성모님 방문 기념 성당
고민이 있거나 어찌할 바 모르는 일이 생겼을 때, 그걸 혼자 속으로 삭히며 해결할 수 있다면, 그런 사람이야말로 이 시대 진정한 성인이지 않을까 싶다. 스트레스 받는 일이 생겼을 때, 이런저런 얘기로 속을 풀고, 까르르 웃으며, 커피 한 잔과 달콤한 케이크를 먹으며 공감하는 시간을 만드는 건, 케이크가 달콤해서라기보다, 그 시간이 만들어내는 달콤함 덕에 스트레스를 이겨낼 수 있다는 걸 종종 느낀다.
2천 년 전 한 여인,
모든 걸 곰곰이 생각하는 게 익숙했던 한 여인, 마리아도 자신에게 닥친 상황을 누군가와 나누고 싶어 사촌언니 엘리사벳을 찾아간다.
자신이 살던 나자렛이란 마을에서, 엘리사벳 성녀께서 살았던 예루살렘 근처 에인케렘까지는 무려 100km 정도 떨어진 곳인데, <마리아의 비밀>이란 책을 보면 성모님은 다행히도 그 긴긴 길을 전부 걷진 않으셨다고 한다. 아버지 요아킴이 마련해준 나귀도 탔다가, 걸었다가 하셨다는데, 그래도, 임산부가 그 먼 길을 간다는 건 체력적으로 힘들었을 것이다.
우리 순례단도 조금이나마 성모님의 마음을 느껴보려고, 세례자 요한 탄생 기념 성당에서, 성모 방문 성당까지 걸어갔다. 그런데, 충분히 느끼기엔 좀 짧은 거리였다. 걸어서 단 10분!
걷는 길에 이렇게 예쁜 구름이 함께 해주고 있었다. 그런데, 성당으로 올라가는 입구에 경사가 꽤 높아서, 살짝 운동하는 느낌도 들었다.
언덕을 오르니 등장한 성모님 방문 기념 성당 Church of the Visitation
성당 입구에 성모님과 엘리사벳 성녀가 만나는 성상이 자리하고 있었다. 이 모습은 왜이리 유쾌해 보일까!!
엘리사벳은 나이가 너무 많아서, 아이를 낳을 수 없는 나이인데도 임신을 한 몸이었고, 성모님은 15살 어린 나이에 남자를 알지 못했지만 성령으로 잉태를 하신 몸이었다. 우여곡절의 두 여인이 만났는데, 겉으로는 둘이지만, 알고 보면 뱃속에 계신 예수님과 세례자 요한까지 네 분의 만남!
엘리사벳 성녀가 먼저 임신을 하셨으니, 배가 좀 더 나온 쪽이 엘리사벳 성녀라고 한다.
당시 마리아는 처한 상황이 굉장히 어려웠을 것이다. 그 시절에는, 결혼 전 여자가 임신을 하는 건 돌에 맞아 목숨을 잃게 될 정도의 큰 죄였는데, 아무리 신심이 깊더라도 임신을 한 자신의 상황을 어떻게 받아들일 수 있었을까, 그때 내 마음 알아주는 단 한 명만 있다면, 그 사람 만나기 위해 이억 만 리라도 가고 싶어졌던 건 당연할 것이다.
우리도 살면서, 나의 속상함, 억울함을 들어주고 공감해주는 단 한 사람만 있어도 기분이 풀리는 경우가 굉장히 많다. 하지만, 내 마음도 모르고 엉뚱한 소리를 하는 사람은 쳐다보고 싶지도 않기에, 혹시 나는, 아무 생각 없이 했던 말로 누군가의 마음을 상하게 한 적은 없었을까 돌아보게 되며, 내안에서 나오는 말이 타인에게 힘이 되도록 노력 해야겠다는 다짐을 해 본다.
성모님은 자신의 마음을 알아주는 엘리사벳 성녀를 만나 기쁘셨나 보다.
마니피캇! 성모님의 찬가는 성모님 방문 기념성당 마당에 각 나라말로 장식되어 있었다.
마리아의 노래 (루카 1,46-55)
“내 영혼이 주님을 찬송하고
내 마음이 나의 구원자 하느님 안에서 기뻐 뛰니
그분께서 당신 종의 비천함을 굽어보셨기 때문입니다. 이제부터 과연 모든 세대가 나를 행복하다 하리니
전능하신 분께서 나에게 큰일을 하셨기 때문입니다. 그분의 이름은 거룩하고
그분의 자비는 대대로 당신을 경외하는 이들에게 미칩니다.
그분께서는 당신 팔로 권능을 떨치시어 마음속 생각이 교만한 자들을 흩으셨습니다.
통치자들을 왕좌에서 끌어내리시고 비천한 이들을 들어 높이셨으며
굶주린 이들을 좋은 것으로 배불리시고 부유한 자들을 빈손으로 내치셨습니다.
당신의 자비를 기억하시어 당신 종 이스라엘을 거두어 주셨으니
우리 조상들에게 말씀하신 대로 그 자비가 아브라함과 그 후손에게 영원히 미칠 것입니다.”
신심 깊은 집안에서 자란 성모님도 감당하기 힘든 일 앞에서 괴로우셨을 것이다. 하지만, 한번 해보겠다는 마음으로 받아들이셨고, 내 맘을 알아주는 누군가를 만났고, 이 모든 걸 마련해주신 하느님께 깊은 감사를 드렸다.
삶을 대하는 자세가 이처럼 우아하고 아름다운 여인이 또 있을까? 곰곰이 생각하고, 만나고, 하느님께 감사드리고, 그렇게 살아가는 게 우리를 평화롭게 만들어준다는 걸, 몸소 보여주신 성모 마리아 님.
그러니, 지금 모든 세대가 은총이 가득하신 마리아 님 기뻐하소서라고, 매일매일 노래하고 있는 것이고, 그 찬송을 받기에 마땅하신 분이다.
그리고, 성모님의 방문을 통해, ‘만남’에 대해 다시 한 번 생각해본다. 사람은 누구를 만나며 사느냐에 따라 삶의 질이 달라지고 행복의 정도가 달라진다는 얘길 들은 적이 있다. 공부를 많이 해서 전문직에 종사한다고 해도, 맨날 만나는 사람이 아픈 사람, 사기당한 사람, 범죄자 등등 이라면, 아무리 돈을 많이 벌어도 행복하기 힘들다는 것이다.
어쩌면 나는 어릴 때부터 만나고 싶은 사람들 만나며 일했기에 그나마 오래 일을 해왔다는 생각이 들면서,
행복이 만남 안에 있다는 걸 되새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