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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윤경민 Sep 22. 2019

소설 2045년
21. 두목 공나석의 최후

한일전쟁 미래소설 2945년

21. 두목 공나석의 최후


3천여 명의 사상자를 낸 총독부 앞 시위 진압 후 일본 열도 내 민심은 더욱 악화되어갔다. 방사능 해독제를 한국인들에게만 지급했던 데 대한 불만과 더불어 잔인하게 무력으로 시위를 진압한 데 대한 일본인들의 불만이 하늘을 찌를 듯했다. 야쿠자 사이에서도 반한 감정이 심화되기 시작했다. 나석이 파에게 조직을 내어준 후 사업권의 태반을 넘겨줬을 뿐 아니라 그로 인한 수익 감소로 조직을 운영할 기반이 약해졌기 때문이다. 그런데다 같은 동포들을 죽이라는 명령까지 받자 저항이 커질 수밖에 없었다.
공나석은 자신이 아끼던 이한식이 니시마 타다오의 칼에 죽었다는 사실을 보고받고 치를 떤다. 


"니시마 이 새끼가~ 결국 야마구치 놈들을 다 없애버려야겠어. 영욱아!"


"네, 회장님!"


"네가 니시마의 목을 베어서 가져와야겠다"


"네, 회장님"


넘버 2 한영욱이 조직원들을 급히 소집했다. 총독부 앞 살육전에서 부하들을 꽤 잃은 한영욱은 소수 정예부대로 작전팀을 꾸렸다. 목표는 니시마 타다오, 야마구치구미 넘버 3. 한때는 나석이 파와의 평화 공존을 주장하며 대결을 피해야 한다고 직언했던 인물이었다. 그랬던 그가 이한식의 목에 칼을 꽂았다. 


한영욱 일당이 요쯔야 산쵸메(도쿄시내 지명) 복집에 들이닥쳤다. 니시마 타다오와 부하들이 다다미방에서 게이샤(일본 기생)들을 옆에 낀 채 복어회 요리와 함께 구보타만쥬(일본의 고급 청주)를 즐기고 있던 때였다. 가게 앞을 지키고 있던 니시마의 부하들이 먼저 하나둘씩 제거된다. 아라빅 칼과 체인, 도끼 등으로 무장한 한영욱 일당은 복집 좁은 복도를 바람처럼 휩쓸며 촘촘히 서서 경계하던 야쿠자 꼬붕 등을 순식간에 쓰러뜨린다. 우당탕.. 챙챙.. 퍽.. 비명이 섞여 들리며 올 것이 왔구나 생각한 니시마가 측근 부하들 몇 명의 보호를 받으며 뒷문으로 줄행랑을 친다. 신발도 신지 못한 채 다다미방을 빠져나와 내부 정원을 거쳐 주방으로, 그리고 음식 창고, 그 뒷골목으로 빠져나가는 문을 열어젖히고 튀어나간 순간.
검은 양복 차림, 짙은 선글라스를 낀 한영욱이 양 옆구리에 손을 얹은 채 니시마를 노려본다. 흠칫 놀란 니시마가 안주머니에서 잭나이프를 꺼낸다. 니시마의 부하들은 잽싸게 그를 감싼다. 


"야, 니시마! 넌 내 동생을 죽였어. 우리 조직에서 배신은 어떤 대가를 치러야 하는지 너 정도 되는 놈이 모를 리 없을 텐데, 마지막으로 묻자. 이유가 뭐냐?"


오금이 저린 니시마가 떨리는 목소리로 답했다.


"우리도 대한민국 국민 대접을 받고 싶었습니다. 하지만 총독부는 우리를 개돼지 취급했고 이한식은 이에 항의하는 우리 일본 사람들을 죽이라고 했어요. 도저히 받아들일 수 없는 요구였어요. 제발 목숨만은 살려주세요"


울음 섞인 목소리로 읍소하듯 읊조리던 니시마가 무릎을 꿇는 척하다가 돌연 한영욱을 향해 칼을 휘두른다.
순간


 "탕!"


한영욱의 권총이 불을 뿜는다. 


탄환은 니시마의 심장을 뚫었다. 머리를 바닥에 꽂으며 쓰러진다. 니시마 주변에 있던 야쿠자 3명은 얼음장처럼 굳어버렸다. 한영욱의 부하들 중 한 명이 그 세명에게 잇달아 도끼를 내리치며 피바다로 만든다. 도끼를 건네받은 한영욱은 쓰러진 니시마의 목을 수차례 내리치고 동강난 머리채를 잡아 올린다.


그날 저녁 공나석 집무실


"회장님! 여기 니시마 타다오의 머리를 가져왔습니다"


한영욱이 상자를 열더니 니시마의 머리를 들어 올린다. 


"수고했다." 


만족스러운 표정으로 니시마의 머리를 쳐다본 공나석이 테이블 대각선 방향에 무릎 꿇고 앉아 있던 야마구치 히데오를 향해 나즈막히 말한다.


"야마구치 히데오. 배신하면 어떻게 되는지 똑똑히 봤겠지. 너는 이번 일이 너와는 상관없이 이뤄진 거라고 말하지만 어차피 너나 니시마나 쪽발이야. 쪽발이 새끼들은 믿을 수가 없거든. 도대체가 신용할 수가 없단 말이지. 어떻게 내 신뢰를 얻겠는지 네 입으로 말해봐"


"회장님! 제가 죽으라면 죽는 시늉이라도 하겠습니다. 제가 조직관리를 제대로 하지 못해 일어난 일이니 제가 모든 책임을 지겠습니다. 회장님 신용을 얻기 위해 제 손가락 하나를 더 자르겠습니다"


야마구치 히데오는 이미 손가락 하나를 잘라 바친 적이 있다. 나석이 파의 일본 진출 직후 부도칸 대결에서 깨끗이 패배를 인정하고 왼손 새끼손가락을 스스로 잘라 공나석에게 바쳤던 그가 이번엔 오른손 새끼손가락을 테이블에 올려놓았다. 나머지 네 손가락은 모두 접고 왼손에 잭나이프를 쥐었다. 


