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금 여기의 사랑

엄마가 되게 해준 한마디

by 천둥


잠든 아이 곁에서 용서를 빌었던 적이 있다. 부족한 엄마여서 미안하다고, 나의 온전치 못한 사랑을 용서해달라고 빌었다.


아이를 낳고 처음 삶의 이유를 깨달았다. 어떤 미사여구로도 설명되지 않는 아이의 눈이 오로지 나를 향해 있는데, 그게 너무 좋았다. 아이의 살결 냄새와 감촉으로 느껴지는 연약한 인간의 완벽한 의존이 마냥 벅차게 행복했다. 하지만 그것은 절반의 진실이다. 힘겨웠다. 너무나 사랑스러웠지만 힘에 부쳤다. 아기 때는 괜찮았다. 감사하게도 그 정도면 잘 잤고 잘 먹고 혼자서도 잘 놀았다. 아이가 커가면서 아이를 상대해줘야 하는 것이 힘들었다. 나도 모르게 멍한 표정이 되었고 때로 짜증을 부리고 이유 없이 화를 내기도 했다.

독박 육아를 하는 엄마의 입장에서 그것은 당연했다. 특히 나는 혼자만의 시간이 반드시 필요한 성격이다. 그런데 혼자 화장실을 가거나 목욕하는 것도 허용되지 않는 상황은 정말 견디기 힘들었다. 그 시절을 용케 지나온 것만으로도 스스로 대단하다고 격려해주고 싶다.

하지만 그것은 엄마 입장이고, 아이의 입장은 달랐다. 항상 자신을 향해 있지만 그 사랑이 무조건적이지 않으니 아이는 힘겨웠을 것이다. 순해야 했고, 예뻐야 했고, 남들보다 빨라야 했다. 좀 더 커서는 똑똑해야 했고, 뭐든 잘해야 했고, 잘 웃어야 했다. 동생이 생기고서는 나눠야 했고 너그러워야 했고 엄마를 도와야 했다. 엄마가 그렇게 말하지는 않았지만 아이는 알았다. 기대에 미치지 못하면 엄마의 눈꼬리가 사나워졌을 테니까.

엄마, 모성에 대해 지나친 환상을 갖지 말자고 하지만, 무조건적인 사랑을 주는 엄마도 있다. 그러기 위해 무한히 노력하는 엄마도 있다. 내 새끼라서가 아니라 내 새끼로 비롯된 사랑의 마음이 커지고 커져서 인간에 대한 사랑으로 이어지는 경우도 많다.

나도 부단히 노력했다. 앞서 말했듯이 아이를 낳기 전까지는 삶의 이유를 몰랐고 인간에 대한 애착도 없었다. 부모가 된 후에야 사람 노릇하게 되었다. 그러니 부모가 된 것을 감사하게 여겼다. 그래도 모자란 인간이라서 그런지 아이는 내게 온전한 사랑을 느끼지 못했다.

아이에게 화를 내고서 아이의 잘못이 아니라 순전히 내 감정 탓이라는 것을 깨닫고 아차 하는 순간들이 쌓여갔다. 돌아서서 미안해하고 후회했다. 아이에게 미안했다. 하지만 또 반복했다. 이러면 안 되는데, 라는 자각을 하지 못한 것은 아니다. 반성하고 변화되기에는 너무 여유가 없었다(고 핑계를 대본다). 그런 내 모습이 거울처럼 비친 것은 동생이 생기고 나서부터였다. 동생을 미워하고 어른들의 눈치를 봤다. 온갖 육아서를 읽고 강의를 들으러 다니고 반성도 했지만 내 태도는 쉽게 변하지 않았고 당연히 아이도 변하지 않았다.

“잘못한 것이 있으면 반드시 용서를 빌어라, 아이는 다 안다.

오랜 잘못이라면 오래 빌어라. 아이가 잠든 다음이라도 괜찮다.”

