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피해 주지 않는 한 내 맘대로 할게요"

손해 보기 싫은 마음과 피해 없음의 윤리

by 어른이 된 피터팬

손해 보지 않으려는 본능, 생존 전략이 되다


인간은 본능적으로 손실에 민감하다. 행동경제학자 다니엘 카너먼과 아모스 트버스키는 인간이 같은 크기의 이익보다 손실에 두 배 이상 민감하게 반응한다는 손실회피 이론을 발표했다. 얻는 기쁨보다 잃는 두려움에 더 강하게 반응하는 것은 인간 보편의 특성이지만, 오늘날 젊은 세대에게 이 본능은 단순한 성향을 넘어선 사회적 생존 전략으로 고착되었다.


끝없는 경쟁, 불확실한 보상, 노력과 결과가 일치하지 않는 환경 속에서 성장한 이들은 열심히 해도 정당한 보상을 받지 못할 수 있다는 사실을 일찍 체감했다. 이들에게 ‘손해 보지 않기’는 불안정한 구조 속에서 자신을 지키는 유일한 방법이며, ‘공정성’은 정의의 가치를 넘어 타인을 신뢰하기 위한 최소한의 안전장치가 되었다.


피해에 대한 좁은 정의와 관계의 최소주의


이런 맥락에서 조직 내에서 자주 들리는 말이 있다. “남에게 피해 안 주는 선에서 내 맘대로 할게요.” 이 말은 언뜻 타인을 존중하는 건강한 개인주의처럼 들린다. 하지만 사회생활을 하면서 이 말을 들어본 사람이라면 한 번쯤은 느꼈을 것이다. 여기서 말하는 ‘피해’는 지나치게 협소하거나 주관적으로 정의되어 있을 가능성이 높다는 것을.


피해는 물리적인 타격이나 가시적인 불이익에만 국한되지 않는다. 관계 속에서 발생하는 정서적 부담, 업무 리듬의 저해, 타인을 배려하기 위해 소모되는 다른 구성원의 보이지 않는 에너지의 손실 또한 엄연한 피해의 형태다. 이러한 미세한 층위를 간과한 채 “나는 내 몫을 다했으니 피해를 주지 않았다”라고 선언하는 태도는, 결과적으로 동료들을 조용히 지치게 만들고 공동체적 연결성을 약화시킨다.


조직 생활에서 "내 마음대로 하겠다"는 말은 정당성이 부족해 보이지만, "남에게 피해 주지 않는 선에서"라는 전제가 붙으면 제법 합리적으로 들린다. 이는 명확한 선악의 영역이라기보다 ‘내 몫의 책임은 다할 테니 나머지는 간섭하지 말라’는 관계의 최소주의를 전제로 한 태도에 가깝다. 표면적으로는 타인의 영역을 침범하지 않는 합리적이고 성숙한 태도처럼 보이지만, 그 이면에는 스스로 정한 최소한의 도덕적 선을 방패 삼아 타인의 요청이나 고통에 응답해야 할 정서적 의무로부터 자유로워지려는 도덕적 면책 심리가 숨어있다.


그 결과 우리는 서로를 직접적으로 해치지는 않지만, 연결되지 않은 배려와 냉정하게 구분된 존중은 공동체의 온도를 서서히 식게 만든다. 사람들은 각자가 세운 안전한 울타리 안에 머물며 비난받지 않을 자유를 누리지만, 아이러니하게도 그 안에서 느끼는 고립감과 심리적 거리감은 더욱 깊어질 뿐이다.


방어적 자율성: 손해 보지 않고 존중받고 싶은 마음


물론 이러한 관계의 최소주의는 앞에서 말했듯 옳고 그름의 문제가 아니기에 비난할 수는 없다. 복잡하고 피로도가 높은 현대 사회에서 일정 거리를 유지하는 것은 효율적인 자기 보호 기제이기 때문이다. 특히 집단주의가 강한 한국 사회에서 ‘경계 설정’은 나를 지키기 위한 필수적인 행동이기도 하다.


따라서 우리는 이러한 태도를 냉소나 무책임으로 비난하기보다, 그 저변에 깔린 ‘방어적 자율성’을 이해해야 한다. “피해만 안 주면 마음대로 하겠다”는 말은 역설적으로 '손해를 보면서까지 타인에게 휘둘리고 싶지 않고, 동시에 나 자신으로서 존중받고 싶다'는 간절한 방어의 언어다. 신뢰가 쉽게 무너지는 환경에서 타인에게 에너지를 쓰는 것은 손해 보는 것처럼 느껴지기 때문이다. 어찌 보면 이러한 관계의 최소주의는 타인을 거부하기 위해서라기보다, 더 이상 상처받거나 소모되고 싶지 않다는 조용한 절규에 가까운 것일 수도 있다.


필요한 건 신뢰 인프라


그렇다면 조직의 운영자들은 이러한 구성원들에게 어떤 관점으로 접근해야 할까? 앞서 말했듯이 관계의 최소주의는 선악의 문제가 아니기에 각 문화적 맥락에 따라 해석과 접근법이 달라질 수 있다. 가령 개인주의가 정착된 서구 사회에서 관계의 경계 설정은 문화적 문법이다. 그러나 이 글에서 말하는 관계의 최소주의는 단순한 문화적 성향을 넘어, 공동체에 기여/적극 참여했을 때 오히려 '호구'가 된다는 불신에서 기인한 방어적 태도에 가깝다.


따라서 지속 가능한 공동체를 지향한다면, 이들이 각자가 만든 방어벽 뒤로 숨어드는 현상을 그저 개인의 자유로 방치해서는 안 된다. "진심으로 대했다가는 나만 손해 본다"는 불신이 만연해질 때, 조직의 연결고리는 느슨해지고 위기 상황에서의 복원력은 급격히 약화되기 때문이다.


이러한 맥락에서 우리가 지향해야 할 과제는 '남에게 피해 주지 않는 한 마음대로 하겠다'는 이들에게 방어선을 억지로 허물라고 도덕적으로 훈계하는 것은 아닐 것이다. 대신 ‘개인이 손해 보지 않고도 함께할 수 있다’는 신뢰 인프라를 구축하는 일이 되어야 할 것이다. 즉, 개인이 타인을 신뢰하거나 공동체에 기여했을 때, 그것이 감정적·물리적 손실이 아닌 심리적 안전감과 실질적 가치로 돌아오는 경험이 선행되어야 한다. 그런 경험이 쌓일 때 비로소 사람들은 ‘피해 없음’이라는 방어적 윤리를 넘어, 기꺼이 서로에게 긍정적인 영향을 주고받는 ‘관계의 윤리’를 회복할 수 있을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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