파전을 하다가 울었다
집 근처 시장에서 세일하는 쪽파를 잔뜩 사 왔다. 저렴해서 그런지, 쪽파라는 것이 원래 그런지, 반나절 만에 시들해졌다. 빨리 요리를 해야겠다고 마음먹었다. 예전부터 할 줄 아는 전이라고는 김치전이 전부여서 파전을 도전해보고 싶었다.
집에 얼마 남지 않은 부침가루를 탈탈 넣고 건새우도 넣었다 반죽의 비주얼은 완전히 인터넷에 나오는 사진들과 같았다. 부침가루가 부족한 것 같고, 파가 더 많은 거 같지만 뭔가 적극적으로 부침가루를 사온 다던지의 보완할 의지가 생기지 않았다.
슬픈 예감은 틀리지 않는다, 지금이라도 뭘 더 넣거나 빼면 낫지 않을까? 프라이팬을 바꿔볼까? 하지만 파전은 점점 죽처럼 변해갔고, 나는 이내 그럴 줄 알았다는 생각에 무기력해졌다. 뭐가 잘못됐는지 알 것 같지만, 고쳐볼 의지는 없었다
불을 끄고 침대에 드러누웠다. 훌쩍 눈물이 났다. 겨우 파전 하나 망친 걸로 울다니 이상한 거 안다. 하지만 내 마음은 고작 파전 하나가 아니었다.
회사 평가 기간이었다. 나는 평가를 받을 만한 위치에 있었고, 평가지를 받았다. 처참했다. '소통부족', '자질 없음', '더 나은 결과 기대' 숫자는 없었지만 내 기준에선 평가지에 쓰여있는 나에 대한 피드백은 0점이나 마찬가지였다. 지난 한 달간 약도 잘 먹고 운동도 잘하고 매일매일이 안정적이었다. 나의 불안과 우울과 잘 지내고 있다고 생각했다. 그 평가지 하나로 나는 바로 녹아내려버렸다.
평가지는 절대 나라는 사람의 전체 평가가 아니다. 나의 일에 대한 평가다. 나는 수백 가지의 나로 이루어져 있고 그중에 하나를 평가받은 거뿐이다. 절대 나 자체를 부정해서는 안된다.
이 내용을 분명 상기하고 피드백을 읽었음에도 나는 감정이 분리가 잘 되지 않았다. 평가지를 받고 나서부터 삼일, 그 피드백에 매몰되지 않기 위해 더 운동을 하고 웃는 일을 억지로 만들어냈다. 쉽게 우울해하지 않으리라 불안하지 않으리라 우울과 불안을 참기 위해 노력했다. 그래도 내 마음의 골짜기는 걷잡을 수 없을 만큼 깊어져갔다.
피드백 문구의 문장, 단어, 자음과 모음까지 계속 떠올랐다. 소통, 부족, 나의 실수에 대한 어떤 일화들. 점점 억울했고 화가 났다. 나 정말 이거밖에 못했나? 내가 지난 1년간 열심히 한 건 누구보다 내가 더 잘 알았다. 그런데 어떻게 이런 평가를 할 수가 있지? 너희들이 뭘 안다고?
개선할 점을 캐치하고 그걸 앞으로의 업무에 잘 반영해서 더 나은 결과를 만들면 된다. 피드백 문화라는 게 나쁜 건 아니다, 나도 사람들에게 종종 피드백을 한다. 하지만, 하지만....
억울함에서 나는 눈물은 펑펑이 아니라 찔끔이다. 눈물이 찔끔 거린다. 내 눈물에 베갯잇이 젖어간다.
망한 파전도 망할 나의 피드백도 뜯어보면 분명 개선할 점이 있건만 그걸 하고자 하는 의지가 쉽게 생기지 않았다.
고작 파전하나 못하는데, 내가 앞으로 뭘 할 수 있을까. 그리고 계속 이렇게 힘든 일 투성이여야 할까?
사는 게 너무 고됐다. 고통이라는 것은 인생 그 자체라고 말하는 니체 등의 철학자들도 21세기 서울의 직장인이 아니기 때문에 쉽게 말한 것이 분명했다.
남편이 안방에서 어린아이처럼 우느라 요리를 중단한 나를 불렀다. 거실로 눌린 머리 상태로 비적 거리면서 나오니, 남편이 내가 시작한 요리를 마무리해둔 것이 보였다. 파전은 서브였고 메인요리는 양배추와 팽이버섯, 대패삼겹살을 냄비에 쪄내는 요리였다 죽과 같았던 파전은 남편이 어떻게 했는지, 노릇하게 구워진 상태로 접시에 올라가 있었다.
내가 훌쩍이면서, 어떻게 했냐니까 중간 불로 프라이팬을 바꿔서 더 오래 부쳤다고 했다.
남편이 고친 파전은 겉은 바삭했지만 한 입 베어 물자 짠맛이 밀려왔다 남편이 당황하며 소금인가? 나는 아까 내가 소금을 넣었나, 안 넣었다도 가물거렸다. 갑자기 문득 소금을 한 스푼 거침없이 넣었던 내 모습이 떠올랐다. 어이가 없어서 웃음이 났다. 파전의 문제가 한두 개가 아니었던 것이다.
우리 엄마가 반죽도 간을 봐야 한다던데 이래서 그런 말을 했나 봐. 남편의 말에 나는 고개를 끄덕거렸다.
그러게 다음부턴 나도 그렇게 해볼게.
밥을 다 먹고 소파에 쪼그려 앉아 나는 남편과 한참을 나의 억울함과, 두려움, 슬픔 불안함에 대해 토로했다. 나의 다정한 남편은 내 마음에 충분히 공감해 줬고 본인이 해줄 수 있는 조언을 최대한 해주었다.
나는 남편에게 내 마음을 허리케인이 지나간 미국 서부의 어떤 집과 같다고 비유했다. 다시 자연재해에 잘 무너지지 않을 집을 지어야 하는 것은 맞지만 무너진 집을 황망하게 바라보는 시간도 어느 정도 필요하다고 말했다. 그전까지는 충분히 슬퍼하고 우울해하는 것도 나를 지키는 방법이라고 생각했다. 그래야 무너진 나의 마음도 다시 지을 수 있다고 말했다.
다음의 파전은 부침가루를 충분히 넣고 소금은 약간만, 프라이팬은 코팅 프라이팬에 하면 된다.
하지만 당분간은 파전은 쳐다도 보기 싫으니 나의 허리케인이 조금 잠잠해보면 그때는 반죽부터 소금양까지 다시 천천히 바삭하게, 시도해 볼 생각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