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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이쓰 Eath Feb 25. 2021

후각,
지극히 원초적인 감각에 대하여

후각의 정의는 ‘화학 분자를 인지하고 그에 반응할 수 있는 능력’을 말한다. 

후각은 진화적으로 대단히 원초적인 감각이다. 이 화학적인 반응성은 거의 대부분의 생명체에서 발견된다. 빛이 들지 않는 깊은 물속에 사는 물고기들도 시각은 없어도 후각은 가진다. 세균부터 원생동물, 점균류, 그리고 동물인 우리 인간에까지 비슷하면서도 각기 다른 형태로 후각은 존재한다. 후각의 중요성은 2004년 노벨 생리의학상이 후각 수용체 단백질을 찾아내어 선구자적인 연구를 한 두 명의 과학자, Linda Buck과 Richard Axel에 주어진 것을 통해서도 알 수 있다. 


최초의 후각은 생존을 위해서였을 것이다. 2010년, 네덜란드의 한 연구진은 바이오테크놀로지 저널에 박테리아의 후각에 대한 논문을 발표했다. Bacillus licheniformis라는 세균이 암모니아 냄새에 반응해서 먹이가 있는 쪽으로 이동을 한다는 내용이었다. 생물은 후각을 다양하게 이용한다. 먹이를 찾아서 그쪽으로 이동하기도 하고, 해로운 물질을 만나면 피하기도 한다. 조금 더 발전된 형태에서는 이것을 짝짓기에 사용하기도 한다. 곤충은 이성을 유혹하기 위해 페로몬을 분비한다. 식물이 분비하는 특정 물질은 천적에게 기피제의 작용을 하기도 한다. 인간의 후각도 초반에는 비슷한 역할을 했을 것이다. 그러나 문명사회의 발달을 거치면서 인간은 후각에 의존하여 먹이를 찾아다닐 필요가 없어졌다. 페로몬에 의한 이성의 유혹도 인간의 경우는 아니다. 대신 인간은 이 후각이라는 감각을 보다 다양한 방식으로 자극하고, 향을 다양한 형태로 유희 하기 시작했다. 향 업계의 성장이다.


2020년 코로나 사태를 겪으면서 코를 가리는 마스크가 필수가 되었다. 아이러니하게도 같은 기간 동안 아로마테라피에 대한 소비자들의 관심은 급증했다. 전 세계적으로 추정되는 시장 규모는 15억 5천 달러 정도다. 연평균 성장률은 2029년까지 11.8%로 예상된다. 네타포르테는 아로마테라피와 관련된 브랜드들이 30%의 성장률을 보였는데, 특히 목욕 용품 분야에서 더욱 도드라졌다고 한다. 


후각이 특별한 이유는 이것만이 직접적이면서도 간접적인 감각이기 때문이다. 시각과 청각은 시공간을 초월해서 전달된다. 녹화와 녹음을 하고 재생할 수 있는 기술이 있기 때문이다. 미각과 촉각은 보다 직접적인 감각이다. 직접 닿아야만 느낄 수 있다. 후각은 시공간을 초월하지는 못하지만 직접적인 접촉이 없이도 전해진다. 이 사실이 후각을 더욱 야릇하게 만든다. 공간을 가득 채울 수 있으며, 몸에 남은 후각적 자극이 또 다른 공간으로 전달되기도 한다. 후각은 그래서 특별하다.

후각은 호불호가 유난히 강한 감각이다. 미의식이나 음악은 대중적으로 선호하는 공통된 것들이 있다. 후각은 굉장히 독특한데, 같은 냄새가 누군가에게는 향기로, 누군가에게는 악취로 전해진다. 이건 사람들이 날 이상하게 볼까 봐 숨겨온 이야기인데, 난 생리혈의 냄새와 커피 원두의 냄새가 비슷하다고 느낀다. 


언제부턴가 향료는 모두가 꺼리는 화장품 원료가 되었다. 향료나 에센셜 오일이 일부 사람에서는 피부에 자극을 일으키기도 하기 때문이다. 그러나 화장품을 구성하는 데에 빼놓을 수 없는 요소가 향이다. 박람회를 하면서 바이어들이 화장품을 테스트하는 것을 수도 없이 봤다. 십중팔구 손등에 바르고 코에 먼저  갖다 댄다. 향을 확인한다. 클린 뷰티의 유행으로 인해 무향이 선호되는 세상이지만 화장품의 향기가 마냥 기피해야 하는 나쁜 것이기만 할까.


프랑스의 작가 마르셀 프루스트가 저서 ‘잃어버린 시간을 찾아서’에 후각을 통해 기억을 되찾는 경험을 아주 멋지게 표현했는데, 그 이후로 같은 경험을 프루스트 효과라고 한다. 그는 주인공이 마들렌을 먹고 어린 시절의 기억을 떠올리는 경험을 다음과 같이 표현했다.

