 것이 중요하다.


시간이 아주 많은 것은 아니지만 문제풀이 연습 단계에 들어가기 전 몇 개월 정도의 시간이 있다면(즉 시험일까지 6개월 정도가 남았다면), 마음 편하게 책을 읽으면서 자연스럽게 훈련하기보다는 적당히 길고 복잡한 영문 텍스트를 짧은 시간에 분석적으로 읽는 훈련을 반복하자. (단어 역시 지속 가능하고 꾸준하게 외우는 것이 좋겠다) 적당한 길이의 논문도 좋고, 아니면 GRE 문제집을 하나 구매해서 지문 읽기와 노트 테이킹만 하는 훈련에 몰입해도 좋다. GRE 지문에서 논리적 흐름은 주로 문단을 기본 단위로 구축되는데, 노트 테이킹은 이런 구조를 한눈에 보여주는 양식을 띄어야 한다:

노트 테이킹 예시(각 문단의 소제목을 본문에 메모하며 구조를 파악할 경우)

*저자가 X라는 사람의 이론을 소개한 뒤, 이를 반박하고 본인의 대안적 이론을 하나 제시하고는 두 개의 예시를 들어 설득력을 높이는 글

Background

X's theory

Weakness 1 - Wrong statistics

Weakness 2 - Biased evaluation of social properties

Author's alternative theory

example 1: animal ecosystem

example 2: energy economics


만약 당신이 당장 두세 달 후에 GRE 시험을 봐야 한다면, 우선 모의고사를 통해 본인의 장단점을 파악하고 강도 높은 개인 맞춤형 공부 계획을 세우자. 이때는 단어 암기 역시 강도 높여 기본적인 루틴으로 깔고 가. 본인이 논리적 문해력이나 영어 독해 숙련도가 부족하다면, 바로 문제풀이에 착수하기보다는 한 달 정도는 GRE 기본서를 읽으며 시험 전반과 문제 유형별 특징을 찬찬히 이해함과 동시에 지문을 분석적으로 읽는 것에 포커스를 맞춘 훈련을 고강도로 실행하는 것이 좋을 것다. 반면 영어 문해력이 이미 충분히 훈련되어 있다면, 각종 문제 유형을 가볍게 파악하는 시간을 갖고 바로 문제풀이 연습에 착수하면 되니 기본서보다는 문제집의 도움을 받자. 만약 수학에 자신이 없다면 기본 설명에 충실한 GRE 수학 기본서를 한 권 구매해서 필요한 배경 지식과 정보를 얻은 뒤, 신감이 생길 때까지 제를 최대한 많이 풀면 된다.


*단어 암기의 경우 개인마다 수준 차이가 크니 각자의 상황에 맞게 지속 가능한 루틴을 짜면 된다. 시험 전까지 GRE 어휘 수준에 도달하면 된다는 생각으로 하루에 암기할 단어의 수와 최종적으로 정복할 단어장들을 정하자.




3. 대학원 입시에서 TOEFL과 GRE는 다른 의의를 갖는다

마지막으로 TOEFL에 대해서 짧게나마 이야기해보자. GRE가 모든 지원자들이 치러야 하는 논리적 문해력 시험이라면, TOEFL은 영어권 국가에서 수학한 경험이 없거나 적은 국제 학생들이 치러야 하는 영어 숙련도 시험이다. 원론적으로 토플은 지원자가 영어권 대학교에서 공부할 최소한의 언어적 준비가 되었는가를 시험할 뿐, 해당 지원자의 학문적 역량을 드러내 주는 디테일한 지표는 아니다. 그러므로 고득점보다는 점수 커트라인을 넘는 것 자체에 더 본질적인 의미가 있다. 다만 아무래도 점수가 높을수록 커미티에게 좋은 심리적 효과를 가져다줄 수는 있다. 커미티 입장에서 국제 학생을 뽑을 때 언어적 차이를 어느 정도는 걱정하기 마련일 테니, 무리하게 시간을 투자하지 않는 선에서 가능한 한 높은 점수를 받자. 커트라인을 어느 정도 여유롭게 뛰어넘는 점수를 받는다면, 커미티는 적어도 당신의 영어에 대한 걱정은 하지 않을 것이고, 당신의 학문적 역량을 좀 더 편견 없이 검토할 수 있을 것이다.


그런데 GRE와 TOEFL에서 활용하는 영어의 수준 차이가 조금 큰 편이라, 두 시험이 각각 논리적 문해력과 영어 숙련도를 파악하는 구분된 역할을 한다고 보기에는 무리가 있기도 하다. GRE에서 본인의 문해력을 유감없이 드러낼 수 있을 정도의 영어 실력이라면 TOEFL은 애당초 별로 어렵지 않게 여길 확률이 높고, TOEFL에서 커트라인을 맞추는데 부담을 느끼고 있다면 GRE Argument Task와 Verbal Reasoning 파트에서 본인의 문해력을 제대로 발휘하기 힘들 것이다. (물론 TOEFL에는 청취와 스피킹이라는 고유의 영역이 있으니, 어떤 사람 GRE에서 자신감을 느끼더라도 TOEFL이 여전히 부담스러울 수 있다)


그럼 TOEFL과 GRE 준비는 어떻게 병행하면 좋을까? 역시 정답은 없겠지만, 두 가지 중요한 사실을 명심하여 각자의 판단으로 계획을 짜 보자: 1)어차피 GRE 수험기간 자체는 3개월 정도면 충분하고 그전까지는 꾸준히 영어 숙련도와 문해력 전반을 훈련하는 것이 좋다, 2)GRE를 소화할 정도로 영어 숙련도가 확보된 상황이라면 사실 TOEFL에 친숙해지는 훈련은 단기간에 가능하다. 만약 당신이 학부 저학년이거나 어느 정도 충분한 시간을 두고 대학원 입시를 준비할 계획이라면, 어차피 GRE 시험공부에 당장 착수할 필요가 없으니 TOEFL 형식에 맞추어 꾸준히 영어 공부를 하자. 그렇게 어휘력과 영어 숙련도를 확보하고, 점차 복잡한 독해와 논리적 글쓰기 훈련을 병행하다가 GRE 시험이 가까워질 즈음 짧고 굵은 GRE 수험기간을 갖는 것이 좋을 것 같다(TOEFL 시험을 GRE 이전 혹은 이후에 볼지는 상황에 맞게 결정하자). 만약 당신이 어느 정도 영어 숙련도가 확보된 상황이고 조만간 원서를 넣어야 한다면, GRE 시험 준비를 먼저 하는 것도 좋다. GRE를 대비하며 영어 문해력과 작문력을 훈련했다면, TOEFL의 RC와 WR 파트는 전렵지 않게 느껴질 것이다.





지금까지 이 글에서 여러 가지 공부 모델을 제시했는데, 굳이 그중 하나를 채택할 필요는 없다. 사람마다 상황의 개인차가 워낙 크기 때문에, 구체적인 공부 계획은 본인이 직접 짜는 것이 가장 합리적이다. 이 글에서는 그저 GRE와 TOEFL이 어떤 시험인지에 대한 거시적인 이해를 얻었다는 것에 의의를 두고, 이에 기반해서 본인만의 공부 계획을 짜도록 하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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