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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안나 Aug 06. 2024

개망초 기억

살아가는 이야기

버스를 타고 졸린 눈으로 창밖을 바라보고 있었다.

안내 방송이 흘러나왔다.

"다음 정거장은 ○○고등학교입니다. 내리실 분은 잊으신 물건이 없는지 확인해 주시기 바랍니다”

학생들이 우르르 일어서 내릴 준비를 했다.

보기만 해도 눈이 부시는, 반짝거리는 학생들을 보며 부럽다는 생각을 했다. 학생들을 보다가 문득 나는 버스에서 내리기로 했다. 목적지까지는 조금 남아 있었지만 걸어서 가기로 했다.


피곤하다는 생각이 늘 떠나지 않던 그즈음,

나는 그저 버스에 앉아 흔들거리며 잠깐씩 졸다가 목적지에 도착하면 졸린 눈을 비비며 버스에서  내려서는 일터로 향했다. 그렇게 하루를 시작하여 어느덧 하루 해가 지면 피곤한 몸을 끌고 집으로 돌아와 아무런 생각도 없이 그냥 곯아떨어졌다.

그런 생활이 계속되던 6월 어느 날,

햇볕 좋은 그날에는, 학생들에게 자극을 받았는지  햇볕을 받으며 걷고 싶다는 생각이 들었다.


생기발랄하게 버스에서 뛰어내리는 학생들.

남학생들의 풋풋한 스포츠머리며 바람에 날리는 여학생들의 생머리가 신선하게 눈에 들어왔다.

시험을 앞두고 있는지 손에 책을 들고 있는 학생들도 있었다.

나도 예전엔 저렇게 책을 들고 다니며 공부를 한 적이 있었는데...

지난 시절이 그리워졌다. 학생들이 교문으로 들어서는 것을 보며 나는 천천히 걸었다.

아침 7시 반이 조금 지난 시간이었을까, 시원하고 상쾌한 바람이 기분 좋게 목덜미를 스치며 지나갔다. 길 옆에는 제멋대로 쑥쑥 키가 자란 개망초가 아침 햇살에 기지개를 켜고 있었다.

개망초. 예전엔 이름도 모르고 지나쳤던 풀꽃이다.

문득 잊혔던 유년의 기억이 떠올랐다.


햇볕이 뜨거운 날이었다.

하늘은 그림처럼 파랗고 어쩌다 걸려있는 뭉개 구름은 움직일 줄을 모르고 제 자리를 지키고 있었다.


어느 집 밭인지도 모르는 밭을 지나고 다시 논두렁 길을 지나서, 그날 나는 처음으로 친구들을

따라갔다. 목적은 산딸기를 따는 것이었다.

익숙하게 산딸기를 따서 소쿠리에 넣는 친구들과 달리 나는 왜 그리도 서툴렀는지....

친구들의 소쿠리와 달리 나의 소쿠리는 볼품이 없었다. 게다가 날씨는 얼마나 더운지.

이제 그만 돌아가고 싶었다. 그러나, 친구들은 이제부터 시작이라는 듯 서둘러 이동을 했다.

나는 돌아가고 싶은 마음에 내키지 않은 걸음으로 부지런히 쫓아가다 그만 돌부리에 걸려 넘어지고 말았다. 피어오르는 흙먼지와 무릎에서 뚝뚝 떨어지는 검붉은 피를 보며 그만 울음이 터졌다.

얼굴과 옷은 흙먼지로 엉망이 되었고, 무릎에서는 피가 떨어지고, 넘어지면서 그나마  몇 알 있었던 산딸기는 다 떨어져 나가  먼지만 가득했던 소쿠리.


절뚝거리며 혼자서 돌아오던 길.

길 옆에 개망초가 무성하게 피어 있었다.

여름 한낮의 쨍쨍한 햇볕에 사람의 그림자는 보이지 않고 가끔씩 들려오던 꿩 울음소리가 아득했던 기억.

그 여름을 생각할 때면  외로움이 밀려온다.


이제는 유년의 추억으로 떠오르는 개망초를 바라보며 사랑스럽다는 생각이 든다. 그리움은 따뜻함으로 채색이 되어 가고 있다. 그 시절 밖에 나가 노는데 서툴렀던 그 아이, 넘어져 울던 그 여자아이의 머리를 쓰다듬듯이  가만히 개망초를 쓰다듬는다.


신록이 푸르러지고 있었다.

시간의 노예가 되어 끌려 다니고 있는 자신의 모습이 보이며 부끄럽다는 생각을 했다.

시간을 조절하며 지혜롭게 살아야 하는데 끌려 다니고 있으니 한심하다. 정신을 차리고 내가 주체가 되어 시간을 조절하며 살고 싶다.


모든 것은 마음가짐에 따라 달라진다. 오늘 하루 건강하게 움직일 수 있음에 감사하고 일할 수 있음에 감사하고 나의 두 눈으로 이렇게 아름다운 자연의 모습을 볼 수 있음에 감사하며 하루하루를 열심히 살아야겠다고 생각을 하며 나의 아침 사색은 끝났다. 목적지에 도착했기 때문이다.

사색에서 돌아와 나는 일터로 향했다.



<6월이 오는 서울 개포동에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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