경험을 지식으로, 사람을 콘텐츠로 만드는 HRDer
“한 사람은 한 권의 책과 같다.” 다양한 사람을 만날수록 이 말의 의미가 선명해진다. 같은 직장, 같은 나이, 같은 직무여도 각자는 다 다른 본인의 인생 서사를 써 내려가고 있음을 피상적이지 않은 대화 몇 번만으로도 알 수 있다. 따라서 우리가 한 조직에서 함께 일한다는 것은 단순히 업무를 수행하는 것을 넘어, 서로 다른 이야기를 가진 사람들과 매일 마주한다는 의미를 지닌다. 한 사람 한 사람이 자신만의 고유한 관점과 경험, 가치관을 담은 책이라면 일터는 꺼내 읽을 수 있는 이야기로 가득한 배움의 장소다.
[시스템과 암묵지: 경험을 조직 자산으로 전환하기]
심리학에서는 개인차(Individual Differences) 개념을 중요한 연구 주제로 다룬다. 사람마다 성격, 동기, 일의 의미를 부여하는 방식이 다르고, 일하는 방식 역시 다양하다. HRD 관점에서 이러한 다양성은 단순히 관리해야 할 변수가 아니라, 조직의 성장과 혁신을 위한 자산이다. 조직이 구성원의 차이를 이해하고 존중하며, 이를 기반으로 학습과 성장의 문화를 설계할 때 비로소 지속 가능한 경쟁력을 확보할 수 있기 때문이다.(한국은 미국에 비해 동질성이 강한 탓에 아직 기업 단위에서 DEI의 중요성이 크진 않은 듯하다)
조직이 규모를 키워갈수록 시스템과 프로세스에 의존하는 경향이 강화된다. 이는 한 사람이 나가도 금방 빈자리가 채워지고 잘 돌아간다는 효율성과 일관성을 보장하지만, 동시에 개별 구성원의 경험과 노하우가 조직의 자산으로 축적되지 못한 채 사라질 위험도 내포한다. 특히 우수한 성과를 내는 구성원이 암묵지를 공유하지 않고 조직을 이탈할 경우, 조직은 귀중한 지식과 문화를 상실하게 된다. 따라서 지속적으로 개인의 경험을 조직 차원의 지식으로 전환하고 시스템 안에 녹여 구성원 간 상향평준화를 도모하는 것은 HRD의 중요한 과제라 할 수 있다.
[한 권의 책을 함께 쓰는 경험: 노하우 공유 컨퍼런스]
이러한 문제의식에서 출발하여 기획된 것이 노하우 공유 컨퍼런스였다. 프로그램의 핵심은 우수한 퍼포먼스를 내는 우수 직원의 암묵지를 발굴하고 체계화해 동료들과 공유하는 것. 본인 직무에서 베테랑인 구성원과 여러 차례 심층 인터뷰를 통해 노하우를 정리하는 과정은 마치 한 권의 책을 공동 집필하는 작업과도 같았다.
그들의 경험에서 인사이트를 뽑아 와닿는 문장으로 번역하고 설득력 있게 강의안에 담아내는 과정은 그 자체로 의미 있는 협업이었다. 특히 인상 깊었던 점은 노하우를 전수하는 이들 역시 자신의 경험을 언어화하고 구조화하면서 자각하지 못했던 본인의 강점을 발견하고, 직무에 대한 자부심과 긍정적 자아정체감을 강화하는 모습을 보였다는 점이다.
해당 컨퍼런스의 참여자들도 평소 궁금했던 일 잘러의 일하는 방식을 배우며 현업 적용의 실천의지를 다졌고, 이와 동시에 멋진 동료와 함께 일한다는 사실 자체가 동기부여가 된다는 피드백을 주었다. 정보를 전수하고 전달받는 양측의 소속감과 동기부여가 촉진된 것을 확인할 수 있었다. 이처럼 베스트 프랙티스 공유는 단순 정보 전달을 넘어, 조직 내 긍정적 에너지를 확산하는 역할을 한다.
[다양성을 드러내는 질문의 힘]
컨퍼런스에서 진행한 “나에게 상품개발이란 00이다”라는 질문 이벤트는 간단해 보이지만 깊은 의미를 담았다. 이 질문에 답하기 위해 구성원은 자신의 일하는 방식을 성찰하고, 일의 의미를 재정립해야 했다. 65명의 응답 중 4명을 제외한 모든 답이 달랐다는 사실은, 같은 목표를 향해 비슷한 일을 하면서도 각기 다른 가치와 의미를 발견하고 있음을 보여준다. 이처럼 구성원마다의 다른 생각과 가치관을 이해하는 노력에서 조직과 구성원을 공통 서사로 묶을 수 있는 매듭을 찾을 수 있다. 그리고 조직의 구성원을 읽고 쓰고 이야기로 만드는 활동을 통해 각 에피소드들은 독립적이지만 공통된 주제나 배경을 공유하는 '우리 조직 문화'라는 실체가 만들어진다.
그래서 나는 조직문화를 다루는 사람으로서, 구성원의 이야기를 진심으로 궁금해하는 사람이고 싶다. 어떤 순간에 웃고, 어떤 장면에서 주저하고, 무엇에 재미와 의미를 발견하는지를 묻고 듣는 일을 계속하고 싶다. 그렇게 수집한 감정과 이야기들이야말로 조직의 진짜 모습이고 문화가 아닐까.
HRDer라는 직함도 좋지만, 매력적인 구성원들을 많이 만날수록 스스로를 ‘멋진 사람 콜렉터’, '콘텐츠 개발자'라고 생각하게 된다. 실로 HRD의 많은 업무들은 사람에 대한 궁금증에서 출발해 그들의 일하는 방식과 마음속 동기를 이해하고 그것을 언어화ㆍ콘텐츠화하는 일이기 때문이다(특히 직무교육이 그렇다). 회사 안의 멋진 사람들을 발견하고, 그들의 이야기를 세상에 꺼내고, 또 그것이 누군가에게 의미 있는 자극이 되도록 기획하는 일. 그래서 스스로를 콘텐츠 크리에이터 내지는 프로듀서라고 생각하며, 더 관찰하고 더 좋은 질문을 던질 궁리를 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