과자 부스러기가 섞여 있는 한 모금의 차가 입천장에 닿는 순간 나는 소스라쳤다. 나의 몸 안에 이상한 일이 일어나고 있는 것을 깨닫고, 뭐라고 형용키 어려운 감미로운 쾌감이, 외따로, 어디에서인지 모르게 솟아나 나를 휩쓸었다. 그 쾌감은 사랑의 작용과 같은 투로, 귀중한 정수로 나를 채우고, 그 즉시 나로 하여금 삶의 무상을 아랑곳하지 않게 하고, 삶의 재앙을 무해한 것으로 여기게 하고, 삶의 짧음을 착각으로 느끼게 하였다. 아니, 차라리 그 정수는 내 몸속에 있는 것이 아니라, 그것은 나 자신이었다

이렇게 근사하게는 표현하지 못하지만 우리 모두 같은 경험을 한 적이 있다. 흔들리는 꽃들 속에서 너의 샴푸 향이 느껴졌다. 너와 스친 걸까, 황급히 돌아서 보지만 너는 없다. 냄새와 관련된 추억 하나쯤, 우리 모두 가지고 있지 않나. 나는 살 냄새 맡는 걸 좋아하는데, 20년 가까이 지났지만, 뺨에 대고 킁킁거리며 맡던 그 친구 특유의 살 냄새가 아직까지도 기억난다. 매년 느끼는 냄새지만 늦가을에 느끼는 겨울의 냄새는 유난히 날 슬프게 만들기도 한다. 


후각은 기억과 관련되어 있다. 후각이 뇌의 기억 형성에 관여한다는 연구적 증거는 2019년 독일 보흠 루르 대학의 데니제 마나한-파우크한 교수와 크리스티나 스트라우흐 박사가 Cerebral Cortex 저널에 기고한 연구를 통해 알 수 있다. 쥐의 뇌에서 후각과 관련된 부분을 자극해서 인위적으로 후각 지각을 일으키자 기억의 형성에 중요한 역할을 하는 해마가 반응을 했다는 것이다. 또 다른 쥐를 이용한 연구를 통해서 공간과 위치의 지각과 기억에도 내후각피질이 관여한다는 사실 또한 밝혀졌다 (2014년 노벨 생리의학상). 해마와 후각은 밀접하게 연결되어 있어서 가장 많은 신호를 주고받는다. 해마가 손상된 쥐는 새로운 냄새를 익히지 못한다. 사람과 관련된 연구도 있다. 자폐스펙트럼의 주요 특징 중 하나는 감각이 왜곡된다는 것이다. 2015년 Current Biology (개인적으로 좋아하는 저널이다)에 이스라엘 와이즈먼 연구소팀이 연구 결과를 발표했다. 후각 자극을 통해 자폐아 진단을 하는 것이다. 자폐스펙트럼이 있는 아동의 경우 악취에 대한 자극 반응이 정상 아동에 비해서 현저히 낮았다. 가장 비극적인 질병, 알츠하이머도 후각과 관련이 있다. 알츠하이머는 발병 초기에 환자가 후각 상실을 경험한다. 


후각이 피부와도 직접적인 관련이 있다는 연구도 있다. 후각을 느끼는 후각 수용체는 코에만 있는 것이 아니다. 코에는 350개 이상의 후각 수용체가 존재하고, 이외의 신체 부위에도 150여 개가 존재한다. 후각 수용체는 피부에도 있다. 특정 아로마 향이 피부의 재생을 촉진한다는 연구가 2014년 독일 연구진에 의해 Journal of Investigative Dermatology에 실렸다. 후각 수용체 OR2AT4는 코가 아니라 피부의 각질세포에 있다. 논문의 저자들은 OR2AT4를 가진 각질세포에 합성 샌달우드향 (백단향)을 처리하자 후각 수용체가 활성화되면서 피부세포의 증식과 이동을 촉진하는 것을 관찰했다. 이것은 상처의 치유를 촉진할 수 있음을 의미한다. 이외에도 OR2J3라는 후각 수용체는 헬리오날이라는 향료를 처리하면 췌장세포가 세로토닌을 분비하게 만든다. 세로토닌은 익히 알고 있듯이 행복 호르몬으로 사람의 기분을 평온하게 만드는 역할을 한다. 


문명이 발달하면서, 인간이 시각을 많이 사용하게 되면서, 후각은 상대적으로 덜 중요한 감각처럼 인식되곤 했다. 그러나 후각은 우리가 가진 가장 원초적인 감각이며 수억 년의 진화 과정에서 사라지지 않고 계속해서 발전해온 감각이다. 그것은 분명 합당한 까닭이 있어서일 것이다.


흔히들 샤워시간을 온전한 나를 만나는 시간이라고 한다. 나는 씻는다는 행위가 한편으로는, 본래의 체취를 찾는 과정이 아닐까 생각한다. 그 옛날, 치성을 드리기 전에 목욕을 재개하였던 것처럼.


Ref 1. Nijland, R. & Burgess, J. G. Biotechnology Journal (2010) doi:10.1002/biot.201000174

Ref 2. Christina Strauch, Denise Manahan-Vaughan. Orchestration of Hippocampal Information Encoding by the Piriform Cortex. Cerebral Cortex, 2019; DOI: 10.1093/cercor/bhz077

Ref 3. https://www.nobelprize.org/prizes/medicine/2014/press-release/

Ref 4. Rozenkrantz et al., 2015, Current Biology 25, 1904–1910, July 20, 2015

Ref 5. J Invest Dermatol. 2014 Nov;134(11):2823-2832. doi: 10.1038/jid.2014.273

Ref 6. https://cosmeticsbusiness.com/news/article_page/Cosmetics_Business_reveals_5_key_beauty_and_self-care_trends_in_new_report/173589#Predictions

이미지 출처 https://www.theinvisiblestories.com/stories/2018/smelling-is-feeling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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