악보 속 부가적 요소, 그리고 레슨 중 작은 신호
악보를 보면 무엇이 먼저 보이는가?
오선, 음자리표, 박자표, 음표와 쉼표, 올림표와 내림표, 마디를 나누는 세로줄. 그리고 악보에는 부가적으로 기록된 작은 요소들도 숨어있다. 셈여림을 나타내는 약어들, 다이내믹의 변화를 나타내는 기호, 음을 누르는 방법을 표시한 것들(스타카토, 테누토, 악센트), 프레이즈를 나타내는 이음줄, 그리고 특정한 느낌이나 정서를 표현한 나타냄 말, 템포를 나타내 주는 빠르기말. 이렇게 악보에는 음정을 기록한 것 이외에 음악의 뉘앙스를 표현하게 해주는 작게 보이는 이 요소들이 있다. 부가적으로 기록된 요소들은 초보자들이 흔히 놓치기 쉽다.
더 나아가 노련한 연주자가 되면 악보 너머의 것도 살펴보게 된다. 음악의 역사에서 초기의 작품들에는 악보에 많은 것들이 적혀있지 않아서 당대의 음악을 분석하고 연구해서 재해석해야 한다. 그리고 표현할 수 있는 음색과 건반의 무게감이나 숨겨진 선율도 악보에는 적혀있지 않다.
초보자가 악보를 볼 때 안 보일 수 있는 이러한 많은 요소들은 음악을 더 풍성하고 아름답게 만들어 주는 아주 중요한 것이다. 작지만 크게 관심을 가져야 하는 것이다. 아무리 음정과 박자를 정확하게 지켜서 연주해도 이것들을 못 본채로 연주하게 되면 식상하고 듣기 좋지 않은 음악이 만들어질 것이다.
“그런 것들이 적혀있는지 연습할 때는 하나도 안 보였는데 선생님이 말씀하시니까 이제야 보여요.”
레슨을 하다 보면 이렇게 말하는 학생이 정말 많다. 계이름과 박자에 집중하느라 다른 것에는 관심이 없었던 것이다. 혹은 그런 건 나중에 악보를 잘 보게 되면 그때 지켜야 하는 게 아니냐고 나에게 반문하는 학생도 있다. 아니다. 초보자일 때부터 악보의 작은 기호들에 크게 관심을 가지면 나중에 정말 수준 높은 연주를 하게 될 가능성이 높아진다.
작은 것에 크게 관심을 가져야 하는 것은 레슨을 할 때에도 적용된다. 선생님은 학생들의 작은 표현에도 크게 관심을 가져야 한다. 학생의 말이 음악의 악보라고 생각해야 한다. 나는 노련한 선생님이 되어야 하니 악보 너머의 것에도 관심을 가져야 한다. 학생들이 하는 말의 너머의 것을 봐야 하는 것이다.
“선생님, 저 피아노 싫어요. 다음에는 제발 우리 집에 안 오셨으면 좋겠어요!”
처음 이 말을 들었을 때 너무 충격을 받았다. ‘어린 학생이 어떻게 나에게 버릇없이 그렇게 말할 수 있지’라는 생각이 머리에 가득했고 화가 났다. 그런데 이런 이야기를 하는 학생들이 여러 명 있었다. 처음에는 부모님이 반강제로 시키는 피아노를 하려니 너무 힘들어서 그런 얘기를 하는 거라고 생각했다. 아니면 스트레스가 많아서 아이들이 화가 많아진 게 아닐까 생각하기도 했다. 혹은 정말 내가 가르치는 것이 싫어서 그러는 것은 아닐지 고민해 봤다. 여러 생각 끝에 정답을 찾게 됐다. 아이들의 말에 귀를 기울이는 것이었다.
레슨 시간 중에 한 학생이 피아노가 싫다고 눈물을 글썽이며 투정을 부린다. 이번에는 그냥 넘어가지 않고 그 이유를 물어보고 싶었다.
“오늘 피아노 할 때 조금 힘들었나 보다. 선생님한테 뭐가 힘들었는지 말해줄래?”
“ 이 곡 왼손이 너무 치기 힘들어서 아까 어렵다고 말했는데 선생님이 원래 처음에는 어려운 거라고 그냥 치라고 했잖아요.”
아, 내가 학생의 말을 그냥 무심코 지나쳐 버렸었구나.
“그랬구나, 선생님이 마음을 몰라줬네. 미안해. 그럼 이 어려운 부분은 하지 말고 마음의 준비가 되면 그때 다시 해볼까?”
아마도 내가 어린이에게 성인과 같은 참을성을 요구하면서 아이가 힘들다고 하는 말을 지나쳤던 게 문제였었나 보다. 나의 대답을 들은 후 아이가 갑자기 일어나서 나를 안아준다. 나는 갑자기 눈물이 핑 돌았다. 내가 그동안 내 마음이 힘들고 피곤하다가는 핑계로 학생들이 보내는 작은 신호들을 무시하고 있었다는 것을 깨달았다. 아이의 힘든 마음을 알아주는 것만으로도 마음이 풀리는데 그동안 나는 화만 내고 있었다. 악보에 작은 것들은 자세히 살펴보아야 한다고 가르치면서 정작 삶에서는 작은 신호들을 다 무시하고 있었던 것이다. 이 일을 계기로 나는 학생들의 작은 표현에 크게 관심을 갖고 바라봐야 한다는 것을 깨닫게 됐다. 연습 후 조금이라도 발전하고 노력한 부분이 있으면 먼저 알아봐 주고 칭찬했다. 그 이후로는 피아노가 싫다는 표현은 듣지 못했다.
선생님은 끌고 가는 사람이 아니라 뒤에서 올바른 방향으로 갈 수 있게 도와주는 사람이라고 생각한다. 그 과정에서 학생들의 작은 신호에도 크게 관심을 가져야 한다. 그러면 노련한 선생님이 되고 학생들은 피아노를 그리고 음악을 더 좋아하게 될 것이다. 악보에서 작게 보이는 기호들에 크게 관심을 가지면 더 아름다운 음악이 완성되듯이 말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