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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Jaro Feb 28. 2021

10. Can I join you?

늦깎이 캐나다 유학생의 그룹 프로젝트

  캐나다 유학생활의 두 번째 학기가 시작되었다. 언어와 문화, 그리고 나이의 장벽으로 그렇게 친하게 지냈던 친구는 없었지만, 크리스마스 휴일을 보내고 같은 과정의 친구들을 다시 만나니 정말 반가웠다. 오랜만에 다시 만난 학생들은 삼삼오오 모여 저마다 크리스마스 휴일을 어떻게 보냈는지 이야기하며 웃음꽃을 피우고 있었다. 나도 주변 학생들과 인사를 하고 휴일 동안 그냥 집에서 푹 쉬면서 시간을 보냈다고 이야기했다.

 

  그러고 보니 그때까지 나의 사생활에 대해 친구들과 이야기를 나눈 적이 없었다. 친구들은 내가 얼마 전에 캐나다에 온 것도, 자신들보다 나이가 훨씬 많은 것도, 캐나다에서 살아남기 위해서 고군분투하고 있다는 것도 전혀 몰랐다. 말이 나온 김에 나는 나의 이야기를 친구들 앞에서 한참 떠들었다. 한 학기를 지내고 나니 영어실력은 몰라도 말하기에 대한 자신감은 좀 늘었던 것 같다.

 

  친구들은 나의 이야기에 놀라는 눈치였다. 나이가 많은 것도, 그 나이에 캐나다로 와서 다시 공부를 시작한 것도 신기해했다. 한 친구는 영어는 어떻게 배웠는지 물었다. 순간 자격지심에 "어떻게 그런 수준의 영어로 석사과정에 들어올 수 있었냐?"는 질문으로 들렸다. 나는 당황하며 설명을 했다. 캐나다 석사과정에 들어오기 위해서 영어 시험공부를 열심히 해서 시험 점수를 따고, 캐나다에 와서는 어학원도 다녀서 이 과정에 입학할 수 있는 자격을 취득했다고 말했다. 그 말을 들은 친구는, 본인은 할 수 있는 외국어가 없다며, 캐나다 온지도 얼마 되지도 않았는데 그렇게 영어를 하는 게 대단하다고 했다. 마음속으로는 영어를 배우기 시작한 지 거의 30년이 다 되어가는데 아직 이 정도밖에 못하는 내가 부끄러웠지만, 


외국어를 하나도 못하는 원어민들 앞에서
영어를 좀 못한다고 기죽을 필요는 없겠다는 생각이 들었다.


  친구들과의 대화를 통해 학교와 과에 대한 소속감이 커졌다. 사실 첫 학기 때는 스스로를 다른 학생들과 다르고 어울릴 수 없다고 단정 지었던 것 같았다.


  친구들과의 대화가 한참일 때 교수님이 강의실로 들어오셨다. 간단히 자신과 과정에 대한 소개를 하시고는 몇 가지 주제를 던져주셨다. 원하는 주제별로 자리 이동을 했고, 같은 주제를 선택한 학생들 중 4명이 모여 하나의 그룹을 만들고 한 학기 동안의 프로젝트를 기획하라는 것이었다. 첫 학기 때도 그룹 과제가 있긴 했었지만 수업 첫날부터 그룹으로 시작해서 최종 프로젝트 결과 발표까지 그룹으로 진행하는 것은 처음이었다.


  같은 주제를 선택한 학생들은 저마다 이미 친한 친구들과 금세 그룹을 만들어 회의를 시작했다. 나는 그 분주한 분위기를 혼자 멀뚱멀뚱 지켜보다가 3명이서 회의를 하고 있는 그룹을 발견하고 용기를 내어 그중 한 명에게 물어보았다. "Can I join you?" 하지만 돌아온 답변은 자기 친구가 오늘 수업에 오지 못했는데, 그 친구와 같이 할 거라는 것이었다. 중국 유학생으로 보이는 학생들이 모여있는 것을 발견하고, 나름 좀 덜 부담스러운 마음에 다가가 다시 물어보았다. "Can I Join you?". 그들도 이미 같이 할 친구가 있다며 거절했다.

퇴짜를 맞을 때마다 미안하다고 하며 머쓱한 모습으로 발걸음을 돌렸다.
별것 아닌데 왜 그리 내가 초라하게 느껴지던지,
그리고 쓸데없이 왜 미안하다고 한 건지 모를 일이었다.


