베들레헴 예수님탄생기념성당 카타리나성당
정면에 있는 눈이 부신 정교회 제대의 오른쪽으로 가면, 지하로 내려갈 수 있게 길이 나오고,
다음 일정은 베들레헴의 예수님 탄생기념성당 Church of Nativity
아무래도 이곳은, 예수님이 탄생한 역사적인 곳이고, 로마 가톨릭뿐 아니라 여러 종교가 동시에 기념하는 곳이다 보니, 오랜 세월동안 침략을 많이 받아왔다. 그래서 공격을 보호하기 위해, 마치 요새처럼 지어져 있다.
성당으로 들어가는 문의 이름은 ‘겸손의 문’인데, 어른이 허리를 완전히 굽혀야 들어갈 수 있을 정도로 낮고 작았다. 예전엔 지금보다는 컸지만, 십자군 전쟁 때 이슬람의 말과 마차가 들어오지 못하게 하려고 점점 작아지다 보니 지금의 크기가 되었다고 한다.
그래서 이젠, 누구라도, 그 어떤 높은 지위의 사람이라도, 예수님을 만나기 위해선 허리를 굽히고 겸손하게 낮춰야 들어갈 수 있는 문이 되었다.
성당 안은 공사 중이었고, 예수님 탄생 그 지점을 만나기 위한 줄이 꽤 길었다.
이곳은 로마 가톨릭, 그리스 정교회, 아르메니아 사도교회가 공동으로 관리하는 곳이다. 그래선지, 그리스 정교회 특유의 화려한 장식들이 눈길을 사로잡았다.
정면에 있는 눈이 부신 정교회 제대의 오른쪽으로 가면, 지하로 내려갈 수 있게 길이 나오고,
그곳에서, 드디어 베들레헴의 별을 만날 수 있었다
(루카 2,4-7)
요셉도 갈릴래아 지방 나자렛 고을을 떠나 유다 지방, 베들레헴이라고 불리는 다윗 고을로 올라갔다. 그가 다윗 집안의 자손이었기 때문이다.
그는 자기와 약혼한 마리아와 함께 호적 등록을 하러 갔는데, 마리아는 임신 중이었다.
그들이 거기에 머무르는 동안 마리아는 해산 날이 되어,
첫아들을 낳았다. 그들은 아기를 포대기에 싸서 구유에 뉘었다. 여관에는 그들이 들어갈 자리가 없었던 것이다.
30여 분 넘게 줄 서서 기다려, 1분이 채 안 되는 시간, 예수님이 탄생한 그 곳에 손을 대며 묵상했다. 태어나서 처음 가져보는 소중한 1분이었다.
이곳에 오신 건 나를 만나기 위해서였고, 그렇게 내 안에도 오신 분.
예수님이 태어나서 구유에 누우셨다고 하니까, 야외 드넓은 목장에 있는 마구간 구유 인줄 알았는데, 이런 동굴일 줄은 미처 몰랐다. 이건, 예전 이스라엘 가옥의 구조와 연관이 있는데, 보통 위층에 주거공간을 두고, 아래층에 마구간을 만들어, 겨울 난방 문제를 해결했다. 뜨거운 공기는 위로 향하니, 아래층에 마구간을 놓게 되면, 동물들의 체온으로 위층을 데우는 것이다. 그리고, 자연동굴이 있는 곳이라면, 그 위에 집을 지어서, 동굴엔 동물을 살게 하고 자연스럽게 난방을 해결했다니, 왜 동굴에 구유가 있는지, 이해가 된다.
그리고 이어서, 예수님 탄생 기념 성당 바로 왼편에 있는 카타리나 성당으로 갔다
Chapel of Saint Catherine
이곳은, 1881년 프란치스코 수도회에 의해 건축되었다. 예수탄생기념성당이 여러 종교의 관리 하에 있기때문에, 매년 12월 25일 성탄 자정미사는 로마 가톨릭 소속인 이 곳, 카타리나 성당에서 집전되고 있다.
