어쩌다 토마토를 키웠다. 화분에 방울토마토 키우는 수준이 아니고 농부로서 토마토 농사를 지었다는 말이다. 사실 농부라고 하기에는 소꿉장난 수준이다. 비닐하우스 서너 동은 지어야 농부라고 할 수 있는데, 우리는 달랑 한 동, 그것도 세 명이 같이 지었으니까. 그래도 농부라고 주장하는 이유는 토마토를 팔았기 때문이다. 작물을 키워 팔았으면 농부지, 뭐(그렇잖습니까!).
어릴 때 엄마와 아버지가 베란다에 식물을 키우셨다. 소철부터 시작해서 선인장 몇 개를 키우시더니 나중에는 고추, 상추, 파, 토마토까지 없는 게 없었다. 사실 오십이 넘어서야 고추 맛을 알게 되었으니, 그때 베란다에 고추가 있건 말건 관심이 없었다. 어린 시절에 보고 자란 것은 아무 소용없다. 내가 관심을 가지는 순간부터 내 것이 된다.
그럼에도, 내 아이들을 키우면서 자연을 가까이 접하게 해주고 싶었다(아, 소용없음을 겪고도 못 말리는 교육열이여). 아이들이 다녔던 학교는 산 아래 위치했고 아이들은 들로 산으로 뛰어다녔다. 농사도 지었다. 목이 마르면 오이를 따 먹었다. 낫으로 가시를 대충 문질러 손으로 툭 잘라 나눠 먹을 줄 알았다. 앵두며 보리수, 산딸기, 살구를 따 먹고 그것도 없으면 찔레꽃을 빨아먹었다. 나도 아이들을 따라다니다 산에 들에 널린 과실 맛에 눈을 떴다. 그 자리에서 따먹는 과실은 어쩌면 그리도 달고 맛있는지. 실컷 따먹고, 설탕에 재어 담그고, 차로 음미하고, 술로 마셨다. 앵두 술, 보리수 진액, 살구잼, 매실청을 담그느라 유리병, 항아리, 담금주, 설탕 값이 만만찮게 들었다.
학교에는 작은 텃밭이 있어서 사람들이 상추도 심고 고추도 심었지만 나는 아무것도 하지 않았다(할 엄두를 못냈다). 가끔 남의 깻잎에 눈독을 들였다. 깻잎은 웃순이 많이 올라오는 작물이라 살짝 웃순만 쳐내면 티도 나지 않았다. 볶아서 나물로 해 먹고, 양파 조금 넣어 부침개를 해 먹었다. 너무 많다 싶으면 된장에 박거나 간장에 담갔다. 농사는 짓지 않으면서 작물 따먹는 재미가 쏠쏠하다는 것을 알아간 것이다. 토마토 농사 얘기하다 말고 너무 멀리 갔다. 아무튼 토마토도 그렇게 재미날 줄 알았다. 아니, 재미로 치자면 그에 비할 바가 아니긴 하다. 농사를 짓지는 않고 열매만 따 먹는 재미는 땀 흘리고 먹는 재미와는 비교할 수가 없다.
묘목을 심을 무렵에는 한여름이 그렇게 더울 줄 상상도 못 했다. 4월의 봄바람은 거의 흙바람이었다. 바람 부는 바깥보다 하우스 안이 얼마나 좋으냐며 흙 만지는 즐거움 운운했다.
묘목이 조금 자라기 시작하면서 진짜 고생이 시작되었다. 토마토는 가지가 튼튼하지 못해서 줄을 매주어야 한다. 묘목마다 줄을 타고 올라오게 하는데, 오이나 호박과 달리 토마토는 넝쿨손이 없어 자랄 때마다 일일이 줄을 감아줘야 한다. 그때 가지 옆으로 자라는 순도 잘라내야 한다. 이걸 순 치기라고 하는데, 얼마나 빨리 자라는지 거짓말 아주 쪼금 보태서 하우스 이쪽 끝에서 저쪽 끝까지 순 치고 줄 감아주고 돌아 나오면 다시 처음으로 가서 순 치고 감아줘야 한다. 매일 아침 순 치기를 하면서 매일 놀란다. 어제 그 토마토 맞아? 어느새 이렇게 자랐대? 매일은 매우 자주, 항상, 반복적인 것을 뜻하지만 그것은 인간의 시간 개념일 뿐이다. 토마토는 매 순간, 인간의 눈이 따라갈 수 없게, 무섭게 자란다. 매일 그렇게 순을 치는데도 우리 눈을 속이고 자라나 삐죽하게 솟아오른 순을 발견하면 경외감마저 느낀다. 이미 꽃을 피운 것도 있다. 그런 순은 선뜩 꺾기가 미안하다. 하지만 마음 약해져서 그냥 두면 자연을 망친다. 있는 대로 자라게 하는 것이 자연인 듯하지만 그럴 경우 벌레가 끼거나 곰팡이가 생기거나 과실이 작아진다. 농사는 질서정연해야 한다. 정말 잘 지은 농사꾼의 밭은 과연 저것이 자연물인가 싶도록 칼각이 돋보인다. 꺾은 순을 한 아름 들고 하우스를 나올 때면, 몸은 땀에 절어 소금 자루 같지만 마음만은 100송이 장미를 품에 가득 안은 듯 뿌듯하다.