어느 강의에서 들은 말이 내 가슴에 꽂혔다. ‘잠든 다음이라도’라는 말이 나를 행동하게 했다. 그날부터 아이가 잠들면 아이 곁에서 반성의 시간을 가졌다. 낮에 미처 하지 못한 미안하다는 말을 했다. 아이가 잠들기 전에는 해야 할 일도 많고 하고 싶은 일도 많다가 아이가 잠들고 나면 마음이 느긋해졌다. 잠든 아이를 보고 있으면 내 안에 더 깊은 사랑이 숨어있음을 느꼈다. 그렇게 오래오래 아이 얼굴을 들여다보면서 마음의 평화를 가지는 시간이 좋았다. 기간을 길게 두고 하는 것이 더 효과가 있다고 하니 꾸준히 기도했다.

잘못을 했으면 아이가 깨어있을 때 직접 말하는 것이 낫지 않냐고 할 수도 있다. 당연하다. 하지만 여차하면 아이가 혼란스러울 수도 있다. 사실 제정신으로 아이에게 잘못하는 경우는 별로 없다. 특히 어릴 때는. 너무 힘들고 혼자 해결되지 않는 상황에 처하게 될 때 잘못된 행동을 하게 된다. 판단능력이 현저히 떨어지기도 한다. 그런 정제되지 않은 엄마의 감정을 있는 그대로 아이에게 전달하는 것은 오히려 위험하다. 그러니 아이가 잠들었을 때가 엄마도 아이도 안전하다. 잘못을 반성한다고 하지만 엄마가 변함없이 사랑하고 있음을 전하는 것이 목적이다. 아이가 어릴 때는 엄마와 연결되어 있다는 신호를 자주 느낀다.

3개월쯤 지났을 때였나, 그런 신호가 왔다. 자려던 아이가 나를 바라보면서 말했다. 엄마, 나 이제 괜찮아. 아무 맥락 없는 말이라서 무슨 말인지 처음에는 알아듣지 못했다. 응? 하고 되물었지만 이미 아이의 눈에는 잠이 내려앉아있었다. 지금도 잘 모르겠다. 진짜 내게 한 말이었는지.

설명되지 않고 그냥 느껴지는 것이 있다. 그때도 그냥 느껴졌다. 아이가 이제 괜찮아졌다는 것을. 진짜 나를 용서하고 나의 사랑을 온전히 받아들이기로 했다는 것을.

20여 년이 지난 지금, 다시 아이를 향해 용서를 빌어야 할 것 같다. 아이가 무기력에 빠졌다. 쉬는 시간이 아깝고 자신을 가만히 두지 못한다. 요즘 청년들이 다 그렇다고도 하고 코로나로 인한 답답함일 수도 있다. 하지만 내 탓이 큰 것 같다. 엄마의 온전한 사랑을 받지 못해서 자신을 다그치는 듯하다. 다시 내가 아이에게 욕심을 부렸고 아이에게 지나친 기대를 품었고, 그에 미치지 못했다고 미워했다. 아이가 원하는 것을 위해, 아이가 바라는 것이 되기 위해, 아이가 바라는 삶이니까,라고 했지만 과연 아이만 원했을까. 그 이전에 내가 원하지 않았을까. 아이를 짓누르지 않았을까.

아직도 여전히, 온전히 아이를 사랑하고 있음을 아이에게 전해야겠다. 이제 아이가 커서 그 신호가 전해질지는 모르지만, 못다 한 엄마 노릇을 마저 해야겠다.


여기까지 쓰고 정신이 화들짝 들었다. 내가 다시 엄마 노릇이 하고 싶구나. 갱년기를 보내면서 이제 내 삶을 살기로 해놓고, 되돌아가버렸구나. 살던 대로 사는 거, 그걸 할 뻔했구나.

엄마니까 엄마 노릇이 제일 쉽다. 쉬운 거 말고, 어렵지만 가야 할 길을 가야 한다. 아이는 이제 성인이다. 아이 스스로 살게 두고 나는 나의 삶을 살아야 한다. 어릴 때 했던 방식을 다시 반복하지 말아야 한다. 아이에게 기대하는 나의 마음을 끊어내야 한다. 아이가 내 탓을 하게 두지 말고 자신의 삶을 스스로 책임지게 해야 한다. 그게 지금의 사랑법이다.

정신 바짝 차리자. 여차하면 되돌아가는 회귀본능에 굴하면 안 된다. 역시 글쓰기를 잘했다. 가슴을 쓸어내린다.

keyword
이전 11화당신이 아니었다면