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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이시은 Dec 13. 2020

감정 연습

내 안에 숨어버린 감정 꺼내기

 '어른이 된다는 것, 그것은 감정을 억누르거나 죽이는 기술을 얻었다는 것이 아닐까요?'      

                                                                                                                    -   강신주의 감정수업 중


 중년을 훌쩍 긴 성인을 레슨 하다 보면 그분들에게서 어떤 감정도 느껴지지 않을 때가 있다. 나와 인사를 나누거나 대화를 나눌 때는 습관적인 미소를 보이시는 경우가 많다. 그런데 피아노를 치기 시작하시면 행복하지도 슬프지도 않은 무덤덤한 상태가 되어 린다. 음악적 표현이 필요한 곡을 연주 때도 표현이 없이 무감정으로 곡을 연주하시는 분들이 다. 반면 아이들의 경우는 내가 가르쳐주지 않아도 스스로 느낀 것을 표현해서 놀랄 때가 많다. 어른이 되면 감정이 메마르는 것일까? 아니면 감정이 들킬까  일부러 숨기게 되는 것일까? 혹시 감정을 계속 숨기다 보니 진짜 숨어버려서 찾지 못하게   아닐까?


 어느  연습을   어머님이 조용히 나오신다. 그리고  얼굴을 일부러 쳐다보지 않으시고 휴지를 가지고  급히 들어가신다.

 ‘혹시 우시는 건가?’

 바로 따라 들어가고 싶었지만 감정을 추스를 혼자만의 시간을 드린 후 나중에 레슨실에 들어가서 조심스럽게 여쭤봤다.

 “아니, 쇼팽녹턴을 치는데 너무 슬퍼서 갑자기 눈물이 더라고요."

 평소에 표정이 별로 없고 무뚝뚝한 말투의 어머님이  그런 감수성을 가지고 계셨다는  너무 놀라웠다. 그런데  다음에 하신 말씀이 나를  놀라게 했다.

 “ 달 전에 우리 딸이 하늘나라에 갔어요. 그런데 녹턴 치다가 슬픈  터져 나왔나 봐요. 너무 슬퍼서 못 치겠어요."

 따님이 돌아가셨다는 것에 너무 놀랐고, 그동안  말할  없는 슬픔이 전혀 티가 나지 않았다는 것에  놀랐다. 얼마나 감정을 참았으면 그렇게 담담해 보일  었을까. 오늘 애써 숨겨왔던  감정이 음악을 통해서 터져 나왔나 보다.


 수강생 중에 “괜찮아요, 선생님.”이라는 말을 많이 하시는 분이 있다. 피곤해 보이는 날에도 마음이 힘들어 보이는 날에도 항상 대답은 같았다. 어느  잠을 한숨도  잔 것 같은 얼굴로 멍하게 창밖을 보시고 계시길래 슬쩍 레슨실로 들어가 봤다. 

 “무슨 생각하세요?”

아이고 깜짝이야! 아니 그냥 생각  하느라고 창밖을 봤어요. 그냥 오늘 멍하네요. 그런데 괜찮아요. 괜찮아지겠죠.”

 말씀하기 힘드신 거 같아 그냥 나왔지만 마음이 쓰였다. 잠시 후에 레슨을 하러 들어갔을 때 갑자기 마음을 고백하신다.

 “선생님, 제가 괜찮지가 않아요. 마음이 힘든데  힘든지 정확한 이유도 모르겠고, 내가 무슨 감정인지 모르겠어요. 요즘 심리치료도 받고 있어요. 그런데 아까 모차르트를 치는데 너무 즐겁고 기쁜 느낌이 느껴지는 거예요. 기분 좋은 감정 오랜만에 느끼네요. 잠깐 정신이 맑아졌었는데 또 쓸데없이 멍해지더라고요."

  마음이 힘드셨던  분은 괜찮아지고 싶어서 괜찮다는 말로 억지로 감정을 누르다 보니 기쁨과 즐거움의 감정도 숨어버리게 됐나 보다. 마음을 들키지 않으려고 감정을 숨기다 보니  감정을 알아채고 느끼는 장치가 고장나버린게 아닐까.  


 어른이 되면서 숨어버린 이 감정들을 음악으로 발견하고 표현해보면 어떨까?

'훌륭한 음악가는 듣는 이의 감정 버튼을 누를 줄 안다. 음악가는 연주하면서 자신의 음악을 듣고, 그 음악이 적절한 감정 상태로 안내한다.’ 과학 저널리스트이자 음악 애호가인 크리스토프 드뢰서는 저서  ‘음악 본능’에서 이렇게 말했다.

 우리도 음악가가 되어서 피아노에 마음을 연결시켜 나의 감정을 노래해보면 억눌려 숨어버린 감정들이 꺼내어지지 않을까? 음악으로 감정을 꺼내서 표현하는 연습을 하면 평소에 충분히 얻지 못하는 심미적인 경험을 해볼  있지 않을까 생각한다. 쇼팽 녹턴을 연주하며 슬픔을 꺼내볼  있고, 모차르트 소나타를 연주하며 즐거움을 꺼낼  있을 것이다.  바흐를 연주하며 평안을 느끼고 베토벤을 연주하며 열정을 표현할  있을 것이다. 나도 숨어버릴 것 같은  감정을 찾으러 피아노 앞으로 가야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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