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람들은 자식이 더 이상 내 아이가 아니라는 사실을 언제 깨달을까? 나는 그것을 밤늦은 시간에 아이가 티브이를 보려고 했을 때 깨달았다. 이 시간에 무슨 티브이를 보냐고 야단을 치려는 내게 아이는 나 성인인데요, 라는 눈빛으로 쳐다보았다. 순간 멈칫했고, 소리를 줄여달라고 부탁만 하고 내 방으로 들어왔다.
고등학교 때부터 기숙사 생활을 하던 아이가 집으로 돌아오자, 이전과는 다른, 부모 자식이 아니라 성인과 성인으로서 새로운 관계가 시작되었음을 절실히 느끼게 되었다. 어젯밤에도 아이가 짬뽕밥을 해 먹었는데 야채 좀 넣어서 먹지,라고 한마디 했다가 먹는 중에 잔소리를 하지 말아 달라고 매섭게 말해서 찔끔했다.
찔끔하는 그 기분이 몹시 언짢아서 한참을 생각했다. 무엇이 문제였을까. 생각을 더듬어 올라가 보니, 우리 시어머님의 모습이 보였다. 결혼하지 않은 시누이와 함께 사는데 언젠가부터 시누이 목소리가 자꾸 올라가는 것이다.
얼마 전 명절에는 무릎을 수술하신 시어머님이 온갖 나물을 해놓았다. 절뚝거리며 나물을 한 것부터 시누이는 마음에 안 들었다. 왜 힘들게 그런 걸 하느라고 애쓰냐고 연휴 내내 타박을 했다. 명절이 지나고 집으로 돌아오던 날, 시어머님은 그동안 기름진 걸 많이 먹었으니 비빔밥을 해 먹자고 했다. 시누이는 뭘 먹던 알아서 한다고 곱지 않은 대거리를 했고 밥을 하는 내내 아슬아슬했다. 집에 갈 준비를 다 마친 우리가 거실을 서성거린 게 문제였을까, 어머님은 시누이와 며느리의 느린 손을 기다리지 못하고 다리를 끌고 부엌으로 왔다. 결국 밥 푸는 순간 시누이의 짜증이 터지고 말았다. 어머님이 밥을 푸고 그 위에 나물을 얹어야 하는데 나물을 먼저 넣고 밥을 퍼준 것이다. 이미 식탁에 앉은 우리에게 빨리 주고 싶은 마음 때문이겠지만 깔끔쟁이 시누이는 그런 걸 용납하지 않았다. 잔소리를 퍼붓는 시누이 앞에 선 어머님의 모습이 내 눈에는 영 불편했다.
물론 이런 일이 처음 있는 일은 아니다. 어머님의 방식과 시누이의 방식이 같은 공간과 같은 영역 안에서 부딪히는 걸 자주 본다. 시누이보다 어머님에게 감정이입이 되는 것이 그나마 다행이라면 다행이다. 사실 노인 세대가 있는 집에서는 많이 보이는 모습이다. 하지만 어머님과 시누이 같은 그림이 내 집에서 펼쳐지게 하고 싶지는 않다. 어떻게?지금까지 우리가 살아온 가족의 형태는 이제 그 소임을 다했다는 것을 인정하는 것부터. 아이들은 곧 독립을 할 테지만 지난 형태에 대한 마무리를 지어야 한다. 생애 주기에 따라 가족의 역할을 재설정하는 것이다. 어쩌면 나 또한 가족관계가 달라지고 있는 중임을 받아들이지 못하고 흔히 말하는 꼰대 노릇을 하고 있었는지도 모르겠다. 아직도 잔소리를 하면 아이가 변할 것이라는 생각한 것이 그 방증이다.
오늘 아침, <체리토마토 파이>를 읽다가 멈춰 섰다.
"안부 전화는 별로 중요하지 않다고 생각한 게 잘못이다. 딸이 특별한 용건도 없으면서 어머니 안부가 궁금해 거는 전화가 오히려 중요하고 소중한 거다. 딸이 안부 전화도 걸지 않게 되는 날이 온다면 그거야말로 심각한 문제 아닐까."
주인공 잔은 딸이 전화를 안 받았다고 화를 내자 딸에게 화가 났다가 휴대전화에 화가 났다가 했지만, 결국 딸의 마음을 받아들이고 휴대전화를 꼭 지니고 다니겠다고 다짐한다. 아직 잔처럼 자식의 돌봄을 필요로 한 것은 아니다. 하지만 명백히 돌봄의 관계가 바뀌어갈 것이다.
더 늦기 전에 상호 돌봄을 선언해야 한다. 우리는 이제 일방적인 육아의 시기를 끝내고 상호 돌봄을 시작할 시기다. 같이 밥을 먹는 식구의 개념을 넘어선 지는 오래되었다. 아이들은 각자 필요한 것을 사고 각자 먹고 싶을 때 먹고 싶은 음식을 해 먹는다. 어쩌다 같이 먹더라도 다른 음식을 먹는 경우가 더 많다. 그래서 매우 독립적으로 보이지만 사실은 조금씩 서로에게 기대고 있다. 아이들은 부모에게 주거를 전적으로 기대고 있고 나와 남편은 핸드폰이나 컴퓨터 사용에 대해서, 또는 무거운 짐 등을 아이들에게 기댄다. 성인이 된 아이들이 가족 안에서 새롭게 자신의 자리를 찾을 수 있도록 도움을 청해야 한다. 아직은 직접적인 돌봄을 할 필요는 없지만 더 이상 돌봄을 받기만 하는 대상이 아니라는 것을 자각하도록 일깨워야 한다. 나 또한 아이들이 공동 주인이라는 것을 인정하는 자세를 취해야 한다. 각자가 가족에 대한 책임을 나눠지는 연습을 해야 한다. 그렇게 점차적으로 서로의 보호자가 될 준비를 해야 한다.
공동 생활자로서 어떻게 역할을 재구성할 것인가, 서로 어떤 자리를 발견해 나가야 가족의 재배치가 이루어질 것인가, 이런 고민을 나누는 거다. 이제부터 쓰레기는 네가 버리고 화장실 청소는 당신이 해, 이런 거 말고 집이라는 공간을 꾸려가려면, 함께 사는 삶을 이루어가려면 무엇이 필요한지 같이 구상해내는 일부터 시작해야 한다. 육아는 끝났지만 한 걸음씩 새로운 가족을 구성해나가야 하는 제3의 시기를 맞이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