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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안제나 May 31. 2022

# 9. 꽃으로도 때리지 마라

내 심장, 내 아들을 만나던 날.

우리가 어릴 적만 해도 학교에서의 체벌은 심심치 않게 볼 수 있는 일이었다. 지금 생각해 보면 참 대수롭지 않은 이유로 체벌이 이루어졌던 것 같다.

나는 교육에 있어 적당한 체벌은 필요하다고 생각하는 옛날 사람이지만 내 학창 시절의 체벌은 조금 과했었다고 본다.


이를테면, 시험이 끝나고 첫 수업 때 시험지를 가지고 오지 않으면 선생님께 맞아야 했다.

미술시간에 그림 숙제를 해갔는데 그림 솜씨가 없어 잘 못 그려가면 손바닥을 맞기도 했다.

자습시간에 떠들면 이건 당연히 맞아야 하는 일이었다.


그렇게 빈번히 맞을 기회가 있었음에도 불구하고

나는 학교에서 체벌을 당한 기억이 거의 없다.

집에서도 마찬가지였다.

고집이 세고 성격이 있었던 나의 오빠는 종종 아버지께 종아리를 맞거나 아버지께 대들어 뺨을 맞은 일도 있었다.

그런데 나는 아버지께 맞은 기억이 딱 한 번,

오빠와 다퉈 종아리를 한대 맞은 기억뿐이다.

내가 예뻐서, 아버지가 나를 더 사랑해서 때리지 않으셨을까?


아니다.

나는 맞을 짓을 잘 안 한다.

하지 말라는 짓을 안 하니 학교에서든 집에서든

맞을 일이 없는 것이다.

그랬던 내가 결혼 후, 부부 싸움이 일어나면 무조건 맞기 시작했다. 맞고 사는 여자가 됐다.


뭐든 처음이 어렵다고 했던가.

처음 임신 8개월에 맞기 시작해서 나는 부부 싸움이 생길 때마다 맞곤 했다.

처음엔 손으로, 그다음엔 아기 띠로, 나중엔 나에게 밥그릇을 던지기도 했다.


우리 부부 싸움의 원인은 늘 나를 향한 시어머니의 공격에서 시작됐다.

쟤는 딸을 진심으로 사랑하지 않는다.

쟤는 새엄마 티를 낸다.

쟤는 인성교육을 못 받고 시집왔다.

쟤는 일주일이 넘게 시집에 전화를 안 하고 오지도 않는다.

등등

시부모님의 나를 향한 질책은 끝이 없었다.


대개 우리들의 싸움은 계속되는 시어머니의 무리한 명령으로 나의 인내심이 한계를 느껴 폭발하게 되는 순간 더 이상 내 화를 참지 못하고 그 화를 남편에게 쏟아부을 때 시작된다.

싸움이 시작되면 폭력은 반드시 따라오게 되어있다.

내가 때리든, 그가 때리든.


어찌어찌 시간이 흘러 산달이 되었고, 나는 나름 태교를 하겠다며 틈이 나는 대로 아이가 가지고 놀 인형도 만들고 배냇저고리를 만들기도 했다.

하지만 이런 게 다 무슨 소용일까.

가장 좋은 태교는 뱃속의 아이가 아빠 엄마의 사랑을 듬뿍 담은 부모의 관심과 사랑 속에 자라는 것일 거다. 그리고 산모가 스트레스 받지 않고 마음 편히 지내는 것이 가장 좋은 태교라고 나는 그렇게 생각한다.


하지만 나는 그러지 못했다.

시어머니는 뱃속의 아이보다 본인의 손녀딸을 더 챙기길 바랐다.

나나 뱃속의 내 아이에 대한 배려는 조금도 없이

오직 손녀딸의 새엄마 노릇에만 충실하길 바라셨다.

언젠가 그런 말씀도 하셨지.


너는 죄인이다.

그러니 아이들한테 희생하며 살아라.


