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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마흔살 어른이 Aug 15. 2020

10화. 한일 다문화 가정의 광복절

일본인 아내와 사는 한국 남자의 진솔한 이야기

"축구 한일전은 누구 응원해?"

"난 당연히 한국팀 응원하고, 와이프는 일본팀 응원하지~"


한일전 응원은 참 쉽다. 한일전이 아니면 아내와 함께 한국팀과 일본팀을 번갈아 응원한다. 응원의 즐거움을 아는 사람이라면 알 테다. 스포츠 게임에서 누군가와 함께 응원을 할 팀이 하나 더 생겼다는 건 즐거운 일이기 때문이다. 하지만 8.15 광복절은 좀 다르다. '함께'하기가 참 어려운 날이다.


7~8년 전, 캐나다에서 우리 부부와 친하게 지내던 한 일본인 친구가 한국에 왔다. 친구는 내일 출근해야 하지 않냐며 친절하게 나를 걱정해 줬고  난 "내일은 광복절이라 쉬는 날이야~ 괜찮아~"라 했다. 그리고 왠지 모를 불편함이 살짝 밀려왔다.

그 친구도 내가 불편해하는 걸 느꼈는지 일본의 8월 15일에 대해 얘기해줬다. 일본은 8월 15일 이 추석(오봉)이지만 그래도 역사적인 의미를 잘 알고 있다고 한다. 우익세력의 경우 다소 과격한 시위를 벌일 때도 있다고 한다. "아.. 8월 15일은 우린 기쁜 날이지만 일본은 슬픈 날이구나.."라며 광복절 주제의 대화를 흐지부지 끝내고 다른 주제로 넘어갔던 기억이 난다.


한국인이 왜 광복절 얘기를 하고 불편함을 느끼냐며 비난할지도 모른다. (사실 브런치 연재 글을 보고 비아냥 거리는 사람도 있으니..) 하지만, 한국과 일본 다문화가정의 광복절은 어쩔 수 없는 불편함이 있다. 수십 년 동안 한국과 일본의 정상도 풀지 못한 이 관계를 결혼한 우리가 지혜롭게 풀 수 있을 거란  기대하는 것도 무리다.


특히 요즘같이 한일 관계가 좋지 않으면 더욱 불편하다. 7월 말즈 음부터 TV를 켜면 독립운동과 해방의 역사를 주제로 하는 프로그램들이 많다. 한일 관계가 안 좋으면 안 좋을수록 수위가 높아져 같이 직설적으로 '일본이 나쁘다'라고 설명하는 TV를 함께 보는 건 여간 불편한 게 아니다.


다른 한국과 일본 다문화가정은 아이가 유치원생인데 작년부터 가급적 밖에서는 일본어를 쓰지 말라고 당부했다고 한다. 하지만 아무것도 모르는 천진난만한 아이는 오랜만에 만난 친구를 보고 "가와이(귀여워)~"라며 머리를 쓰다듬었고 아이 엄마는 황급히 아이의 입을 막았다고 한다.


내 자식을 내가 혼내는 건 괜찮지만, 다른 사람이 혼내면 기분이 나쁘다. 요즘 헬조선이라며 한국을 비난하는 젊은이들이 많지만 그것도 나라에 애정이 있기 때문이라 생각한다. 내 아내도 마찬가지 아닐까? 아무리 역사에 대해는 관심이 없다고 하지만 연일  TV에서 '일본이 나쁘다'라고 하고 영화채널에는 독립군 영화가 나와 사악한 일본인의 모습만 보여주는데 기분이 좋을 리 없다.


하지만 더 걱정인 건 올해 6살인 우리 딸이 자랐을 때 어떻게 생각할지다. 몇 년 전 가족끼리 박물관을 간 적이 있다. 그때 독립운동과 관련된 유물이 있었는데 박물관 학예사가 유물을 설명하며 또 일본에 대한 안 좋은 얘기를 했다. 그러면서 자랑스럽게 "난 일본인이 있어도 나쁘다고 얘기해요!"라고 했다. 물론 그 사람을 탓하지는 않는다. 자기의 소신을 말하는 것이고 그런 정신이 있었기에 우리가 광복을 하고 지금 이만큼 성장을 했으니 말이다. 다행히 아내는 멀찌감치 있어 그 말을 못 들었고 우리 딸은 말을 못 알아듣는 나이라 기억도 나지 않을 테다.


광복절, 참 기쁘고 자랑스러운 날이다. 하지만 한국에 살고 있는 한국과 일본 다문화가정 누구의 잘못도 아니다. 하지만 불편한 건 어쩔 수 없는 거다.


대한독립만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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