"쓱"


질겅질겅 새끼손가락 두 마디가 잘려나가고 피가 테이블에 흥건히 고인다. 


"회장님! 믿어주십시오"


"히데오! 이번 일은 그냥 넘어가지만 다음엔 네가 배를 갈라야 할 것이야"


"네, 회장님!"


나석이 파와 야마구치파의 총독부 앞 살육전과 그에 따른 처분은 이것으로 마무리됐다. 적어도 겉으로는 그렇게 보였다. 하지만 사실 곪을 대로 곪은 것이 터진 것이었고 균열은 메워지지 않았다. 부하들 간의 갈등의 골은 점점 깊어갔고 그러는 사이에 야마구치파 내부에서 공나석 암살 계획이 자라나고 있었다.


한 달 후 신주쿠교엔
화창한 가을 날씨에 야외 결혼식이 성대하게 치러지고 있었다. 이지국 총독의 아들이 천황의 큰 딸을 배필로 삼는 날이었다. 두 사람의 결혼은 정략결혼이었다. 대지진과 원전 폭발, 방사능 해독제 문제로 일본인들의 민심이 흉흉한 가운데 급히 정해진 결혼이었다.
야마구치 히데오가 손가락 네 개로 와인병을 들어 공나석의 잔에 따른다.


"회장님, 총독님의 아드님과 천황의 따님이 결혼을 하시니 이제 명실공히 한일 국민이 한 국민이 되는 통합되는 거군요"


공나석이 받았다.


"우리 세계도 마찬가지 아닌가? 이제 잘 다스려야지"


관현악단의 연주 속에 피로연의 분위기가 서서히 무르익기 시작했다. 결혼식 스태프로 보이는 한 청년이 공나석에게 다가가 귀엣말을 한다.


"총독님께서 잠시 뵙자고 하십니다. 10분 후에 저쪽 프랑스 정원 쪽으로 가시면 됩니다"


공나석이 이지국 총독과 몇 차례 만나 인사한 적은 있지만 이렇게 따로 보자는 건 처음이었다. 


"총독님이 보자시네, 무슨 일이지? 잠시 다녀올 테니 마시고 있어?"


"네 회장님! 제가 모시겠습니다."


같은 테이블에 있던 야마구치 히데오와 한영욱이 예를 갖추며 따라나선다.
신주쿠교엔 프랑스정원에 도착한 공나석이 총독을 기다렸다.
낙엽이 하나씩 떨어지는 가운데 주변에는 아무도 없었다. 결혼식 피로연에서 잔치를 즐기는 모습이 멀찌감치 보였다. 머리가 조금 어지러운 듯 공나석이 한 쪽 손으로 벤치 등받이를 짚고는 다른 한 손으로 머리를 만진다. 시야가 뿌옇게 변하는 느낌이다. 기운이 빠진다. 한영욱도 눈앞이 핑 도는 느낌이다. 졸린 듯 눈꺼풀이 내려앉는다. 그때 복면을 한 10여 명이 갑자기 어디서 나타났는지 모르게 공나석과 한영욱을 에워싼다. 그 복면 사내들 사이에서 야마구치 히데오가 이빨을 드러내며 미소를 짓는다.


"회장님, 와인을 좀 많이 드셨나 봅니다"


"총독님은 안 오시고 저놈들은 뭐야?"


"고레마데 오쯔까레. 키미와 모우 신데모라우죠. 고레까라와 와시가 고노소시키오 시하이사세떼모라우"

(지금까지 수고 많았어. 이제 당신은 죽어줘야겠어. 지금부터는 내가 이 조직을 지배하겠어)


돌연 눈을 부릅뜬 야마구치가 일본어로 공나석에게 내뱉는다. 그리고는 그의 뒤에서 왼팔을 목에 감고 돌린다. 오른손을 공나석의 눈앞에 대고.


"고레오 미로. 키미니 와시노 고유비오 사사게딴자나이. 와시노 소코쿠, 다이닛뽄노 타메니 사사게딴다"
(이걸 봐, 단신을 위해 내 손가락을 바친 게 아니야. 내 조국, 대일본을 위해 바친 거라고)


한영욱은 당했다고 생각했지만 몸이 말을 듣지 않는다. 복면을 한 놈 2명이 한영욱의 양팔을 붙들고 다른 한 명은 뒤에서 목을 조른다. 


야마구치의 팔이 점점 공나석의 목을 조여간다. 아까 마신 와인에는 졸피뎀이 섞여있는 줄 공나석은 알아차리지 못했다. 야마구치가 몰래 넣었던 졸피뎀의 효과가 서서히 나타나기 시작했던 것, 공나석은 아무 힘도 쓰지 못한 채 숨이 조여오고 눈이 감겨가면서 죽음을 맞이해야 했다. 한영욱도 곧이어 숨을 거둔다.


야마구치 히데오는 그렇게 공나석과 한영욱을 제거하고 나석그룹 회장 자리를 노린다. 한국 폭력조직인 나석이파의 꼬붕 노릇을 해왔던 야마구치 히데오가 다시 일본 열도의 찬란했던 야쿠자의 역사를 새로 써야겠다는 각오를 다진다. 야쿠자의 독립을 넘어 일본의 독립까지 꿈꾸며 총독부 앞 시위 주동자였던 나가노 유키오와 손을 잡게 될 줄은 아직 모른 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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