내가 무슨 죄를 지었길래 죄인이라는 걸까?

당신이 하느님인가 부처님인가.

내가 왜 신도 아닌 인간에게 죄인이란 소리를 들어야 하는 걸까.

시어머니는 자신의 아들이 손녀딸에게 집중하길 바랐기 때문에 부부만의 생활 따위는 당연히 없었다.

이 가정은 모든 일들이 부부 중심이 아닌 시부모의 하나밖에 없는 귀한 손녀딸을 중심으로 돌아간다.


우리의 재정상태는 상관없이 어머니께서 딸아이 학원을 여러 군데 등록하신다.

그리고 학원비는 우리가 내야 한다.

이걸 왜 이제서야 알았을까.


매일 해야 하는 안부전화도,

일주일에 두세 번은 해야 하는 시댁 방문도,

자기 부모 말에 꼼짝도 못 하고 무조건 순종하는 남편도,

갑자기 모든 것에 짜증이 나고 염증이 느껴졌다.


나는 남편에게 물었다.

도대체 언제까지 어머니 시키는 대로 어머니 말씀대로 아바타처럼 그렇게 살아야 ?


그럼 남편은 말한다.

너는 왜 이렇게 인내심이 없어?

어차피 엄마 죽으면 그 돈 다 네 거 될 텐데.


내가 악에 받쳐 대답한다.

이렇게 살다간 어머니보다 내가 먼저 죽을 것 같아.


우리 부부의 대화는 늘 이런 식이었다.


퇴근하면 집으로 곧장 오지 않는 남편을

처음에는 무던히도 기다렸던 것 같다.

이제야 오나 저제야 오나.

전화도 해보고 문자도 해보지만, 연락은 되지 않고

남편의 계속되는 거짓말에 진절머리가 난다.

한두 달이 지나고 나는 남편에게 연락하지 않았다.

어차피 받지 않을 연락을 구태여 힘들여 할 이유가 없다.

왜 늦게 왔는지도 묻지 않는다.

어차피 물어봐야 진실을 말하지도 않을 텐데

내가 굳이 뭐 하러 쓸데없는 곳에 불필요한 감정 소모를 해야 하는가.


남편이 밤늦도록 본인 어머니와 딸이 살고 있는 집에서 돌아오지 않을 때면 나는 부른 배를 끌어안고 집 앞 놀이터에 나와 그네를 탄다.

그러면 속절없이 눈물이 난다.

나는 이 동네에 아는 사람도 하나 없이 오직 남편만 보고 시집을 왔는데 그 남편이란 사람은 자기 집에서 밤이 늦도록 돌아올 생각을 하지 않는다.


참 외로운 시절이었다.

내가 기댈 수 있는 곳은 남편이 아닌

내 뱃속에서 꿈틀대며

"엄마 나 여기 있어요."

신호를 보내오는 내 아들뿐이었다.


우리 집안에서 아들은 나 하나뿐이야.

니가 만약 내 아들을 낳는다면 넌 로또 된 걸로 알아.

아들 낳으면 ooo 수입차도 사줄게.


이 약속도 물론 거짓말이었다.

떡두꺼비 같은 아들을 낳았지만 나는 수입차는커녕

자전거도 한 대 받지 못했다.

난 로또도 수입차도 필요하지 않다.

지금 내게 필요한 건 나를 사랑해 주고,

내 옆에서 내 편이 되어주며  나를 보듬어줄 남편이다.

이 단순한 사실을 남편만 모른다.


한번은 이런일도 있었다.

임신 9개월차에 들어섰을 때, 이유없이 몸에 계속 열이났다.

산부인과에서는 어떤 검사를 해도 열이나는 이유를 찾아내지 못했다.

다만, 어떤 질병없이 몸에 염증반응이 계속되어 열이나고 있는데 이것은 스트레스로 인한 것일 수 있다는 답변만 들었다.