  결국 소속될 그룹을 찾지 못하고 배회하고 있는데, 수업 시작 전에 이야기를 나누던 친구가 그룹을 못 찾았으면 같이 하자고 말했다. 그 그룹은 이미 4명의 학생으로 구성된 것으로 보였는데, 알고 보니 한 친구가 다음 시간부터는 다른 반으로 옮긴다는 것이었다. 나는 흔쾌히 그 그룹으로 들어가기로 했고 먼저 제안해준 친구가 정말 고마웠다.


  두 번째 학기의 첫 수업부터 소속될 그룹을 찾느라 고생했는데, 그것은 시작에 불과했다. 2학기 수업의 대부분은 그룹 프로젝트로 진행되었다. 그룹 프로젝트는 여러 가지로 마음에 들지 않는 부분이 많았다.

첫째로 다른 학생들과 나 사이엔 언어, 문화, 나이의 장벽이 있어서 원활한 토론이 이루어지기 힘들 것 같았다. 한국에서의 대학시절에도 그룹으로 과제를 같이 하는 건 좋아하지 않았었는데, 이렇게 더 불리한 상황에서의 그룹 프로젝트는 시작하기도 전에 난항이 예상되는 일이었다.


  둘째로 그룹 프로젝트에서는 학생들끼리 멤버들을 상호 평가하는 부분이 큰 비중을 차지했다. 첫 학기 때 나를 잘 봐주시고, 학점도 잘 주신 교수님 수업 위주로 수강을 했는데 계획에 차질이 생겨버린 것이다.

셋째로 내가 다른 멤버들에게 민폐가 되지 않을까 하는 걱정이 들었다. 나름 열심히 하겠지만, 노력하는 과정과는 상관없이 결과가 다른 멤버들을 만족시키기 어려울 것 같았다.


하지만 그룹 프로젝트를 수행하며, 여러 가지 유형의 친구들을 만나고 그들을 통해 많은 걸 배우고 느낄 수 있었다. 그 친구들 덕분에 다행히 걱정했던 것보다는 큰 문제없이 두 번째 학기에서도 살아남을 수 있었다.


Project 1 칭찬해주는 친구

  매주 프로젝트 진척 상황과 소주제에 대한 발표를 하는 수업이 있었다. 발표 분량을 나누어서 진행하는데, 나는 직장 생활할 때 보고 방식으로 프레젠테이션 자료를 준비하고 스피치 연습을 했다. 어차피 미사여구를 붙여서 근사하고 길게 발표하기는 힘들었기에, 간단명료하되 뭔가 독창적인 부분을 가미하여 준비하게 되었다. 몇 번의 발표를 한 후 프로젝트 중간 점검을 위한 중요한 발표를 준비하던 중 한 친구가 나에게 문득 이런 말을 하는 것이었다. 

"나는 너의 발표 방식이 좋아. 너는 내가 정말 좋아하는 발표자야"


  물론 나는 최선을 다해서 준비해서 발표를 해왔지만, 같은 그룹의 친구가 이렇게까지 칭찬을 해줄지는 몰랐다. 사실 그 친구의 칭찬이 다소 과장되었다는 것을 나는 알고 있었다. 지난 학기 개인 발표를 처음으로 했을 때 버벅거리며 벌벌 떨다가 단상에서 내려왔을 때도 주변 친구들은 나에게 잘했다며 격려해주었었다. 그때 머릿속에는 언젠가 TV에서 본 명장면이 떠올랐었는데, 그건 올림픽 수영 경기에서 이름도 생소한 작은 나라에서 온 선수가 다른 선수들과는 한 바퀴 이상 뒤쳐져서 꼴찌로 결승점에 도착하는데 관중들이 모두 그에게 기립 박수를 보내는 장면이었다. 나의 발표 후 주변 친구들의 나에게 박수를 보내고 칭찬을 해주면 나는 그 꼴찌 선수가 된 기분이었다. 


  하지만 이번에는 그런 칭찬과는 좀 다른 것 같았다. 그 친구는 그동안의 나의 발표를 관심 있게 들어주었고 나의 장점을 높게 평가해준 것 같았다. 이후 그 수업에서의 마지막 발표 때까지 나는 자신감을 가지고 중요한 역할을 잘 해낼 수 있었고, 우리 그룹 멤버들은 모두 좋은 평가를 받을 수 있었다.


