걔네도 나도 방학인 7월 말부터 한 달 남짓의 시간 동안 우리는 떨어질 새 없이 붙어있다. 결론부터 이야기하자면 사랑은 적당한 그리움이 동반되어야 한다는 게 나의 의견이다. 물론 다행인 지 도리어 귀찮은 건지 매번 헷갈리긴 하지만 격일로 방과 후 수업이 50분씩 있긴 하다. 그마저 방학을 맞이한 이 집의 셋 중 한 명만 가기 때문에, 그리고 데려주고 데리러 가고 등교준비하고의 수고가 과연 50분이란 시간과 수지가 맞나 그냥 결석시킬까를 늘 고민하기 때문에 확실히 다행인 쪽 보단 귀찮은 쪽 같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그 50분의 수업의 좋은 것 딱 하나를 말해보자면 돌아서면 지나있는 순삭의 50분을 보내고 그 아이를 데리러 갈 때면 설렌다는 거다. 아직도 뭔가 실감 나지 않는 초등학생이 되어버린 나의 친구. 혼자서 수업을 마치고 실내화를 갈아 신고 통통한 볼이 벌게져서는 운동장을 가로질러 걸어오다가 멀리 있는 나와 눈이 마주치면 분명 방금까지 약간은 눈썹이 붙어서는 ‘왜 이리 더워..’하는 표정 같았는데 벌건 볼을 한껏 올려 말간 웃음을 지어주며 걸음의 속도를 높이는 나의 친구.
‘진짜 너를 어떻게 안 사랑하니.’하는 마음을 다시금 먹게 하는 순간이다. 종종종 나도 속도를 높여 그 아이에게 다가간다. 분명 아침에 늦었다며 재촉하고 따따따 거리던 뾰족한 나는 스르르 녹아버리고 친구의 작고 통통한 손을 잡고 허리를 숙여 그 아이를 바라보곤 낮은 목소리로 꼭 말하게 된다. ‘보고 싶었어.. 진짜.’ 그러면 그 친구는 꼭 말해준다. ‘나두요.’ 벌겋고 벌건 날들이 이어지는 진짜 이제 그만! 하고 싶던 벌건 8월 초의 날이 그 순간엔 잠깐 그저 푸른 초록이 된다. 이젠 좀 얘네랑 떨어져서 자유를 즐기고 싶단 시뻘건 불평이 꽤 많은 지분을 차지하던 방학의 날들이 그 찰나만큼은 ‘아 행복해’의 푸른 마음이 된다.
그거 봐라. 사랑엔 그리움이 동반되어야 한다니까.
저녁이 되면 의무감으로 전화를 하고 관심도 없는 서로의 일과를 묻고는 하지 가끔씩은 사랑한단 말로서로에게 위로하겠지만 그런 것도 예전에 가졌던 두근거림은 아니야
- [아주 오래된 연인들] 중에서
오래되어 낡아버린 감정이라도 가끔씩은 사랑한다고 할 수 있다. 하지만 보고 싶어는 그렇지 않다. 보고싶어에는 그리움과 사랑이 함께 들어있다. 그래서 더 달달하고 더 깊다.
사랑한다고는 장난스럽게, 다소 비어버린 마음으로도 혹은 습관처럼 던질 수 있지만 보고싶어는 아니다. 내가 가진 보고싶어의 무게감은 그렇다.
내일은 화요일,
50분의 그 애매한 방과 후 수업마저 없는 날이다. 참으로 간사한 나는 다행인지 도리어 귀찮은 건지 매번 헷갈리던 마음이, 심지어 도리어 귀찮다고 결론 내리던 그 시간이, 아무래도 반드시 필요한 것 같기도 하다. 역시 자고로 사랑엔 그리움이 동반되어야 하니까 말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