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runch

You can make anything
by writing

C.S.Lewis

by 구조집 Jan 12. 2022

내가 꿈꾸던 독립의 날은

(기대하지 않았던 소식과 함께 찾아왔다)

스무 살 이후로 혼자만의 공간을 갖게 된 것은 처음이었다. 대학생 때는 4년 내내 4인실 기숙사 생활을 했다. 대학교 졸업 이후에는 서울에 취업을 하여 주거비를 아끼기 위한 명목으로 친척 여동생 방에 얹혀살았다. 워낙 사람을 좋아하는 성격이라 누군가와 함께 산다는 것에 큰 어려움을 느끼지 않았지만, 각자 다른 개성을 가진 사람들에 따라 규칙을 지켜야 하고, 종종 눈치도 봐야 하고, 혼자 있고 싶었던 순간에도 혼자일 수 없었기에 답답하고 울적한 날들이 많았다. 전세로 집을 구할 수 있는 돈만 모으면, 언제든 나만의 공간을 찾아 미련 없이 떠나겠다고 다짐하곤 했다. 그토록 꿈꾸던 독립의 날은 간절히 바랬던 회사 공채에 합격한 뒤, 지방발령이라는 청천벽력 같은 소식과 함께 찾아온 것이다.






낯선 지역에서 마음에 드는 자취방을 구하기까지의 과정은 생각했던 것보다  까다롭고 지치는 일이었다. 집을 보러 다니기 전까지는 매일 인터넷에 검색해 자취방 구할  필수적으로 체크해야 한다는 수압, 곰팡이, 보안, 해가 들어오는 방향 등에 대해서 하나하나 노트에 적어놨다. 부동산 계약  주의할 점에 대해 유튜브로 공부하다가 중간에는 때려치우고 싶을 정도로 머리가 아프기도 했다. 부동산 용어도 공부하고, 창원의 원룸 시세도 알아보면서 만반의 준비가 되었다고 생각할 때쯤 집을 보러 다녔다.


초반엔 아무리 시간을 쏟고 열심히 돌아다녀도 모든 것이 마음에 쏙 드는 집을 발견하지 못했다. 하나가 마음에 들면 또 다른 하나가 마음에 안 드는 것의 연속이었다. 첫 번째로 방문했던 집은 꽤나 넓었지만 지어진 지 오래되어 싱크대와 화장실이 너무 낡아있었다. 두 번째 방문한 집은 최신 오피스텔이어서 구성된 모든 것들이 맘에 들었지만 월세가 너무 비쌌다. 세 번째 방문한 집은 적당한 가격에 적당한 인테리어였지만 창문을 열면 바로 주차장이 보여서 문을 열고 살 수 조차 없는 환경이었다. 네 번째 집은 창문에 뽁뽁이를 잔뜩 붙여 놓은 것으로 보아 찬기가 잔뜩 들어오는 듯 보였다. 다섯 번째 집은 겉으로만 봐도 무너질 것 같은 생김새에 들어가 보지도 않았다. 하루 종일 돌아다니다, 포기하고 싶은 마음이 들었을 때 부동산 어플에 미리 봐 두었던 오피스텔에 빈방이 하나 올라온 것을 보게 되었다.


이번이 진짜 마지막 집이라 생각하여 방을 보러 갔고, 들어가자마자 직감적으로 앞으로 내가 살 곳이라는 것을 느꼈다. 마지막으로 들렀던 오피스텔은 지방 생활의 외로움을 조금이나마 달래줄 수 있는 편의점, 백화점, 서점, 도서관 등 내가 좋아하는 시설을 충분히 걸어 다닐 수 있는 곳에 위치해 있었다. 벽면을 가득 채운 큰 창, 그 밖에 보이는 아름다운 산, 깔끔한 화이트 톤의 인테리어도 전부 마음에 들었다. 비록 내키지 않았던 지방발령으로 얻게 된 첫 독립공간이었지만, 그런 부정적인 감정들을 설렘으로 바꿀 수 있을 정도로 근사한 집이라고 생각했다.






그렇게 마련한 첫 자취방에서 독립생활을 시작해 현재까지 이어가고 있다. 독립생활에 대한 이야기를 조금 풀어놓자면, 주말 아침엔 평소보다 조금 일찍 일어나 창문을 열고 가만히 창밖을 바라보고 있으면 파란 하늘에 둥실둥실 떠다니는 구름으로부터 평온함을 얻는다. 누구의 간섭도 받지 않으며 속옷만 입은 자유인이 되어 공간을 활보하기도 한다. 이외에도 남몰래 꿈꾸던 미래의 모습을 큼지막하게 적어 벽에 붙여 놓고 가슴 뛰는 상상을 한다. 울적한 날엔 유튜브에서 슬픈 영상을 찾아보며 눈물, 콧물 가리지 않고 주룩주룩 흘린다. 먹고 싶은 음식만, 먹고 싶은 시간대에 즐긴다. 설거지를 하지 않아 그릇이 잔뜩 쌓이고 날파리가 돌아다녀도 잔소리를 듣지 않는다. 사랑하는 남자 친구도 부모님의 시선을 신경 쓰지 않고 언제든 초대한다. 나의 가장 즐거운 취미 활동인 다이어리 꾸미기를 방바닥 한가득 더럽혀 가며 몰두한다.


평일에는 신입으로써 매일같이 새로운 업무에 허덕이며 정신없는 직장생활을 하고, 주말에는 여전히 낯선 지방에서 외롭고 힘들 때가 많다. 그래도 이렇게 일상의 소소한 기쁨을 느끼게 해주는 나만의 공간이 있기에  지방 생활을 조금씩 적응해가고 있는 중이다.

매거진의 이전글 지방발령 신입 생존기의 시작
브런치는 최신 브라우저에 최적화 되어있습니다. IE chrome safari