내 몸에 열이나는 건 참을 수 있다. 상관없었다.

다만 열이나고 있는 내 몸에서 아이가 더이상 살 수 없기 때문에 당장 수술을 해서 아기를 꺼내야 한다고 말했다.


나는 악을 쓰고 울며 의사선생님께 소리쳤다.

나는 어떻게 돼도 상관없으니 제 아들만 살려주세요 제발요.


누워 검사를 받으면서 끊임없이 소리쳤다.

나는 정말이지 제정신이 아니었다.

옆에 검사때문에 누워있는 다른 산모들이 나를 힐끗거리며 쳐다본다.


괜찮아요 산모님, 이런 경우를 위해서 저희 의료진이 있는 겁니다.

제가 산모님도 태아도 건강하게 지켜드릴께요.


제왕절개수술을 위한 동의서를 작성하고 항생제반응검사 등의 절차가 이루어졌다.

그런데 그때 거짓말처럼 열이 내리고 태아의 상태도 정상으로 돌아오기 시작했다.


병원에서는 지금 당장 수술을 할 필요는 없지만

입원을 해서 몇일 안정을 취하는 것이 좋겠다는

소견을 전해왔다.


그렇게 입원실에 누워있는데, 시어머니만 빼꼼 찾아와 나를 보고 말한다.


그렇게 스트레스에 약해서 어떻게 하니.

너 아이낳을때까지 어디 산속에 들어가 있어라.

그리고 네 시아버지한테는 이번 일은 말하지 말도록 하자.


갑자기 이런 생활이 지겨워진다.

나는 시어머니에게 매일 전화하고 싶지 않다.

시댁에 이틀 걸러 한번 가는 짓도 그만두고 싶다.

아이 픽업도 하고 싶지 않다.

내 몸이 무겁고 허리가 끊어질 것 같고 밑이 빠질 것 같은데 다른 사람들은 눈에 들어오지 않는다.

오직 내 뱃속 아들만이 내가 지켜야 할 존재이다.


결혼한 친구들에게 넌지시 물었다.

넌 일주일에 몇 번이나 시댁에 전화드리니?

대답은 가지각색이었지만 나처럼 매일같이 전화하고 이틀 걸러 한 번씩 시댁에 가는 친구는 없었다.

물론 나는 다른 친구들과 다르게 남편의 아이가 시댁에 있다.

그러니 그들과 같을 수는 없는 노릇이다.

같길 바라는 건 내 욕심이겠지.


갑자기 소심한 반항이 하고 싶어졌다.

아니, 반항이 아니라 그냥 내가 좀 살고 싶었다.

예정일이 보름 정도 남았는데 변함없이 시댁을 가고

연락을 드려야 하는 이 상황에 나는 숨통이 턱턱 막히는 듯했다.


난 과감히 2주간 시댁에 연락을 하지도

배가 뭉친다는 핑계로 방문도 하지 않았으며

예정일까지 아이 픽업도 시어머니께 부탁드렸다.

그런데 이건 내가 새엄마라서가 아니라 친엄마였어도 마찬가지였다.

첫째가 초등학생이고 둘째 예정일이 보름 남은 상황이라면 나는 그때도 이렇게 처신했을 거다.

2주간 시어머니에게 전화하지 않고

배 뭉침을 핑계로 시댁에 들르지 않은 것이 화근이 되었다.


예정일이 하루 지난 어느 날,

멀리 지방에서 출산을 앞둔 나에게 밥을 사주겠다며

친한 친구가 찾아와 이야기꽃을 막 피우려는 찰나,

시아버지 전화가 온다.

왜 시어머니한테 연락도 하지 않고 시댁에 가지도 않냐며 대뜸 화를 내셨다.

그렇게 시작된 시아버지의 도 넘은 꾸지람은 3시간이 넘도록 계속되었다.

