에필로그

다음 질문

by 천둥

# 장면 1.

첫째는 백일 지나고 내가 맹장염에 걸리면서 젖을 뗐다. 그때는 백일만 지나면 엄마 젖에 더 이상 영양성분이 없어서 이유식을 먹여야 한다고 그랬다. 육아 책에서도 그랬고 티브이에 나오는 전문가라는 사람들도 그랬다. 둘째는 4살이 넘도록 젖을 먹였다. 이번에도 전문가들이 말했다. 엄마 젖은 아이의 성장에 따라 성분이 바뀐다고. 새로운 연구결과가 나왔다고 했다. 꼭 그런 말 때문에 첫째는 빨리 떼고 둘째는 오래 먹인 것은 아니지만 그래도 전문가들의 말에 마음이 놓인 것은 사실이다. 실은 결혼 전부터 알고 있었다. 사회에 산업예비군이 필요할 때 젖에 별 성분이 없다고 했다가 실업자가 많아지면 아이는 젖을 먹여 키워야 한다고 소리 높인다는 거.

진짜 젖을 떼는 시기는 언제일까? 둘째 때 같이 젖 먹이던 효준이네가 있었다. 거의 매일, 오늘은 우리 집에서 내일은 그 집에서 만나 놀았다. 두 아이는 신나게 놀다가도 한 번씩 엄마에게 달려와 젖을 빨고 다시 가서 놀곤 했다. 그날도 여전히 우리는 함께였고, 두 아이는 마당에서 놀고 우리는 뜨개질을 하고 있었다. 우리 애가 달려와 젖을 빠니까 효준이도 달려오더니 갑자기 멈칫 서서 엄마를 외면했다.

“우리 효준이는 이제 찌찌 안 먹기로 했어.”

효준 엄마가 나를 보며 자랑스레 말했다. 효준이는 엄마 말에 응, 씩씩하게 답하고 휙 돌아 놀던 데로 달려갔다. 젖 먹던 우리 아이도 놀라 고개를 빼고 돌아봤다.

“어젯밤에 효준이가 갑자기 초콜릿을 달라고 떼를 쓰잖아. 그래서 초콜릿이 좋아? 찌찌가 좋아? 물었더니 잠시 망설이다가 초콜릿, 그러더라. 그럼 이제 찌찌 끝, 초콜릿 먹는 아기는 없어, 그랬지.”

단호한 엄마의 말에 효준이가 그 큰 눈망울을 굴리며 진지하게 고민했을 걸 생각하니 웃음이 터져 나왔다. 결국 효준이는 한 손에는 초콜릿을 쥐고 또 한 손으로는 손가락을 걸어 엄마랑 약속했단다. 그날부로 진짜 효준이는 젖을 끊었고 더 이상 아기가 아닌 형아가 되었다. 우리 아이도 당연히 그 수순을 밟았다.

# 장면 2.

첫째가 초등학교에 가면서 따로 방을 마련해주었다. 아빠가 직접 책상을 만들고 공룡 이불로 잠자리를 마련했다. 아이는 몇 번 아빠를 부르더니 금세 혼자 자는데 익숙해졌다.

둘째는 더 어릴 때부터 형이랑 자면서 독립을 하는가 싶었는데 다시 돌아와 엄마 옆에서 잤다. 초등학교에 입학할 때 또 한 번 도전하더니 안 되겠는지 다시 돌아왔고 4학년 때도 도전했다가 결국 돌아왔다. 그때부터 아이는 더 엄마 옆자리에 집착했다. 사람들은 모두 내 일처럼 걱정했다. 잠자리 분리를 왜 안 시키냐고 나를 타박했다.

잠자리 분리가 꼭 필요한 시기는 언제일까. 나는 4학년 때까지 책을 읽어주기도 했고 막내라 예뻐하기도 해서 그런지 굳이 분리시킬 마음이 없었다. 중2 때 어느 날 밤 아이가 말했다. 엄마 나 이제 내 방에서 잘래. 그날부로 잠자리만 분리된 것이 아니라 정서적으로도 완전 분리되었다. 문 닫고 들어가는 시기가 온 것이다. 맨날 쓰담쓰담하던 녀석이 갑자기 곁에 없으니까 옆구리가 허전했다. 충분히, 충분히 안아준 뒤였다.


# 장면 3.

고1 때 아이가 핸드폰을 바꿔달라고 했다. 스마트 폰이 막 나오던 시기였다. 매월 5만 원쯤 더 드는 비용을 모아 졸업할 때 독립자금으로 주기로 했다. 스마트 폰은 따로 해주고. 아이는 꾹 참고 2G 폰으로 버텼다. 졸업식 날, 최신 아이폰을 사고 어릴 때부터 모으던 세뱃돈 통장과 함께 독립자금을 주었다.

어릴 때부터 스무 살이 되면 독립하라는 말을 입에 달고 살았다. 하지만 아이는 독립자금으로 실컷 여행을 다녔다. 지금도 수시로 떠난다. 그러나 돌아온다. 집을 베이스캠프 삼아 여기저기 돌아다니다 집으로 돌아와 제 방을 지킨다.

독립은 언제 하는 걸까. 아이들은 미리 포기한다. 자신들은 부모처럼 집을 사고 가정을 꾸릴 자신이 없다고. 하지만 우리도 그랬다. 우리도 자신이 없었고 못할 거 같았다. 그래도 다들 했다. 우리 아이들도 할 거라고 믿고 싶다. 하지만 당연하게 생각한 독립을 강력하게 밀어붙이지 못하는 이유는 청년의 주거문제가 예전과 비교할 수 없게 어려운 상황이기 때문이다. 그래도 독립은 해야 하지 않을까. 도대체 경제적 독립은 언제 하는 걸까.

# 장면 4.

남편 생일이었다. 작년이던가, 재작년이던가. 첫째에게 이제부터 엄마, 아빠, 할머니, 할아버지 생일을 챙기라고 했다. 둘째와 함께 뭔가 작은 선물을 준비하고 축하하는 일을 맡아서 하라고 했다. 첫째는 아빠 핸드폰 이어폰을 사 왔고 둘째는 핸드폰 케이스를 사 왔다. 남편이 마침 핸드폰을 바꾸었기에 아이들은 고민하지 않아도 되어서 신났다. 하지만 포장을 하거나 생일 파티하면서 선물을 하는 방식이 아닌 그냥 사온 그대로 불쑥 내밀었다. 나는 좀 실망스러웠다. 그래도 남편은 입이 귀에 걸렸다. 고기를 덜어 아이들 접시에 놓아주었다. 언제 우리의 육아는 끝나는 걸까.

언제부터 외박을 허락받지 않아도 되는 걸까. 언제부터 옷을 혼자 사는 걸까. 언제부터 병원 갈 때 따라가지 않아도 되는 걸까. 언제부터 숙제를 챙기지 않아도 되는 걸까. 언제부터 혼자 밥을 먹는 걸까. 언제부터 기저귀를 떼는 걸까...

이런 질문의 산을 넘고 넘어 이제 육아는 끝났다. 더 이상 육아를 하는 시기는 아니다. 분명 육아는 아니지만 진짜 아니라고 할 수는 없는 어떤 단계에 서있다. 어떤 질문을 해야 그 단계를 넘어설까. 남들과 시기는 많이 달랐지만 크게 힘들이지 않고 다음 단계로 넘어왔던 것처럼 이번에도 다음 단계로 잘 넘어갈까. 그러려면 마땅한 질문이 필요하지 않을까. 그 마땅한 질문은 뭘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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