토마토는 원래 10단이 넘게 자라는 작물이다. 토마토가 자라면서 10단의 마디가 생긴다는 뜻이다. 하지만 너무 높이 자라면 열매가 튼실하지 못하니까 윗단을 잘라내고 5단 정도까지만 키운다. 2단의 토마토가 붉어지기 시작하면 이제 순 치기는 뒷전이다. 토마토를 따느라 정신없이 바쁘다. 어느새 토마토가 열려있고 어느새 토마토가 자라 있고 어느새 토마토가 빨개져 있다. 따기가 바쁘게 새로 열렸다. 벚꽃이 한 번에 피고 한 번에 지듯이 토마토가 딱 그런 느낌이다. 빨갛게 익은 토마토에 눈이 벌게져 쫓다 보면 어느새 5단까지 벌게져 있다. 굽었던 허리를 펴고 위로 손을 뻗으면서 끝난다. 그제야 몸 여기저기가 삐거덕거리는 걸 느끼고 다른 농부들처럼 한의원을 들락거리며 한여름을 보내곤 했다.
어릴 때 먹었던 토마토는 맛이 없었다. 설탕을 쳐야 먹어줄 만했다. 채소로도 먹을 줄 몰랐다. 하지만 우리 토마토는 맛있게 달았다. 과일로 먹을 만하게 달았다. 퇴비를 넉넉히 하고 엽면시비를 할 때 약간의 식초와 소금을 섞기도 한다(며느리도 모른다는, 바로 그 농사 비법 중 하나인데, 아주 약간 간을 해서 맛을 높이고 벌레가 꼬이지 않게 하는 거다).
우리 마을은 토마토가 특용작물이었기 때문에 대부분 토마토를 키웠다. 각자의 농사 비법이 있고 집집마다 맛이 다르다. 비법은 아무리 가까운 사이라도 절대 가르쳐주지 않는다. 자기 토마토에 대한 자부심도 대단해서 어쩌다 다른 농장에 가면 우리 토마토 먹어보라고 막 권한다. 그럴 때 사양하면 굉장히 서운해 한다. 자랑스러워 죽겠는데 어디 말할 데가 없는 거다. 맛있게 먹으면서 어떻게 이렇게 맛있냐고 하면, 대번에 정색을 하고 딴소리를 한다. 비법을 캐러 온 사람 취급을 하는 거다.
우리도 그들 못지않은 자부심이 있다. 바로 땅힘이다. 시중에 나오는 많은 토마토가 수경재배로 만들어진다. 땅에 심는 게 아니라 물과 영양제로 키우는 거다. 토마토뿐 아니라 상추나 고추 호박 등 많은 작물을 수경재배로 한다. 나는 그걸 먹으면 배가 아프다. 몸이 찬 나는 아마도 땅의 따뜻한 기운이 아니라 물의 찬 기운을 받아들이지 못하는 것 같다. 택배로 보낼 물량이 모자랄 때면 다른 집 토마토를 조금 받기도 하는데 수경재배는 절대 받지 않았다. 가끔 속이는 분들이 있지만, 내가 감별사였다. 한 개 먹어보고 화장실로 뛰어가면 남편은 받은 토마토를 그대로 돌려보냈다.
제일 맛있는 토마토는 농사짓는 사람만 먹을 수 있다. 그 자리에서 따서 바로 먹는 게 제일 맛있으니까. 토마토만이 아니라 다른 작물도 다 그렇다. 아무리 비싸게 돈을 준다 해도 절대작물(!)은 농부의 몫이라는 불변의 진리는 극강의 쾌감과 자부심을 안겨준다. 특히 새벽에 딴 토마토는 최고다. 밤새 찬 기운에 시원해져 있고 아침 해가 뜨면서 겉은 살짝 온기가 있는, 붉은 맛(이라고밖에 표현할 길이 없다)이 돌기 시작한 토마토는 수축되었던 과육을 이완하면서 식감이 딱 적당해진다. 아무리 잘 익은 토마토를 따서 완벽하게 포장한다 해도 그동안 식어버리는(식었다고밖에 설명할 길이 없다) 것을 어떻게 할 수가 없다.
아침에 순을 따러 들어가면, 우선 눈에 띄는 빨간 토마토를 골라 서너 개 우적우적 먹는다. 콧노래가 절로 나온다. 순을 다 따고 나면 목마르니까 주스로 갈아서 한잔 마신다. 캬, 탁배기 저리 가라다. 아침밥으로 프라이팬에 두어 개 구워 먹고, 오후에는 계란이랑 살짝 볶아서 먹고, 저녁에는 걸쭉하게 끓여서 올리브 오일 한 스푼과 견과류를 뿌려서 토마토숙(숙이라는 요리법은 찜과 비슷한데, 찜보다는 살짝 익힌다)으로 먹는다. 더우면 묵사발에 툭툭 썰어 넣어 말아먹고, 얼린 토마토를 갈아서 빙수로 입가심한다. 몸보신으로 닭볶음탕에 몇 알 띄워 통째로 넘기면 뱃속이 뜨끈해지면서(혀 데이지 않게 조심해야 한다) 이열치열이 된다. 예전에 남의 밭에서 과실 몇 개 따먹던 재미와는 차원이 다르다.
갱년기 탓인지 몸이 부실한 탓인지 양쪽 어깨가 고장이 났다. 농사를 포기하면서 마지막까지 고심했던 이유는 새벽에 먹던 토마토 맛 때문이었다. 아, 어찌 잊으랴, 그때 그 붉은 맛을. 그래도 욕심내지 말아야 한다. 새벽 토마토는 농부님의 몫이니까. 먹어본 자의 아량이랄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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