친구가 와있어서 다시 전화를 드리겠다고 여러 차례 얘기했지만 아침부터 밥 한술 먹지 못하고 친구랑 얘기 중이라고 여러 번 사정했지만 시아버지는 일방통행이었다.


요지는 지금 당장 친구를 보내고 시어머니를 찾아가

잘못했다고 용서를 빌라는 내용이었다.


함께 있던 친구를 볼 낯짝도 없다.

친구는 3시간이 넘게 나를 잡는 시아버지를 보며

내 등을 쓸고 위로한 뒤 두 시간이 넘게 걸려 우리 집에 왔음에도 차 한 잔 마시지 못하고 돌아갔다.

너무 미안해 남편 몰래 부모님이 주신 쌈짓돈을 쥐어 보낸다.


벌벌 떨리는 손으로 시어머니에게 전화를 거니

아이를 데리고 놀러와 있으니 한 시간 뒤에 집으로 오란다. 냉장고를 뒤적여 내가 해놓은 콩자반을 통에 담아 터덜터덜 시어머니의 집으로 향했다.

벨을 눌러도 시어머니는 반응이 없다.

전화를 해도 받지 않았다.

하는 수없이 집 앞 벤치에 앉아 하염없이 시어머니가 오길 기다려본다.

4월의 밤공기는 만삭 임산부가 견디기엔 무척이나 찼다.

오들거리며 입술이 파래지기 시작할 무렵 시어머니와 딸아이가 나타났다.

시어머니는 내게 눈길도 주지 않고

내가 가져온 콩자반은 쳐다보지도 않는다.

갑자기 콩자반이 불쌍해졌다.


시어머니가 도착한 시간은 오후 5시를 넘긴 시간.

그때부터 시작된 나를 향한 훈육은 오후 10시가 넘어가도록 계속되었다.

배가 조금씩 계속해서 아파졌지만 한번 터진 시어머니의 분노는 멈출 생각이 없는 듯 보였다.


인성교육도 못 받은 게 시집왔다.

네 엄마가 죽은 한을 왜 여기 와서 푸니.

너 내 아들이 너 속이고 결혼했다고 애를 몰아붙이나 본데 너는 정신병 있는 거 숨기고 시집왔잖아.

(참고로 나는 정신질환을 진단받은 적이 결코 없다.

남편이랑 다투거나 남편에게 화를 내는 걸 본인 아들에게 들었는지 나에게 '분노조절장애'라는 진단을 시어머니 스스로 내게 내렸다.)

엄마 자격도 없는 게 몸뚱이 함부로 굴려 엄마가 되네.


지금 생각나는 건 이 정도의 폭언이었다.

나는 그냥 계속 아픈 배를 틀어쥐고 엉엉 울며


죄송합니다 어머니.

잘못했습니다 어머니.

다시는 그러지 않을게요 어머니.

(뭘 다시는 안 그러겠다는 건지 나도 모르겠다.)

만 연발해댔다.

그저 빨리 이 상황이 종료되길 바라며.


여덟 살 먹은 딸아이가 보기에도 궁지에 몰린 새엄마가 안되어 보였는지 아빠에게 몰래 전화를 건다.

새엄마가 할머니한테 된통 야단맞고 있다고 알린 것 같다. 사태를 알게 된 남편이 시어머니에게 전화를 걸었다. 시어머니는 내 앞에서 스피커폰으로 전화를 받는다.


왜?

엄마 그만해, 나중에 해.

(엄청나게 소리 지르며)

내가 얘한테 할 말이 있다. 그러니 끊어.


배가 너무 아픈데, 말할 수가 없다.

배가 아프다고 해도 이 도 넘은 꾸중은 끝나지 않을 것 같다.

딸아이가 도저히 못 견디겠는지 방문 밖으로 나와

'할머니 미워'를 외치고 나서야 장장 6시간에 걸친 만삭 며느리에 대한 분노의 꾸지람은 막을 내리는 듯했다.