Project 2 동병상련의 친구

  또 다른 수업에서는 "Can I join you?"를 여기저기서 외쳐댔지만 어떤 그룹에도 속하지 못하고 남은 적이 있었다. 결국 교수님께서는 남은 사람들끼리 한 그룹을 만들어 주셨다. 4명으로 구성된 다른 그룹과 달리 우리 그룹은 3명이 이었고, 특이하게도 모두 나이가 많았고 셋 중에 내가 가장 어렸다. 정확히 몇 살인지 물어보지는 않았지만, 보기에도 그렇고 같이 이런저런 이야기를 나누다 보니 기혼에 장성한 아이들도 있는 걸로 봐서 나보다 나이가 많은 것이 확실했다. 우리는 그 수업에서 시니어 그룹으로 통했다.


  다른 멤버 두 명도 나와 같은 만학도로서 누구 못지않은 열정을 가지고 수업에 임하고 과제를 수행했다. 하지만 오랜만에 다시 시작한 공부인 데다 그 과목이 좀 어려운 과목이라 우리 그룹만 계속 뒤처지는 느낌이 들었다. 하지만 나는 그 그룹 활동을 가장 편안하게 했었다. 비슷한 년배의 친구이고 늦게 다시 학교에 들어왔다는 공통점이 있어서인지 다른 학생들에 비해 뭔가 통하는 게 많았던 것 같다.


  우리 시니어 그룹은 각자의 장점을 살려 임무를 분담했다. 누님 멤버는 교수님과의 커뮤니케이션을 맡아서 모르는 부분 질문하기, 찾아가서 얼굴도장 찍기 등을 담당했다. 형님 멤버는 정보 수집을 맡아서 과제 수행에 필요한 자료를 찾아 정리하는 부분을 담당했다. 나는 보고서 작성을 맡아서 수집되고 정리된 자료를 이용하여 과제 문제를 풀고 보고서를 만드는 부분을 담당했다. 글로 채우기보다는 수식과 도표 위주로 작성해야 하는 문제풀이 보고서였기에 큰 어려움 없이 할 수 있었다.


  처음에는 선택받지 못한 멤버들끼리 모인 탓에 같이 한숨 쉬며 걱정했지만,
마지막에는 우리 과의 유명 그룹이 되어있었다.


물론 실력은 최고가 아니었지만, 무난하게 괜찮은 평가를 받을 수 있었다.


Project 3 격려해주는 친구

  모든 프로젝트가 쉽지 않았지만 특별히 나에게 어려웠던 프로젝트가 있었다. 첫 학기 때 수강했던 과목의 교수님이 진행하시는 다른 수업이었는데 학부 4학년들이 주로 듣는 수업이었다. 수업시간에 배운 개념을 적용하여 하나의 애플리케이션을 만드는 프로젝트였다. 회의를 통해 어떤 작품을 어떻게 만들지 정하는데 그룹 멤버들은 각자가 어떤 부분을 맡아서 하겠다고 모두 자신 있게 말했다. 


  나도 대학시절 프로그래밍 수업도 듣고 자격증도 땄었지만 일 년이 다르게 급변하는 IT 분야에서 10년이 넘는 세월은 내가 배웠던 것들을 무의미하게 만들어 놓았다. 취업 후에는 관련된 스킬로 진행하는 업무가 없었기에 그나마 배운 것들도 다 잊어버린 상태였다. 나도 한 부분을 맡아서 하겠다고 말해놓고는 그때부터 관련 언어를 공부하기 시작했지만 역부족이었고, 그룹 멤버들에게 평가를 잘 못 받아서 학점이 펑크 나는 건 아닐까 걱정이 되었다.