전 세계 순례자들이 누가 시키지도 않았는데 <고요한 밤 거룩한 밤>을 함께 불렀다. 잠시 크리스마스 분위기가 느껴졌던 시간! 예수님을 찬미하는 같은 마음이 노래에 실려 아름답게 울려 퍼졌다.
그리고 카타리나 성당 마당엔 예로니모 성인이 자리하고 계신데, 그 이유는 성당 지하 동굴이 바로, 예로니모 성인께서, 386년부터 404년 까지, 은거하시며 히브리어 원문의 성경을 라틴어로 직접 번역 한 장소이기 때문이다.
예로니모 성인은, 가톨릭에서 공식적으로 인정하고 있는 성경인 불가타 본을 4세기경에 완성했는데, 불가타(vulgata)란 ’대중적인’이란 뜻이다.
예로니모 성인이 기거하셨다는 지하 동굴에는, 여러 개의 다양한 제대들이 마련되어 있었다. 오로지 성경번역을 위해, 하느님 일을 위해 온 마음과 정신을 쏟았던 곳. 우린, 얼마나 성인처럼 하느님을 위해 마음을 낼 수 있을까.
그리고, 베들레헴은 거룩하고, 아름다운 곳이기도 하지만, 아픔이 서려있기도 하다. 예수님이 탄생했다는 소식을 듣고, 당시 헤로데 왕은 자신을 위협할 또 다른 왕이라 생각하여, 그 지역 태어난 아기들을 몰살하라는 명령을 내린다.
헤로데가 아기들을 학살하다 (마태 2,16-18)
그때에 헤로데는 박사들에게 속은 것을 알고 크게 화를 내었다. 그리고 사람들을 보내어, 박사들에게서 정확히 알아낸 시간을 기준으로, 베들레헴과 그 온 일대에 사는 두 살 이하의 사내아이들을 모조리 죽여 버렸다.
그리하여 예레미야 예언자를 통하여하신 말씀이 이루어졌다.
“라마에서 소리가 들린다. 울음소리와 애끊는 통곡 소리. 라헬이 자식들을 잃고 운다. 자식들이 없으니 위로도 마다한다.”
이것 때문에 영화 <사바하>에서, 크리스마스는 예수님이 탄생했지만, 무고한 아이들이 살해된 날이니 슬픈 날이라는 대사가 나온다.
종교를 가지며 우리가 범하지 말아야 하는 오류는, 신을 믿으니 모든 힘든 일이 다 사라져야 한다는 생각이다. 하느님은 우리의 어려움을 완전히 없애주시는 분이 아니라, 어려운 순간 함께 해주시며 한발 한발 내딛고 극복해가도록 도와주시는 분이다.
종교를 가졌는데 왜 힘들지? 왜 어려운 일이 생기지? 편안하려고 믿는 건데? 복 받으려고 성당 다니는데? 이렇게 생각하면서부터 오류가 생긴다. 1더하기1은 2같은 정확한 계산법, 인간적인 ‘인과율’로는 설명 안 되는 하느님의 섭리를 받아들이며, 나의 신앙은 한 단계 성장하게 되었다.
하느님을 믿으면 돈이 많아지고 지위가 높아지는 게 아니라, 그분의 자녀가 되었으니 기쁠 때나 슬플 때나 어느 순간이나 함께 해 주셔서 힘이 난다는 것.
예수님이 탄생했기 때문에 무고한 아이들이 죽은 게 아니라, 헤로데왕의 말도 안 되는 욕심이 아이들을 죽게 했었다. 그 힘겨운 순간에도 하느님은 함께 계셨다
메시아가 온 곳, 베들레헴.
청명한 그 곳은 순간순간 마다 아픔도 많았지만,
아픈 우리 한 명 한 명을 받아주고 감싸주는 곳이란 느낌이 들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