그제서야 시어머니는 화가 가라앉았는지 현관문을 나서는 내 배를 쓸어내리며


이제 네 엄마 다 혼냈으니 나와도 된다.


급하게 집에서 나오는 바람에 슬리퍼 차림이었다.

슬리퍼를 질질 끌며 시어머니 집에서 채 10분이

걸리지 않는 나의 신혼집으로 후들거리는 다리를

붙잡고 걸어본다.


마침 예정일이 하루 지난 딸이 걱정이 되었는지

친정엄마에게 전화가 온다.


딸 저녁은 먹었니?

남편은 들어왔니?

배는 아프지 않아?


안부를 묻는 엄마 목소리를 들으니 목구멍부터 뜨거운 눈물이 차오른다.

진짜 더럽게 서럽다.


엄마, 괜찮아요.

밤공기가 좋아서 산책하러 나왔어요.

난 잘 지내고 있으니 제 걱정 마시고

아버지하고 재밌게 지내세요.


전화를 끊고 나니 참았던 눈물이 폭포수처럼 쏟아져 내린다. 숨이 쉬어지지 않을 정도로 한참을 목놓아 울었다. 지나가는 사람들이 나를 곁눈질해보며 수군댄다. 나는 주변의 시선은 아랑곳없이 계속해서 참을수 없는 서러움을 토해냈다.


4월의 밤은 참 아름다웠다.

아파트 단지에는 하얗고 소박한 벚꽃이

가로등 불빛을 받아 반짝거리며 봄을 알리고

탐스러운 목련이 내 마음도 모른 채 흐드러지게 피어있다.

아름다운 꽃밤을 걸으며, 나는 하염없이 울었다.


내가 자기 부모에게 오전 11시부터 해가지고 밤이 올 때까지 하루 종일 시달렸던 걸 아는 남편은,

쉼 없이 문지방이 닳도록 드나들었던 자기 어머니 집에 찾아와 어머니의 폭언으로부터 나를 구해내야 했던 것이 아닐까.


자정이 다 되도록 나는 아파트 단지를 배회하다

시린 봄바람에 감기라도 들까 떼지지 않는 발걸음을 옮겨 현관을 열었다.

남편은 누워서 UFC를 보고 있다.


아무 말도 하고 싶지 않다.

현실이 지옥이었다.

조용히 침대에 누워 하루 종일 서러웠던 마음을 끌어안는다.


새벽 세시,

더 이상 참을 수 없이 배가 아프다.

출근해야 하는 남편이 짜증 낼까 조용히 거실로 나와 소파에서 뒹굴뒹굴해봐도 배가 너무 아프다.

진통 앱을 보니 아직 진통은 규칙적이지 않았다.

산부인과에 전화를 걸어 상황을 설명하니 일단 와보라고 한다.

평소 아픈 것을 잘 참는지라 그러고도 1시간을 더 참는데

헐.

하혈이 시작됐다.

배가 아파 떼굴떼굴 구르니 그제서야 침실에서 남편이 나온다.

남편의 도움을 받아 병원으로 향하는데,

내가 전날 시부모의 매 타작으로 하루 종일 아무것도 먹지 못한 게 떠오른다.

힘을 내야 하는데.


병원에 도착하니 바로 내진을 하고 간호사가 말한다.


아까 전화 주셨을 때부터 아팠던 게 아니죠?

산모님, 이미 자궁이 다 열렸어요.

너무 늦게 오셔서 무통주사 못 맞으실 거고 제모나 관장도 하실 수 없습니다.

그냥 출산하셔야 해요.


병원에 도착하고 3시간이 지난 오전 7시 즈음.

사지가 찢어질 것 같은 고통이 막바지에 이르자

그렇게 기다렸던, 너무나 보고 싶었던 유일한 나의 편, 내 아들의 힘찬 울음소리가 들린다.


나는 그렇게 내 심장, 내 아들을 만났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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