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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wisdom Apr 02. 2024

아이들에게 보상이란

유니콘같은 부모들이 있긴 하겠지요...

큰애는 언뜻 보면 씩씩하고 야무져 보이지만, 실상은 적응기간이 필요하고 쑥스러움도 많이 타는 아이다.

특히 처음 하는 일을 일단 두려워하기부터 해서 시작하기도 전에 겁부터 먹고 걱정을 한가득 하는데, 일어나지도 않은 일들을 주구장창 걱정하고 질문이 끝도 없어서 일일이 대답하기도 지치고 답답한 기분이 든다. 


초등학교에 입학하고 환경이 바뀌면서, 아이의 가장 큰 걱정거리는 '방과후교실을 어떻게 혼자 찾아가는가' 였다. 첫주에는 방과후선생님이 직접 반으로 아이들을 데리러 왔고, 그 다음주부터는 알아서 혼자 찾아가는 시스템이었다. 


첫 주를 무사히 보내고 문제는 그 다음이었다. 혼자 찾아가는게 익숙하지는 않았지만 그래도 교실 위치를 숙지하고 찾아가면 방과후선생님이 기다리고 있으니 할 만 했는데, 운동장 수업이 문제였다.


운동장 수업은 첫 주에 선생님이 예비군 훈련을 가야해서 대체교사가 왔다. 대체교사가 아이들을 데리러 왔고, 운동장에 나가 체육수업을 잘 하고 돌아왔는데, 그 다음주는 하필 부모참여수업과 겹쳐서 휴강을 했고 그 다음주부터 원래 교사가 수업을 하게 되었다.


문제는, 아이 입장에서는 얼굴도 모르는 초면의 교사를 혼자 운동장에 나가서 찾아야 한다는 것이었다. 누가 데리러와서 내가 체육교사다, 라고 말하면 얼굴을 몰라도 따라가면 되겠지만, 가뜩이나 허허벌판에 혼자 나가는것도 무서운데 얼굴도 모르는 교사를 찾아야 하는 상황이었다. 


이건 나도 좀 걱정이 되어 방과후수업이 시작되기 전에 살짝 운동장에 찾아가보니, 역시나 아이는 울기 일보직전의 얼굴로 두리번거리면서 "체육선생님이 누구야...?" 하고 덜덜 떨리는 목소리로 애써 울음을 삼키고 있었다. 나도 누군지 몰라 주변의 남자 어른을 아무나 붙잡고 물어보고 다니다가, 저 멀리서 집결지를 잘못 알았다며 뛰어오시는 담임선생님께 다시 아이를 인계하고, 체육교사를 만나는 장면까지 확인한 후에 학교를 빠져나왔다. 


이후로는 '운동장 철봉 앞' 이 집결지라고 전달받았으나, 한번 이런 경험이 있는 아이는 모든게 걱정근심거리여서 다시는 수업을 안가겠다고 버텼다.


"OO아, 이제 친구들 집에갈때 같이 따라나와서, 너는 교문으로 나오지 말고 철봉 앞으로 가면 돼."

"철봉에 선생님이 없으면?"

"이제 거기 계시기로 약속했잖아. 이제 얼굴도 알지?"

"기억 안나는데?"

옆에서 남편은 '딱 봐도 체육선생님 같이 생겼다' 라는 도움도 안되는 말을 했다.

"음, 얼굴이 좀 길고 키가 컸어. 옷은 위아래 편한 체육복을 입고 계실거야."

"무슨색 옷인데?"

"그건 매번 달라질 수 있는데..... 여튼 체육복일거야."

"교실에서 나오는것도 무서워."

"그건 선생님이랑 친구들이랑 다같이 나오는거잖아."

"나오다가 계단이 무너지면? 길이 부서지면?"

"............"


모든 대화는 이런식이었다. 이것 뿐만 아니라, 피아노학원에서 계단만 내려오면 바로 태권도차량을 타기로 했는데, 그것도 너무 무서워했다.


"OO아, 태권도 관장님이 도착했다고 내려오라고 피아노 선생님한테 전화를 할거야. 넌 그때 내려가면 돼."

"전화가 안오면?"

"아니, 전화를 하기로 했다니까? 피아노 선생님이 전화받고 너한테 내려가라~ 라고 하실거야. 그때 내려가."

"내려갔는데 관장님이 없으면?"

"아니, 관장님이 도착해서 전화하기로 했다니까? 관장님이 없을수가 없잖아."

"관장님이 까먹고 도착 전에 전화한거면? 태권도 차가 오다가 부서졌으면?"

"휴................"


내가 일일이 아이의 손발이 되어줄 수는 없는 노릇이었다. 어엿한 초등학생인데 이정도 일은 혼자 해낼 수 있어야 할 것 같기도 했고. 한없이 두려워하는 아이에게 내가 내밀 수 있는 카드는 뻔했다. 아이가 요즘 꽂혀있는 학교앞 무인편의점에서 먹을 것을 사주는 것. 불량식품이 많아 가기를 주저하는 곳이었지만, 아이가 미션을 잘 끝냈을 때 어떤 당근은 쥐어줘야 하니까.


그런데 하다보니 365일 무인편의점을 가게 생겼다. 오늘은 방과후수업 씩씩하게 잘 다녀왔으니 무인편의점에 가고, 태권도 차를 열번 잘 기다리면 용감한어린이 상을 줄건데 뭘 원하냐고 했더니 무인편의점 3번 가기 래서 또 가고, 부드러운 내복 없이 옷 입기 싫다고 울어대서 지각할까봐 허겁지겁 억지로 입혀야 하니 이 옷 잘 입으면 무인편의점 이번주 내내 가게 해준다고 약속하고, 패드로 하는 영어 학습 너무 하기 싫어해서 이거 30분 매일매일 보면 그 다음주 월요일마다 무인편의점 가기 등등.....


이렇게 키우는게 맞나 싶다가도, 울고불고 하는 애를 빨리 달래는데 저만한 특효약이 없어서 자꾸 남발중이다. 그래도 가서 고를때 불량식품 말고 최대한 대기업 과자를 사도록 유도하는데, 집는 것 족족 내려놔 내려놔를 하며 현타와 자괴감이 가득하다가, 인터넷에서 우연히 어떤 글을 읽었다.


"아이에게 보상을 유튜브나 과자로 해주지 마세요. 진정한 보상은 엄마의 포옹과 사랑, 눈맞춤과 다정한 대화 입니다."


진정 이런 부모와, 이걸 보상으로 받아들이는 아이가 있다는건가.... 정말 유니콘 같은 존재가 아닐 수 없다...


읽자마자 뭔 개똥같은 소리냐! 라고 코웃음쳤지만, 그래도 시도해봐야지. 정답은 정답이니까. 과연 내일 등교시간에 쫓기면서도 포옹과 눈맞춤으로 아이에게 응답할 수 있으려나. 엄마의 길은 멀고도 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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