엄마가 되게 해준 한 마디
부끄럽게도 아들놈이 이준석을 지지한다고 한다. 특정 정치인을 거론하고 싶지 않았지만 내용상 밝히지 않을 수가 없다. 요즘 대세가 그렇다고는 하지만 아들놈의 지지 이유를 들어보니 어찌나 못나고 피해의식으로 가득한지 한심하기 짝이 없다. 어디서 주워들은 이야기들을 다 자기 생각인 줄 착각하는 것 하며 기울어진 세상은 바라보지 못하고 내 몫이 아닌 것들조차 남이 갖는 꼴은 보기 싫다고 떼를 쓰는 걸 보니 기가 막혔다. 자식은 내 마음대로 안 되는 거라고 하지만 어쩌다 저렇게 되었나, 내가 그리 키웠나 돌아보느라 잠을 이루지 못했다.
내 마음대로 안 되는 바로 그 부분을 거울처럼 생각해야 한다고 한다. 나의 어떤 부분이 저런 태도를 보였나 돌아보고 또 돌아본다. 하지만 도대체 어떻게 해야 할지 무엇을 해야 할지 모를 때가 많다. 가슴을 쥐어뜯으며 내 탓이요를 한다. 아무리 생각해도 방도가 없다. 이제 다 키웠다 생각했고 나름 잘 키운 것 같다고 마음을 놓았는데, 이렇게 또 뒤통수를 친다.
이번뿐이랴. 잠시 잊었을 뿐 자식은 수시로 그랬다. 설마 내 새끼가 그럴 리가 하는 순간 설마보다 더한 짓을 한다. 부모는 억장이 무너지는데 저 혼자 뺀질뺀질 웃는다. 당신이 나를 그렇게 키웠잖아, 하는 표정으로.
바로 이럴 때, 나를 살린 말이 있다. 가슴치고 내 탓 이요를 한 게 처음이 아니니까. 아니, 잊을 만하면 한 번씩 반복되고 그때마다 다시 그 말을 떠올리며 겨우 바닥에서 기어오른다.
“당신이 아니었다면 더했을 것이요.”
다행히 나를 엄마로 만나 그 정도만 된 거라고 한다. 더할 수 있는데 내 덕이라 한다. 그러니 내가 잘 보듬어주어야 한다.
어디서 누구에게 들었는지는 모르겠다. 수많은 육아서나 부모교육 중의 하나일 것이다. 한두 번도 아니고 수시로 들었을 것이다. 부처님 말씀처럼 귓전에만 떠돌던 그 말이 내 마음에 와닿은 어느 순간이 있어주어 고맙다.
그 말에 마음을 여는 순간 지옥 같던 부모라는 감옥 문이 철컹 열렸다. 굳게 닫혀있던 철문을 열기 위해 손을 뻗었다. 끼익 녹슬고 비틀어진 소리는 났지만 생각보다 손쉽게 철문은 열렸다. 밖으로 발을 내딛자 파란 하늘과 햇살이 비쳤다. 다시 평온한 내 집이다.
자식이 마음에 안 드는 순간이 어디 한두 번이랴. 그때마다 나를 탓하고 내 육아법을 돌아보느라 자존감이 끝도 없이 나락으로 떨어졌다. 수시로 반성하고 자책하다 보면 나도 모르게 아이를 탓하게 되고 아이도 나도 같이 불행해졌다. 그나마 나를 만나 다행이지 라고 생각하게 되면서부터 나의 한없는 포용력이 스스로 기특하고 지금도 충분히 잘하고 있다는 위로가 가능해졌다. 엄마 된 자에게 가장 필요한 건 위로와 지지가 아닐까. 누군가의 위로와 지지도 필요하지만 스스로 해줄 수 있는 위로와 지지가 진짜 힘이 되지 않을까.
신기하게도 위로를 하고 나면 내 새끼 문제였던 그것이 내게 떨어진 문제로 느껴지는 게 아니라 동시대 우리 부모들에게 주어진 과제처럼 느껴지는 측면이 있다. 내 잘못이 아니라, 내 아이만의 잘못이 아니라 시대적 과제로 시야가 확장된다는 말이다. 그래서 내 아이를 닦달하는 게 아니라 교육 전반의 측면에서 문제가 무엇인지 객관적으로 바라보게 된다.
다시 지금, 그 말이 내게 위로와 지지가 되어주려나, 또 매달려본다. 더한 놈이 내게 와서 이준석을 지지하는 놈이 되었다. 나를 만나 다행히 그저 혼자 지지하는 수준으로 그친 거다. 내게 와서 요즘 대세를 지지하다가 아차, 그게 아니었구나 다시 깨닫게 될 거다...
아니 이건 욕심이다. 좋아지리라 기대하지 말자. 현재 상태를 받아들이는 것까지만 하자. 내게 와서 그냥 보통의 요즘 애들 중 하나가 된 거다. 그리고 내가 할 일은 아들놈 생각을 바꾸려 애쓰는 게 아니라 정치를 제대로 비판하고 기성세대의 한 사람으로서 제대로 반성해야 하는 거다. 그래. 그거다.
그렇다면 우리 시대가 이준석 현상을 딛고 넘어가야 한다는 말인데... 아, 어째 그냥 넘어가는 게 하나도 없냐. 이게 부모란 말인가.
자식은 부모가 뭘 어떻게 해도 안 될 때가 많다. 그냥 겪어야 한다. 있는 그대로를 인정해야 한다. 잘 키워야 하는 건 맞지만 부정해서는 안 된다. 거기서부터 시작이다.
나도 이제 인정하자. 못난 자식 내가 잘 품어주자. 자식은 평생 자식이니까. 다 키웠다고 너무 방심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