  임무를 배정한 후 첫 회의는 진척 상황을 공유하는 자리였다. 멤버들 모두 저 마다 맡은 부분을 근사하게 진행하고 있었다. 나만 겨우 시작한 것도 허접하기 짝이 없었다. 나는 나 자신에 대한 실망과 멤버들에게 미안한 마음으로 괴로워하고 있었다. 회의가 끝나고 자리를 뜨려고 하는데 조장이 나를 불렀다. 맡은 임무가 어려운 것 같은데 다른 걸 해보면 어떻겠냐는 것이었다. 처음에 애플리케이션의 형식과 기능 주위로만 생각을 하다 보니 콘텐츠 부분에서 놓치고 있는 것들이 많은데 그것들을 좀 챙겨달라는 말이었다. 나는 기다렸다는 듯이 기존에 맡은 부분은 도저히 시간 안에 완성을 못 할 것 같다고 솔직하게 말하고 다른 종류의 일은 뭐든지 열심히 잘하겠다고 했다. 그의 말은 자칫 나를 무시하는 내용으로 들릴 수도 있었지만, 그의 정중하고 진솔한 태도는 내가 잘할 수 있는 부분에 최선을 다하고 좋은 성과를 낼 수 있게 하는 동기를 부여했다. 

어린 친구에게서 진정한 리더십을 배울 수 있는 순간이었다.


  나는 다른 학생들이 우리의 작품의 외관을 멋지게 만들어가는 동안 안에 교수님이 강조하셨던 내용을 바탕으로 콘텐츠를 구성했고, 각 기능을 더욱 부각할 수 있는 부분에 배치했다. 그리고 최종 발표 때 사용할 설명자료를 준비하고 리포트도 작성했다.


  프로젝트 진행 중 여러 번의 회의가 있었는데, 모든 회의를 빠짐없이 참석한 멤버는 나와 조장 밖에 없었다. 물론 다들 다른 바쁜 일들이 있었겠지만 시간이 갈수록 처음의 열정들은 식어가고, 자리가 맡은 부분만 완성하고 나서 전체적인 작품의 완성도나 발표에는 별 관심이 없는 멤버도 있었다. 이런 상황에서 그 누구도 나의 팀 기여도나 성과를 나쁘게 평가할 수는 없었기에 교수님께도, 그룹 멤버들에게도 좋은 평가를 받고 무사히 어려웠던 프로젝트를 마무리할 수 있었다.


  두 번째 학기는 프로젝트 위주의 수업을 진행하며, 나에게 부족한 부분을 많이 채워가는 시간이었다. 많은 사람들과 함께 의견을 나누고 일하며 서로 돕고 부딪치는 과정에서 새삼 잊고 있던 팀워크와 커뮤니케이션, 리더십의 중요성을 다시 깨닫게 되는 소중한 경험이 되었다.




간추린!

대학원 프로젝트 수행 중 필요하다고 느낀 점


- 자신 있는 전문 지식이나 스킬이 있다면, 프로젝트의 방향을 정할 때 자신의 실력을 뽐낼 수 있는 부분을 가능한 많이 포함시켜서 이후 프로젝트에서 주도권을 가질 수 있게 한다.


- 첫 회의 때 발언을 많이 한다. 아직 정해진 것이 많이 없고 서로 서먹해서 활발한 커뮤니케이션이 있기 전 상황에서의 기회를 노린다. 멤버들에게 적극적이고 자신감 있는 첫인상을 심어줄 수 있다.


- 회의 때 가급적 빠지지 말고 성실한 모습을 보여준다. 기여도를 생각할 때 멤버들이 객관적으로 판단할 수 있는 부분 중 하나가 된다.


- 회의시간에 충분히 토론에 참여하지 못했다면 그룹 SNS를 적극 활용하여 회의 때 다 못한 말이나 의견을 공유한다. 나의 의견을 분명하고 기억하기 좋게 전달하는 방법이 된다.


- 그룹 내에 주장이 강하고 적극적인 멤버 외에 조용히 있는 멤버에게 의견을 물어보고, 의견에 대한 적극적인 피드백을 해준다. 그룹 전체적인 성과를 높일 수 있고, 팀워크나 커뮤니케이션을 개선하는 멤버로 인정받을 수 있다.


- 다른 멤버들이 기피하는 귀찮은 일들을 자진해서 맡아 진행한다. 일단 시작하면서부터 좋은 인상을 남길 수 있고, 혹시 진행하다가 어려움이 있을 때는 멤버들의 도움을 요청하면 된다.


- 마지막 최종 발표 때 충분한 발표 분량을 확보한다. 언어의 장벽으로 발표가 부담스럽고, 나보다 잘하는 다른 멤버에게 맡기는 게 편하겠지만, 교수님이나 다른 학생들이 보기에 내가 진행했던 부분을 자신 있게 어필할 필요가 있다.


Photo by Dylan Gillis on Unsplash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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