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변호사님, 명예훼손으로 고소합니다!"

네? 제가요? (feat. 우리 법무팀에선 내가 최초!)

by 산뜻한

모든 사건은 개인이 특정되지 않도록 각색되었고, 이를 위하여 내용 중에 허구가 가미되어 있습니다.



여러분, 제가 사내변 시절 겪었던 황당무계하고도 아찔했던 에피소드 하나 풀어볼까 합니다. 이건 뭐랄까, '내가 변호사인데 나를 고소한다고?' 싶은, 전국 최초 타이틀까지는 몰라도 저희 법무팀에서는 단연코 제가 최초로 겪은 일이라 자부합니다. (아닐 수도 있지만 그만큼 흔치 않다는 얘기!)


때는 바야흐로 제가 한창 패기 넘치던 사내변으로 근무하던 시절. 저희 회사는 상습적으로 요금을 미납하는 골칫덩어리 고객 때문에 골머리를 앓고 있었습니다. 수차례 독촉에도 요지부동. 결국 법무팀 막내였던 제가 이 '미납금 회수 프로젝트'의 선봉에 서게 되었습니다.


민사소송, 그거 뭐 별거 있겠습니까? 증거는 차고 넘쳤고, 저는 회사의 직원으로서 '소송대리허가'를 받아 당당하게 소장을 접수했습니다. 이때까지만 해도 저는 제가 일개미 직원인 줄만 알았을 그 고객이 설마 저를 상대로 칼을 빼 들 줄은 꿈에도 몰랐죠.


얼마 후, 회사로 우편물 하나가 날아들었습니다. 뜯어보니... 두둥! 형사고소장이었습니다. 피고소인 산뜻한 (네, 접니다). 죄명은 '명예훼손'. 순간 눈앞이 캄캄해지면서, '이거 우리 법무팀 역사상 최초의 사건 아닌가?' 하는 황당한 생각이 스쳤습니다. "아니, 이 양반이 지금 뭐라는 거야? 내가 뭘 어쨌다고?"


고소 내용은 가관이었습니다. "하지도 않은 일(요금 미납을 의미하는 듯)로 소송을 제기하여 자신의 명예를 심각하게 훼손했다"는 것이었죠. 아마도 제가 소송을 제기한 사실 자체를 자신의 명예를 깎아내린 행위로 본 모양입니다. 그리고 결정적으로, 제가 '변호사'라는 사실은 전혀 몰랐던 것 같았습니다. 그저 회사 직원 하나를 귀찮게 한다고 생각했겠죠. 만약 변호사가 정당한 직무 집행으로 소송을 제기한 것을 명예훼손으로 걸면 어떤 결과가 초래될지는 상상도 못 했을 겁니다.


"이거 봐라?" 헛웃음과 실소가 번갈아 터져 나왔습니다. 동시에 오기도 생기더군요. '그래, 법이 뭔지 제대로 한번 보여주지!' 저는 밤샘 작업을 불사하며 스스로를 위한 변호인 의견서를 작성하기 시작했습니다. 마치 수능 전날처럼 초인적인 집중력을 발휘하며, 판례와 법리를 뒤져가며 대서사시를 완성했죠. 거의 뭐 논문 수준으로다가... (제 동료 변호사들이 그걸 보더니 혀를 내둘렀습니다. "야, 너 자신한테 이렇게까지 진심일 일이야? 우리 법무팀에서 변호사가 피고소인 돼서 직접 의견서 쓴 건 네가 처음일 거다!" 라고 말이죠.)


이 황당한 형사고소 사건은 진행 과정에서 자연스레 제가 진행하던 민사소송 재판부에도 알려졌습니다. 그리고 나중에 민사소송 판결문을 받아보니, 아니나 다를까, 그 고객이 저를 명예훼손으로 형사고소했다는 사실이 '기타 참고사항' 비슷하게 몇 줄 언급되어 있더라고요. 판사님도 얼마나 어이가 없으셨을까요. (속으로 '변호사를 고소하다니, 용감한 건지 무모한 건지...' 하셨을지도 모르겠습니다.)


결국 그 형사고소 건은 당연히(?) 잘 마무리되었지만, 그 과정에서 저는 정말이지 사내변으로서 겪을 수 있는 온갖 희귀한 경험치를 풀로 채운 기분이었습니다. "저, 혹시... 우리 법무팀 최초 변호사 피고소인... 뭐 이런 타이틀 달게 되는 건가요?" 하면서 동료들과 농담을 주고받았던 기억이 새록새록 하네요.


이 사건을 통해 저는 다시 한번 깨달았습니다. 세상은 넓고 별의별 사람은 다 있다는 것, 그리고 변호사라고 해서 항상 안전지대에 있는 것은 아니라는 것을요. 물론, 그때의 경험은 지금 로펌 변호사로 일하는 저에게 아주 값진 자양분이 되었답니다. 왜냐고요? 어떤 황당한 고객을 만나도 "음... 그 정도쯤이야..." 하고 웃어넘길 수 있는 강철 멘탈을 장착하게 되었거든요!


여러분, 혹시 더 듣고 싶은 저의 사내변 시절 에피소드가 있다면 언제든 말씀해주세요. 아직 풀지 못한 보따리가 많답니다! (웃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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